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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와의 아름다운 추억

admin 기자 입력 2013.08.19 16:26 수정 2013.08.19 04:26

↑↑ 서윤석 씨.
ⓒ N군위신문
사람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 보편적으로 흔히 고향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터전도 포함 된다. 우리는 보통 고등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다니고 대학교는 대체로 객지에 나가서 학교를 마치게 된다.

그리고는 사회생활은 학교를 졸업한 도시에서 아니면 직장을 얻게 되는 도시에서 제2의 인생 즉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기와 인연이 있는 지역이나 혹은 도시와 소중한 인연이 있는 곳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여 애정을 가지는 것은 사람만이 가지는 인지상정이 아닐까?

나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 객지생활을 했다. 안동에서 대구로 전학하여 일찍이 유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은 경주시에서 첫 발을 소위 말하는 “지게자리”를 놓았다. 경주에서 7년 2개월 생활하다가 뜻한 바 있어 ’91년 경북도에 전입하여 도정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너도 나도 틈만 나면 도에 갈려고 하는 직원들이 많아 도 전입시험 추천받기가 시험합격하는 것 보다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도에 가면 아무래도 승진은 시군보다 빠르게 하니까 모두 도에 갈려고 발버둥친 게 사실이다. 그것도 경주사람이 아닌 객지가 고향인 내가 도 전입시험 추천받으리라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며 가끔 가다가 혼자 웃어 보곤 한다. 도정에 참여하여 처음에는 고생도 많이 하였다. 고진감래라 하지 않았던가? 우연하게도 좋은 상사를 만나서 지방과에 8년이나 근무하고 셋 과를 옮겨 시간이 되어 사무관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승진하면 중앙부처나 혹은 시군으로 일정기간 소위 말하는 ‘시집살이’ 하러 간다. 직계 선조 네 분이 군위 현감을 하시고, 대구와 안동 간 중앙에 위치하고, 오가는 동안 늘 보았던 군위 아닌가? 도 종건에 근무할 때에 ‘효령〜우보 간’, ‘광현〜금성 간’ 도로 확포장공사 토지보상금을 직접 담당하여 지역주민과 대화도 하고, 소통도 많이 했다.

군위읍 광현리 마을을 보상할 때에는 주민과 대화가 되지 않아 지적공사에서 대략적으로 측량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담당하자마자 준공이 임박하여 계속 현장에 나가 집성촌인 사공 씨 대표자를 조석으로 칠고초려 한 끝에 보상금 수령 승낙을 받아낸 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일이다.

그때 조금씩 군위 관내를 두루 나름대로 익혀놓은 게 근무할 때 도움이 될 줄 알았으랴? 나중에 승진할 무렵 고향 후배인 H과장이 도로 들어갈 시기이고, 마침 J과장은 평소 잘 아는 사이다. 마음속으로 관운이란 이럴 때에 작용하는구나. 사람의 앞일은 누구도 잘 모르는 일이다. 군위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한 번은 자치행정국장(현재 P부시장)이 불러서 갔더니. “Y부시장님이 서 과장을 받겠다는 데 Y시에 가이소” 하시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한 번 얘기해 놓은 걸 이제 와서 번복시킬 수 없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군위군으로 보내 주십시오”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국장님이 “서 과장은 평소 인덕이 많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국장님은 내가 지방과장으로 모시고 근무할 때에 내 삼종형님(서울 G신문사 재직, 신문사 구조조정으로 중앙에서 도에 잠시 출입)과 경북고 동기로써 우연하게도 동기 동창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내가 서로 소개시켜 드렸더니 반갑다며 서로 악수하고 웃는 모습이 좋았다.

군위군! 이렇게 하여 군위군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부임 전에 군수님이 해병대를 제대하셨다는 것을 나름대로 인지하여 사진으로 한 번 보고 조금 와일드한 성품이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으나, 이와 반면에 첫 환담자리에서 성품이 너무나 인자하시고, 소탈하셨다.

지금도 잊히지 않은 게 그 당시 군에 조직개편이 있어 잠시 대기하고 있었던 어느 날 나를 찾으시더니 “서 과장 읍면장 하고 싶습니까?” 하셔서 초임에 뭐라고 말할 입장도 아니고 해서 “군수님 처분대로 하십시오!”라고 말씀 드렸다.

처음 보는 초임 사무관에게 자상하게 상사가 그래도 협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처음 보는 나를 인정하시고 물으시는 게 나에게는 여간 힘을 실어주시지 않는가? CEO를 하셔서 그런지 업무에는 꼼꼼하시고, 모든 업무를 훤히 뚫어 보시고, 감히 군수님 앞에서는 조금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으로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실무자인 과장보다 먼저 현장의 현황을 아시고, 나도 나름대로 철저히 내용을 공부하여 숙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군수님의 질문에 턱 막히니 그때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난 마음속으로 군수는 누구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나도 업무는 나름대로 누구보다 꼼꼼하게 챙기는데 앞으로는 한 번 더 챙겨서 보고를 드려야겠구나. 마음속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하셨다.

군수님은 평소에도 무리하게 법령을 어겨서까지 업무를 추진하시는 않으셨다. 난 이게 아주 큰 강점이라 생각한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공평하게 업무를 추진하신다. 민선시대에 공무원들은 일하기가 사실 어렵다. 사실 공무원들도 최대한 민의 입장에서 해줄 수 있으면 해주려고 다각도의 많은 법령 검토와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이 지면을 통하여 말씀드리고 싶다.

군위군의 심장이라면 군위읍이 아닌가? 군위가 발전하려면 먼저 군위읍이 발전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점차 군위 전체로 발전시켜야 한다. 내 소관은 아니었지만, 소도읍가꾸기사업과 군청 앞 도로확포장 공사 등으로 보상금과 공사시행으로 인한 비산먼지 등으로 공사기간이 길어 생업에 지장을 초래하여 읍민들과 보이지 않는 마찰이 다소 있었다.

군수와 공무원들이 주야로 열심히 설득하고 소통하여 읍민들께서 인내한 결과 군위 읍내가 보기 좋게 번듯하게 되어 얼마나 좋은가? 내 소관 중 한 가지 아쉬운게 군위의 심장부에 돼지돈사에서 나오는 악취가 군위읍을 진동하여 군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아주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돈사 육성은 친환경농정과에서 담당하고, 환경 분야(악취) 단속은 환경산림과에서 담당하고 해서 어떤 때는 업무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아쉬울 때도 더러 있었다.

간부회의 때 돈사 얘기만 나오면 민망스럽고 작아지는 모습뿐이다. 돼지농가도 이제는 시대와 환경이 변화하면 나름대로 투자하여 냄새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00% 악취 제거는 어렵지만 최대한 노력하여 최소한의 악취는 없애야 한다. 이것이 환경공무원의 최소한의 바람이기도 하다.

군수님은 늘 선조치하고 후 보고하라고 힘을 실어 주시니 그래도 일 할 맛이 났었다. 돈사 악취 때문에 군위읍 생활체육공원 앞에 대형돈사를 사들여 도시공원을 조성하려고 하나 국비예산 확보가 관건이었다.

부지는 지자체가 확보해야 국비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부지매입 예산은 추경을 해놓고 산림청에 나를 포함하여 관계담당자 등 3명이 심사위원회에 참석하여 산림청 관계관을 설득한 후 심사위원회가 열리는 날 잠시 휴식시간에 위원들을 붙들고 참 절박한 심정으로 설득한 결과 이해를 시켜 국비 10억 원을 확보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중에 하나다.

군의 관계담당자도 국비를 확보하려고 중앙부처를 처음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난 그러면 이번에 성사시키고 돌아오자. 만약 성사시키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해마다 산불예방 때문에 공무원은 물론 지역주민까지 산불계도활동에 참여시킨다. 공무원은 늘 불만이다. 비단 이것은 군위만이 아닌 전국 지자체의 공통현상이다. 전문진화요원이 있어도 산불상황실에 총괄을 하기 때문에 근무를 해야 한다.

담당과장으로서는 늘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산불이 끝나면 여름철 일연공원도 주말에 근무를 서야 한다. 행락질서 계도 직원이 없으면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된다. 농담 아닌 농담으로 외지인이 찾아오면 조용히 놀다 가면 본전이요, 남는 것은 쓰레기다.

뒤처리는 전부 공무원의 손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환경산림과는 물론 군청직원들은 연중 휴식할 시간이 별로 없다. 군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과 관, 갑과 을의 위치가 시대적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정보화 시대에 민도 이제 관보다 모든 면에 앞질러가는 시대다. 이제는 민과 관이 서로 협조하여 사업에 계획을 수립하고 한목소리를 내어 상부기관에 예산 확보를 해야 하는 시대다.

군위군은 도내 23개 시군 중에 예산이나 인구, 면적 등 모든 면에서 열세한 군이다. 국·도비를 확보해도 그에 따른 군비 보조비율이 있어 그 보조비율 맞출 예산이 없다는 것을 군민들은 잘 모른다. 자체사업은 그야말로 한정되어 있다. 군민들은 너도나도 예산을 얻으려고 손을 내미는 데 군수입장에서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군수는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있겠는가?

군에서는 한정된 예산에 효율적인 예산편성을 하여 소기의 좋은 성과를 거둬야 한다. 내 개인적으로 군위군이 정말 야심차게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삼국유사 가온누리사업”은 중요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것은 앞으로 군위군을 대표하는 아주 중요한 사업이다.

온 군민과 공무원들이 정말 합심하여 전국에서 가장 볼 것이 많은, 체험과 학습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조성하여야 한다. 차세대 먹거리를 위해 군위가 전국에 우뚝하게 내놓을 수 있는 명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삼국유사의 고장’군위답게 말이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 민족사가 5천년 이라는 역사를 과연 쓸 수 있었겠는가? 삼국유사에 단군조선이 유일하게 처음 나온다. 군위군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삼국유사 가온누리 사업에 온 힘을 쏟아 부어 군위군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대표 브랜드 작품이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볼 것이 있어야 소리 소문에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들지 않겠는가? 늘 멀리서나마 성원을 보내고 있다.

내가 잠시 몸담았던 군위가 잘 되도록 성원과 후원하는 것, 이것 또한 인지상정이 아닌가? 군위군 발전은 그 지역 공무원들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군수와 공무원과 군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군민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공론이 형성되면 군수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밀어서 군수가 군정을 펼치는 데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직접 손으로 뽑은 군수가 열심히 일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줘야 군수도 힘이 나서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래야 군이 한 단계 더 발전 할 수 있지 않는가?

공직생활은 뭐니 뭐니 해도 승진하는 맛이다. 일선에서 근무해 보니, 인사적체가 아주 심각하다. 승진할 직원은 많고 승진요인은 보이지 않는다. 당근이 있어야 열심히 일하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전부 2층만 바라보고 있는 데 흔히 ‘인사가 만사’라는 말 정말 피부에 와 닿았다. 희망이 안보이니 전부 현실에 안주해 버린다.

한편으로 보면 이해가 충분히 가고도 남는 대목이다. 아직도 함께한 직원들의 선한 눈망울이 눈에 밟힌다. 또한 근무하면서 만난 군민들도 눈에 어른거린다. 21개월 길지 않는 시간동안 열심히 일했고, 군위군에서의 생활은 살아가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추억은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내 인생을 더욱 살찌울 것이다. 팔공산, 인각사, 일연공원, 한밤 돌담길, 화본마을, 석산 산촌생태마을, 팔공산 능금마을 언제 들어도 정겹게 들리는 단어들, 다시 찾고 싶은 군위! 언제 한 번 갈려나. 몸은 비롯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늘 군위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그만큼 군위에 정이 들었다는 증표다.

현재는 떠나 있으나, 언제 어디 있든 간에 누가 뭐래도 군위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 군위여! 희망을 잃지 말고 미래를 향해 전진합시다. 두 눈 부릅뜨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군위호에 동참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지금보다 행복 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미래를 향해 다함께 힘을 쏟으며, 군위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속 깊이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글제공: 전 군위군 환경산림과장 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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