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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정치일반

컬링은 힐링…닦고 굴려서 싹 쓸어낸 건 ‘스트레스’

admin 기자 입력 2013.08.16 15:00 수정 2013.08.16 03:00

남녀노소 즐기는 올림픽 정식종목…선수촌 외 유일한 경기장 의성뿐

아무리 봐도 웃기고 장난 같고 좀체 폼이 나지 않는다. ‘빙판 위의 바둑’이라고 불리는 컬링. 비인기 종목이라는 오명 속에 아직도 이색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보기엔 우스워 보여도 엄연한 올림픽 정식 종목이다. 수 싸움과 임기응변, 팀워크, 섬세함이 요구된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움직임이 적어 보이지만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이제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건강과 재미를 느끼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힐링 스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 N군위신문

◆빙판 위의 바둑
지난달 27일 오후 뙤약볕이 내리쬐는 경북 의성컬링장.
실내로 들어가자 서늘한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곳은 태릉선수촌을 제외하고 컬링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유일한 경기장. 앳된 선수 한 명이 20㎏짜리 스톤(둥근 돌)을 애지중지 밀고 가다가 손을 뗀다. 순간 두 명의 선수들이 돌을 쫓더니 바쁘게 비질을 하기 시작한다. 여느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다. 기자의 눈에는 열심히 빙판 위를 청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석치기’나 ‘구슬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훈련하는 선수들의 자세는 진지하다. 금세 땀방울이 선수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다.

이들은 대구 월촌초교, 서울 발산초교 학생들. 여름방학을 맞아 전지훈련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나윤주(대구 월촌초교 6) 양은 컬링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보기보다는 재미있는 종목이에요. 특히 스톤을 드로우(굴리는 행위)하거나 테이크아웃(다른 돌을 튕겨 내는 것)하면서 머리를 쓰다 보면 마치 거대한 빙판 위에서 바둑을 두는 기분입니다.” 동생 나민주(대구 월촌초교 5년) 양은 “컬링을 하고 나서 집중력도 높아지고 학업성적도 좋아졌다”고 좋아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운동에만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다.

의성여고 1학년 권연아 양과 의성여중 1학년 류영주 양은 컬링으로 학업성적이 오른 경우다. “컬링을 하다 보니 스마트폰 게임 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져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게 됐어요.” 초교 때 집 근처 컬링장에서 컬링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상묵(의성중 3) 군은 컬링을 배우고 난 후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박종말 월촌초교 교사는 “컬링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스포츠입니다. 아이들이 온라인 게임보다 더 재미있어해요. 컬링을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재미와 동시에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종목이라는 설명이다. 학생들의 협동심을 높이는 데도 ‘딱’이란다. “축구나 야구 등은 단체종목이라고는 하지만 스트라이커나 거포 한 명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컬링은 달라요. 진정한 단체종목이다. 팀원 4명(스킵·리드·세컨드·서드) 모두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야만 경기를 할 수 있어요. 팀원들을 묶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지요.”

◆컬링이 힐링
컬링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힐링 스포츠다. 최근 컬링을 즐기는 일반인들도 늘고 있다.

삼성증권 대구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명섭(30) 씨는 바쁜 직장 생활 틈틈이 이곳 의성 컬링장을 찾는다. 중학교 2년 때부터니까 무려 15년 가까이 된다. 지난 2009년부터 2년간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2009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 등 국제대회를 누비기도 했다. 그에게 이미 컬링은 힐링이다. “컬링을 하면서 집중력이 높아지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어 좋습니다. 소리도 지르고 스위핑(비질)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대구에서 입시학원을 운영 중인 장반석(33) 씨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나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컬링장으로 달려간다. 3, 4년 전 우연히 친구 따라 의성의 컬링장을 찾았다가 컬링의 매력에 푹 빠진 후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빙판 위에서 스톤을 굴리며 게임에 빠져 있다 보면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금세 사라져 버린답니다.” 최근에는 친구들을 설득해 아예 팀을 꾸리기도 했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대구팀으로 나서 5위를 하기도 했다.

방학 때면 학생들을 데리고 의성을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 스포츠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컬링을 하면서 제대로 된 스포츠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지요. 얼핏 게으른 운동 같지만 운동량이 굉장히 많은 종목입니다. 특히 머리싸움을 해야 하는 종목이라 심심하지 않지요.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울 때는 피서까지 할 수 있지요.”

김경두 경북컬링협회 회장은 “힘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오래 할수록 노하우와 경험이 쌓여 마흔 살이 넘어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규칙도 단순하다. 팀원 4명이 돌아가며 1엔드에 2번씩 투구, 10엔드까지 중심(버튼)에 가장 많은 스톤을 넣는 팀이 이긴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고 했다.

단순한 규칙에 비해 전략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더욱 재밌다는 설명이다.
“컬링 스톤은 느리지만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단순함 속에 무궁무진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어 재미 역시 배가 됩니다. 두뇌 싸움도 치열해요. 방어막(스톤)을 뚫고 중심에 돌을 넣기 위해선 수 싸움과 임기응변, 팀워크,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컬링이 ‘빙판 위의 바둑이나 체스’로 불리는 이유죠.”

◆아직은 걸음마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다. 비인기 종목에 선수층도 두껍지 않다. 현재 700여 명의 선수와 2천여 명의 동호인에 불과하다. 단순히 숫자로 보면 테니스와 탁구를 결합한 프리 테니스 등 새롭게 떠오르는 신종 레포츠에 비해 턱없이 세가 약하다.

훈련이나 연습 인프라 역시 좋지 않다. 일반인들이 훈련할 수 있는 곳은 의성의 컬링장이 유일하다. 그래서 전국에서 몰려든 선수나 동호인들로 항상 북새통이다. 가을에는 두 달 동안 무려 4개 대회를 치러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컬링의 미래는 밝다. 컬링이 가진 장점 때문에 경기장`인프라 등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국민 레포츠로 떠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의성 경기장의 시설 확대나 인천, 충북 진천 등지에서도 경기장 신설을 계획 중이다.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서도 ‘스케이팅 위주의 메달 편식’을 해소해 줄 ‘오아시스’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성장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이렇다 할 저변 구축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벌써 국제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2월에 열린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른데다 내년에 열리는 소치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한다.

때마침 기업들의 관심도 쏟아지고 있다. 컬링의 메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대한컬링경기연맹과 후원 협약식을 갖고 2018년까지 총 100억원 이상을 후원하기로 했다. 또 ‘신세계컵 전국컬링경기대회’(가칭)를 신설해 대회 운영과 훈련지원금으로 5억원씩 총 30억원을 낸다. KB금융그룹도 국가대표팀과 국가대표 선발전인 ‘한국컬링선수권대회’를 2015년까지 후원하기로 했다.

김재원 대한컬링연맹 회장(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컬링은 대한민국 친화적인 운동이다. 파워나 지구력, 스피드가 아니고 기술과 두뇌플레이가 필요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제2의 양궁이 될 수 있는 종목이다. 더구나 유럽이나 캐나다 등지에서는 노인들까지 즐길 정도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앞으로 컬링경기장 건설, 대학·실업팀 창단 등을 통해 컬링의 저변확대에 힘쓰는 한편 컬링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출처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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