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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군위신문 |
당 태종 이세민이 대소신료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 이건승을 죽이면서까지 제왕의 자리에 올랐던 거칠 것 없는 이세민이다. 그런 그가 개국공신 당인홍(黨仁弘)의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쇼(?)를 연출하고 벌였으니 감히 누가 반기를 들까.
결국 태종은 ‘죄기조(罪己詔)’를 내려 당인홍을 평민으로 강등시켜 유배 보냈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형 위기에 처했던 당인홍은 목숨을 건졌다.
죄기조는 말 그대로 제왕이 자신을 책망하는 조서다. 모든 허물이 과인에게 있다는 자아비판이다. 가뭄 홍수 등 천재지변이나 내란·외침으로 국가가 누란지위(累卵之危 포개놓은 알처럼 몹시 위태로운 형세를 뜻하는 것으로 사기(史記)의 범저열전(范雎列傳)에서 유래된 성어)에 처했을 때 민심 무마용으로 내놓는 고육책이다.
조선 선조임금이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파천했을 때도 죄기조를 선포하는 빌미로 사신을 팔도에 보내 의병을 일으키게 했다.
죄기조는 참 편리하다. 제왕만이, 마음 내킬 때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책임을 떠넘긴다. 따지고 보면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은 제왕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죄기조를 내림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백성을 생각하는 인자한 군주인지를 과시한다.
죄기조에서는 자책이 심할수록 후덕한 군주다. 그러면서도 이를 통해 제왕은 마땅히 져야할 책임, 즉 ‘천재(天災) 속에 숨은 인재(人災)’까지 면하는 효과를 거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그런데 유족들은 책상머리 사과라며 거부했다. 현직 대통령 조화마저 분향소 뒤편으로 밀려나버린 것을 보면 대통령의 사과는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사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라면 더더욱 사과의 진정성이 묻어나야 할 터. 당 태종이 보인 최소한의 시늉도 없고, 그냥 책임만 회피하는 참으로 편리한 죄기조다.
어린 학생들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끝까지 믿었을 것이다.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어른들과 정부가 그들을 구해주리라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면 살아있는 우리는 숨이 컥컥 막힌다.
선장도 선원도 믿을 수 없고,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조차 이젠 아이들에게 할 수 없고 해경, 해군 등 정부도 믿을 수 없다.
국민들의 간절한 기도와 노란 리본에만 기대어야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대통령의 사과는 처음부터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진실성이 배여 있는 사과였었더라면 분노한 유족들과 가족들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텐데.
우리 선조님들은 왕조시대 때 임금이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못하면 신하(만조백관)들이 멍석을 깔아놓고 그 위에 꿇어 앉아 자기 몸은 돌보지 않은 채 한결같이 아뢴다.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미래창조신문 편집국장 박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