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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노래 <安 民 歌>

admin 기자 입력 2014.06.06 10:03 수정 2014.06.06 10:03

신라인의 노래 <安 民 歌>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을 주는 어머니라!

↑↑ 류미옥 해설사
ⓒ N군위신문
오늘은 고대 신라인의 노래인 향가(鄕歌) 중에서 안민가(安民歌)를 실어 본다.
일연이 향가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 많이 삼국유사에 실었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알게된 향가(鄕歌)를 손 수 한편씩 노트에 기록해 두었다고 생각 할 수 있다.(그 상한선이 14수였다)
향가로 인해 삼국유사의 가치를 몇 백배나 높였고 우리 문학사는 천년의 공백을 메울수 있었다.

삼국유사 권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에 설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당(唐)나라에서 보내온 도덕경을 예(禮)로 받았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지 24년에 오악(五惡)과 삼산(三山)의 신(神) 등이 가끔 나타나서 궁전과 뜰에 모셨다. 3월 3일에 왕이 귀정문(歸正門)루에 올라 좌우에 말하였다. “누가 길에서 영복승(榮服僧)한 사람을 데려 올수 있느냐”

이때 마침 위엄과 예의가 드러나도록 깨끗하게 갖춘 한 사람의 대덕이 배회하고 있었다.
신하가 보다가 스님을 데려다 왕께 알현하게 하였는데, 왕이 이르기를 내가 말하는 영승(榮僧)이 아니라고 하여 돌려 보냈다. 다시 한 스님이 납의를 입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왔다.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며 귀정문(歸正門)루 위로 맞이하였다. 앵통을 들여다보니 다구(茶具)가 가득 들어 있었다.
ⓒ N군위신문

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스님은 충담이라 하였다. 왕이 묻기를, “어디에서 돌아 오는 길이오?”하였더니 소승(小僧)은 “매 중3과 중9일이면 차를 끓여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茶)공양을 올리는데 오늘도 차(茶)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충담(忠談師)께 “과인에게도 차(茶)를 줄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스님이 이내 차(茶)를 달여 바쳤는데 차(茶)의 향과 맛이 이상 하였으며 기이한 냄새가 짙게 풍겼다.(삼화령 미륵삼존불은 선덕여왕 13년에 돌미륵을 남산 삼화령 밑 남쪽 골짜기에서 파내 삼화령으로 옮겨 모신 것이다. 다음에 삼화령 미륵불 삼존에 관하여 자세히 실어 보고자 한다)

왕이 말하였다. “짐이 듣기로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의 뜻이 매우 높다 하더이다” 스님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러하면 짐을 위하여 안민가를 지어주오” 스님은 흔쾌히 안민가를 지어 바치자 왕은 왕사에 봉하려 하였으나 스님은 두 번이나 절을 하며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신라 35대 경덕왕의 치세(742~765)시기에 보면 다른 시기와 달리 향가가 많이 등장 했다. 그 당시 각종 천재지변으로 백성은 굶주리고 정치적으로는 상대등 이었던 김양상이 반역을 일으킬 징조를 보이며 신하의 도전으로 왕권이 위협 받는 등 정치적으로 위기의 상황 이었다. 나라가 어지러워 민심이 동요 하고 있을때 왕은 위기를 벗어나고자 어떻게 하면 안정된 나라를 이룩할 것인가 혼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임금은 아버지요…(중량) 나라는 태평을 지속하느니라’(안민가)
승려가 임금에게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또, 그 충고를 받고 임금도 달갑게 받아들인다. 임금과 신하가 도리를 다해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임금을 칭송하는 나라가 된다면 그야말로 태평성대가 실현 될 것이라 하고 있다.

작가는 승려이지만 유교적 윤리의식인 치국안민의 도와 군신민(君臣民)이 모두 본분을 깨달아 함께 뭉쳐서 불국토(극락세계)를 건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경덕왕은 노래의 힘으로 민심을 수습하여 모든 백성이 사회적으로 참여 하게 하였다.
ⓒ N군위신문

경덕왕은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통치기반의 강화와 왕권강화를 위해 애를 썼으나 아들인 혜공왕때 상대등 김양상의 반란으로 피살되는 암흑기를 맞게 된다.

공자(孔子)가 노나라에서 이웃나라인 제(濟)나라를 찾아갔다. 제(濟)나라 경공(景公)은 공자(孔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공자(孔子)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
논어 안연편에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로써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한 역할을 하라는 교훈이다.

일연이 향가(鄕歌)를 수집 하였듯이 고대 주나라때 왕실에서 시(詩)를 채집하는 관리를 내려 보내서 각 지역에 시(詩)를 채집해 오는 채시관이 있었다. 춘추시대 민요를 모은 것이 본디 3000여편 이었던 것을 공자(孔子)가 간추려 305수의 시경(詩經)이 오늘날 전해온다.

공자(孔子)는 시(詩)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과는 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시(詩)를 공부 하지 않으면 외교를 할수 없었는데 시(詩)에 나오는 것을 다 공부하고 다 외워 두어야 외교도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였고 통치자들은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듣고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고 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무한한 창조의 경쟁시대인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과 깨달음을 주는 것은 스토리 원형의 문화가 아닐까!

삼국유사의 고장답게 군위군청 본관 2층 벽면에 안민가(安民歌)가 새겨져 있다. 안민가 구절의 의미를 안다면 제각기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 나라가 태평하게 된다는 뜻이라 이 구절은 맡은바 직분에 맞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통치자가 정치를 편안하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백성들이 안정된 나라에서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고장이란 홍보도 중요 하지만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민 이라면 우리 역사의 실체와 문화의 실체도 우리들 생활 속에 원동력으로 뿌리 내리는 것이 진정한 군위인의 책임일 것 이다.

자료제공 : 군위군 문화관광해설사 류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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