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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옛날 어머님들의 여한가(餘恨歌)

admin 기자 입력 2014.04.22 10:16 수정 2014.04.22 10:16

↑↑ 김종오 부총재
ⓒ N군위신문
옛날 어머니들의 시집살이, 자식 거두기, 질박한 삶을 노래한 글로 표현 합니다.
꾸민 이야기가 아닌 순박한 삶의 표현입니다. 마치 종처럼, 머슴처럼 산 기록을 이 글로 대신 체험해 보세요. 우리 모두 옛날을 더듬어보며 읽어 봅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돌아가신 어머님들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납니다.

쇠락 하는 양반 댁의 맏딸로 태어나서 반듯하고 조순하게 가풍을 익혔는데 일도 많은 종갓집 맏며느리로 낙인 찍혀 열일곱 살 꽃다울 제 숙명처럼 혼인하여 일찍 둔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철 지나고 해 가는 줄 모르는 채 살았구나! 봄·여름에 누에치고, 목화 따서 길쌈하고 콩을 갈아 두부 쑤고, 메주 띄워 장 담그고 땡감 따서 곶감 치고, 배추 절여 김장하고 호박고지 무말랭이 넉넉하게 말려두고 어포 육포 유밀과 과일주에 조청까지 정갈하게 갈무리해 다락 높이 간직하네.

찹쌀 쪄서 술 담 그어 노릇노릇 익어지면 용수 받아 제일 먼저 제주부터 봉해두고 시아버님 반주꺼리 맑은 술로 떠낸 다음 청수 붓고 휘휘 저어 막걸리로 걸러내서 들일하는 일꾼네들 새참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시루 걸고 소주 내려 묻어두네 뒷바라지 권속들이 여나무명은 족한데 더부살이 종년처럼 부엌살림 도맡아서 보리쌀 절구질해 연기로 삶아 건져 밥 짓고 국도 끓여 두 번 세 번 차려 내고 늦은 저녁 설거지를 더듬더듬 끝마치면 몸뚱이는 젖은 풀솜 천근만근 무거웠네.

동지섣달 긴긴 밤에 물레 돌려 실을 뽑아 날줄을 갈라 늘여 베틀 위에 걸어 놓고 눈물 한 숨 졸음 섞어 씨줄을 다져 넣어 한 치 두 치 늘어나서 무명 한 필 말아지면 백설같이 희어지게 잿물 내려 삶아내서 햇볕에 바라기를 열두 번은 족히 되리.

하품 한 번 마음 놓고 토해보지 못한 신세, 졸고 있는 등잔불에 바늘귀를 겨우 꿰어 무거운 눈 올려 뜨고 한 뜸 두 뜸 꿰매다가 매정스런 바늘 끝이 손톱 밑을 파고들면 졸음일랑 혼비백산 간데없이 사라지고 손끝에선 검붉은 피 몽글몽글 솟아난다. 내 자식들 헤진 옷은 대강해도 좋으련만 점잖으신 시아버님, 의복 수발은 어찌 할꼬? 탐탁찮은 솜씨라서 걱정부터 앞서고 공들여서 마름질해 정성스레 꿰맸어도 안목 높고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에 안 들고, 매운 시집살이 쓴맛까지 더 했다네.

침침해진 눈을 들어 방안을 둘러보면 아랫목서 윗목까지 이리저리 자식들이 차 내버린 이불깃을 다독다독 여며주고 어린 녀석 세워 안아 놋쇠 요강 들이 대고 어르고 달래면서 어렵사리 쉬 시키면, 일할 엄두 사라지고 한숨이 절로 난다.

학식 높고 점잖으신 시아버님 사랑방에 사시사철 끊임없는 접빈객도 힘겨운데 사대 봉사(四代奉祀) 제사는 여나무번은 족히 되고 정월 한식 단오·추석 차례상도 만만찮네. 식구들은 많다 해도 거들 사람 하나 없고 여자라곤 상전 같은 시어머니뿐이로다.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매워라. 내 아들이 장가들면 이 고생을 면할건가? 무정스런 세월가면 이 신세가 나아질까? 이 내 몸이 죽어져야 이 고생이 끝나려나? 그러고도 남는 고생 저승까지 가려는가? 어찌하여 인생길이 이다지도 고단한가? 속절없는 내 한평생 영화 보려 한거드냐? 꿈에라도 그런 것은 상상조차 아니 했고, 고목나무 껍질 같은 두 손 모아 비는 것이, 내 신세는 접어두고 자식 걱정 때문일세.

환갑 진갑 지나면서 이 한 세상 다보네고 선산에 묻힐 채비 늦기 전에 해두려고 때깔 좋은 안동포를 넉넉하게 끊어다가 윤달 든 해 손 없는 날 대청 위에 펼쳐 놓고 도포 원삼 과두 장매 상두꾼들 행전까지 늙었을 때 생각하여 수의 일습 내 손으로 지었다네. 무정한 게 세월이라 어느 틈에 먼저 극락가고 이내몸이 홀로되어 지난 세월 더듬어 보네!

내살 같은 자식들아! 나 죽거든 울지 마라. 인생이란 허무한 것 이렇게 늙는 것을 낙이라곤 모르고서 한 평생을 살았구나… 좋은 세상 맞이하여 앞집 뒷집 아낙네들과 이렇게 중얼 데며 살고 보니 그래도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요즘 세상 잘 만나서 한가한 시간이면 현대식건물 동회관이 마을마다 지어져 있네. 우리 동내 늙은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희희낙락, 비약, 풍약 그림놀이 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먼저 간 영감님들 틈틈이 생각나는구나.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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