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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대구공업고등학교시절 경성공립농업학교가 모집하는 서류전형에 합격했는데도 가정형편으로 포기해야했다. 아버지는 조부 부모 형제를 위해 직업장교시험에 응시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아버지는 육군병원 경리장교로 근무하며 월급을 꼬박꼬박 군위로 송금했다.
아버지의 사정과 성실함이 주변에 알려졌다. 대학장학금 쾌척으로 충청도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렸던 명망(名望)의 유지(有志)가 아버지를 사위로 삼았다. 그런데 장인의 임종과 대소사가 이어지더니 아버지도 병을 얻어 전역했다.
맨주먹으로 상경한 아버지는 경찰관모집에 어렵사리 서류를 제출했다. 남산의자에서 잠을 잤던 아버지 모습이 굶주림으로 뼈만 앙상하여 노숙자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루며 현기증으로 정신을 잃으면서도 아버지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서울에 발령을 받았다.
아버지는 폐지를 수집하는 사람에게도 존대어를 썼고 지역민의 불편사항을 해결하느라 발이 퉁퉁 부어도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경찰관을 자랑스러워했다. 본서(本署)에서도 제복을 고집할 만큼 아버지는 경찰제복을 사랑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수정원석을 가지고 왔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였다. 아름답게 빛나는 수정원석에 저는 좋아라했지만 엄마는 내다버리라고 화를 냈다. 수정원석을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저는 친구들에게 수정단어도 꺼내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수정원석 출토지가 강원도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충청도라고 우겼다.
수덕사에서 만난 초면의 老스님(90세)이 “역사를 품은 수정원석 출토지가 충청도가 된 것은 미륵의 뜻이다. 충청도 출신이 세계평화를 책임질 때가 올 것이다”라는 덕담으로 엄마의 불안이 조금 해소되었다. 청주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충청도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저는 미술학원을 개원(開院)하며 학원에 수정원석을 놓아두었다. 학원생들은 수정원석을 보면 집중력이 생긴다며 좋아해주었다. 엄마는 착하고 해맑은 아이들을 확인하며 수정원석을 인정해주었다. 미술학원을 정리하고 수정원석을 종이에 싸서 책장에 넣어두었다.
2002년 두꺼비보살이 수정원석에 대해 질문하며 조언을 주었다.
“금맥을 지키는 다섯 분의 수정미륵 중에 한분인데 은영선 작가는 종이에 말아 처박아두었다. 수반에 올려놓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세요. 수정원석은 예술을 위해 세상에 나왔는데 스님이 잠시 욕심을 부렸지만 적임자 은영선을 찾아서 주었으니 복을 받았다. 은영선 작가 아버지는 딸을 지목한 스님에게 덕담을 전하고 기쁜 마음으로 수정원석을 받아야했는데 거절을 한 것이 아쉽다. 생전 나의 친정아버지께서는 수정원석 출토지는 경상북도라고 하셨다.”
수정원석에 관한 전후사정을 모르는 저는 두꺼비보살의 조언이 아리송했다. 많은 분들이 수정원석을 탐냈을 때는 의아했고 덕담에는 위안이 되었는데 그중 몇 개의 사연을 소개해본다.
“광산개발사장은 금과 수정의 무분별한 채굴을 염려해서 수정원석 출토지를 숨겼다. 이제는 국민들이 국토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니 강원도 출토지를 공개해도 된다.”
“작가양반(은영선) 수정원석은 강원도 것이다. 강원도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세계평화가 이룩되니 수정원석을 강원도에 주십시오.”
울진군 아저씨는 “훌륭한 아버지 때문에 고조선 보물창고지기 수정원석을 소유했다. 수정원석이 작가양반을 찾은 건 경상도 힘이고 출토지는 경상북도다”라고 주장했다.
“도력이 깊은 스님들이 작가양반에게서 수정원석을 빼앗아가려는 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어려움이 많으니까 스님들은 예술보다는 국운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작가양반이 소유한 수정원석은 금맥의 기운을 품은 수문장 미륵이기에 정치로 이용되면 다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예술로 풀어야할 수정원석이니 작가양반이 잘 지켜야한다.”
“광산개발사장을 수정 맥(脈)으로 인도한 것은 환인조선(하늘穢國)이고 수정원석을 세상으로 꺼낸 힘은 고려 미륵이다. 환인조선을 증명하고 고려의 미륵까지 불러들인 힘은 작가양반의 고조부(高祖父) 학덕이다. 작가양반은 조상공덕으로 살아가는 줄 아시오”
일련의 참견으로 저는 아버지에게 수정원석에 대해 질문했다. 아버지가 수정원석과 관련하여 상세히 설명해주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파출소장이 아버지에게 보석상가게 순찰을 부탁하며 경찰차를 제공해주었다. 그 보석상은 절도와 사고가 이어져서 기피하는 가게였다. 보석상주인이 용한 이들을 불렀는데 “단오생, 김유신 공덕을 받는 군이출생군이출신, 銀鐘비(은종물)”단어를 주장했다.
보석상주인은 그 단어의 주인공을 찾았고 마침 아버지가 “端午生, 김유신 사당이 있는 군위출생 군인출신, 殷鍾雨”였다. 동료들의 걱정에도 아버지는 순찰에 응했다. 자동차는 사양했는데 세금으로 충당되는 경찰차기름을 아끼고 지역민의 불편사항을 접수하려면 걸어서 다녀야했다. 보석상주인은 핑계를 대며 아버지를 가게에 한 시간씩 머무르게 했다. 아버지의 순찰부터 손님이 들어오고 막대한 금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보석상주인이 아버지에게 수정원석을 선물하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나는 강원도에서 탄광채굴 회사대표로 거금을 모았다. 2곳의 재벌에게서 합작요청이 들어올 만큼 채굴기술과 자본금이 탄탄했다. 나는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금맥을 찾았다. 절벽에서 구르고 산짐승에게 위협을 당하면서 방대한 수정맥을 발견했다. 수정광산 허가를 위해서 5개를 꺼냈고 남겨진 수정원석은 소중히 보관했다. 우연찮게 방문한 사찰에서 초면의 스님이 ‘사장님이 꺼낸 다섯 개의 수정원석은 지구의 문명을 이룩한 고조선(古朝鮮)의 힘이 담긴 미륵이니 그중 한 개를 나의 절에 시주하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을 대한민국 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시주했지만 사찰에 우환이 생겨서 되돌려 받았다. 그 사연이 알려지자 수정원석을 소유하려는 재력가가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스님이 수정원석 주인을 알려주겠다며 찾아왔다. 스님은 반복되는 환상에 시달렸는데 그 내용은 ‘수정원석이 여자로 변해서 어느 집을 찾아갔다. 대문에서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스님을 반갑게 맞았고, 경찰제복을 입은 남자가 마당에 있었고, 남자의 부인이 부엌에 있었다. 방안에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수정원석은 언제나 그 여자아이 품에 안겼다’고 했다. 마침 그때 댁이 나의 가게에 왔다가 황급히 돌아갔다. 스님이 ‘방금 왔다간 경찰관 딸이 그림을 그리다가 작가가 되어 한반도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는 수정원석 주인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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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시절 조부님 모시고 가족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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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주인이 설명하는 사연에도 아버지는 담담했다.
아버지는 “초등학생 딸은 화가가 꿈인데도 책을 많이 읽지만 코피를 자주 흘려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안한다. 아들이 수정원석을 알리는 적임자라면 가져가겠지만 딸의 것이라면 사양하겠다”라고 거절했다.
보석상주인의 간곡함이 계속되자 아버지는 1970년쯤 수정원석을 집으로 가져왔다.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갔다. 아버지는 보석상주인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그의 가게를 찾았다. 보석상주인이 아버지에게 금덩이와 금맥지도를 주며 통사정했다.
“고조선 금맥을 필사한 지도를 수중에 넣었다. 불미스런 일이 연이어 터졌다. 용한 이들을 불렀는데 거품을 물고 기절을 했다. 수정맥을 발견하고 거대한 금맥도 찾았는데 손바닥으로 누르면 들어가는 최상품이었다. 스님이 ‘사장님이 발견한 금맥은 고조선(古朝鮮)이 감추어 놓은 보물창고이니 원상 복구시키고 흔적도 없애십시오. 그곳은 보는 것으로도 시력을 잃는 무서운 장소입니다’라고 경고했다. 무서운 그 장소를 보겠다고 투자자가 몰리고 그들이 합심해서 금맥채굴허가권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중병이란 통보를 받았다. 투자자들이 채굴책임자가 되겠다며 언성을 높였고 사고도 이어졌다. 내가 당신을 추천해서 허락을 받았다. 투자자들이 정부에 진정서를 제출해서라도 허락을 받겠다니 당신은 경찰서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채굴책임자를 맡아주오. 금맥이 발견되면 투자자들에게 보상하고 고조선의 보물창고를 자연그대로 보존하겠다고 2곳의 재벌에게서 약속을 받았다.”
보석상주인이 채굴책임자 위임장을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는 “채굴을 접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인연을 끊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얼마 후 보석상주인의 거듭되는 요청에 아버지는 그의 가게를 찾았다. 보석상주인의 병약한 모습에 아버지는 마음이 아파서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보석상주인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또다시 금덩이와 금맥지도를 아버지에게 안겼다.
“탄광광부도 산업역군인데 검은 가루를 뒤집어쓴다고 막장인생이라 불렀다. 나는 탄가루가 흩날리는 대한민국에게 아름다운 수정과 금이 뒤덮인 한반도 밑바닥을 선물하고 싶었다. 고조선 금맥지도를 참고삼아 내가 발견한 금맥지도를 작성했다. 채굴을 포기했을 때 투자자들은 금맥지도를 원했다. 나는 배상을 선택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사람에게 내가 작성한 금맥지도를 주고 싶다. 이 금덩이는 제련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완벽에 가깝다.”
보석상주인이 간곡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금덩이를 집어던지며 반박했다.
“2곳의 재벌에게 금맥을 자연그대로 보존한다는 합의서를 받아오면 내가 고조선 보물창고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다. 합의서가 없는 구두약속을 어떻게 믿겠느냐?
만석지기 張字 榮字 祚字, 그분의 맏아들 금광대표 張字 憲字 達字 어른이 나의 장인이다. 장인께서 ‘금맥지도와 금광산을 줄 테니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라’말씀하셨을 때, 나는 ‘한반도에 금광산이 없어져야 된다는 소신을 가졌기에 대통령께도 건의서를 올리려했는데 주변에서 막았다”라고 답변을 드렸다.
나의 소신에 장인께서 금광산을 접으셨다. 금을 대량으로 꺼내려면 제련과정에서 유독성 화학약품을 써야하고 그 약품들은 자연, 채굴당사자, 그 가족에게까지 중병을 유발한다. 수정원석은 약속대로 내 딸에게 전해주었다. 대한민국은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가 있다. 삼국시대에 출토된 금 세공품을 보면 정교함의 극치인데 그 기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겠는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알면 한반도에 묻힌 금맥은 얼마든지 증명되는데 조상이 묻혔고 우리도 돌아가야 할 땅을 유독성 물질로 뒤덮어야겠는가? 조상은 일제시대에도 땅을 지키고 물려주었는데 일신(一身)을 위해 조상의 이름을 버리고 국토를 유독성으로 만든다면 후손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우리세대가 조상의 땅을 온전히 남겨주어야 우리도 후손에게 떳떳한 조상이 된다. 묻힐 땅도 부족한 좁은 땅덩어리에 금맥을 찾겠다고 덤비면 조상의 생가, 선산에도 금맥이 있다며 채굴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면 개인은 물론이고 조국(祖國)이 망한다. 국가건설에 필요한 금은 수입으로 해결하고 고대(古代)건 당신이 만들었건 금맥지도는 태워버려야 한다. 당신과 나는 조상이 물려준 땅이 있어서 가난하지 않다. 우리가 젊은 시절 밥을 굶은 건 돈을 벌어야할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보석상사장으로 거부가 되었고 나는 국가에 충성하는 경찰관인데 무엇이 아쉬워서 금맥에 매달리는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은 대한민국, 건강한 국토, 조상의 학문과 기술이다. 나와 당신이 국가에 헌신한 건 우리가 국가이고 우리의 몸이 국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설명에 보석상주인이 한탄했다.
“고조선 금맥지도 소유주는 한응구翁인데 사위 張榮祚가 물려받았다고 들었다. 張榮祚 어른의 금맥지도를 필사한 것을 내가 사들였다. 내가 스님에게 ‘가난하고 직위도 낮은 경찰관에게 수정원석을 주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역정을 냈다. 스님이‘사장님은 발품을 팔아 금맥을 찾는 인연이고, 내가 지목한 경찰관은 사장님의 금맥사연을 확인하는 인연이고, 수정원석이 선택한 경찰관 딸은 고조선 금맥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는 인연’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말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발견한 수정맥과 금맥에 경찰관 殷鍾雨를 데려가지 못한 것이 한다.” 보석상주인이 눈물을 흘렸다.
보석상주인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금맥지도를 태웠다. 그리고 얼마 후 유명을 달리했다.
글쓴이: 은영선(작품으로는 <가이공주>, <봉황의 나라>, <내 인생을 바꿔줄 행복여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