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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어머님께 드리는 첫 번째 편지

admin 기자 입력 2014.09.01 20:43 수정 2014.09.01 08:43

↑↑ 권춘수 박사
ⓒ N군위신문
어머님!(1902~1970)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시고 계십니까?
그리고 아버님(1891~1980)께서도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희들은 어머님과 아버님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축복받으시면서 편안히 계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어머님께서 저희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았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자식을 낳아 키워보지 않으면 부모님 고생 모른다’라는 선인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님의 고생을 잊어버린 채 내 스스로 커서 성인이 된 줄로만 알고 왔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계시면서도 모르시는 척, 말없이 우리를 키우신 어머님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직도 모릅니다. 스스로 불쌍해지는 느낌을 가지면서 내 삶이 헛되이 살아왔구나! 진심어린 마음으로 어머님께 용서를 빌며 글을 올립니다.

어느 때, 밥 먹는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야단치시던 어머님, “춘수야, 밥먹자 어서온나, 밥 식으면 맛없다”고 하신 말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습니다. ‘밥 먹으려 어서 온나’ 하고 부르실 때면,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그날 일어났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밥 먹었던 지난날들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철없게도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거웠고 기뻤다. 우리와 함께 지냈던 즐거운 시간들이 그리 오래 머물지 않고 내 곁을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지금은 어머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허나, 말씀은 들리지 않아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마음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날씨가 어두컴컴하고 비가 오는 날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하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어머님 생각이 더 간절히 느껴진다. 피난살이 끝나고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어머님께서 모깃불 피워놓고 이웃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 하시면서, “우리 ‘춘수’가 군대 갈때까지 전쟁하면 세상에는 젊은 사람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겠다. 늙어 빠진 영감하고 할마시(할머니)만 남게 된다. 살면 뭐하노?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성장하여 입대하게 되었다. 뚝다리 위에서 “군대 갔다올게” 하고 나섰는데 다른 엄마들은 아들 군대 간다고 울고불고 야단들인데 엄마는 “잘 갔다온나!” 하신 말씀 이외는 아무 말씀 없었다. 정말 잘 다녀오라는 말씀인지, 막내아들 군대 가는 것이 억장이 무너져서 하신 말씀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제대하고 집에 돌아왔어도 엄마는 그동안 고생많았다는 따뜻한 말씀 한 마디 없이 입가에 환한 미소만 띠면서 반겨 주셨다.
어찌 보면 막내아들에는 맏아들보다 정이 덜 가는가 하고 생각도 해봤다. 그래도 엄마의 표정에는 지금도 궁금하다. 스스로 막내는 불쌍한 자식같이 보여진다.

제대 일년 후 가축병원을 개업했다. 두메산골에서 수의사라는 말은 생소하다. 침으로 소 치료하던 그 시절 ‘소 침쟁이’는 알아도 수의사는 몰랐다. 그럼에도 엄마는 가축병원을 차렸다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랑하셨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을 모셔놓고 덩실덩실 춤추며‘새야, 새야, 파랑새야 / 녹두 밭에 앉지 말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한 가락 뽑으시면서 분위기를 한껏 띄웠던 엄마의 태평세월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이렇듯 즐겁게 지내시기를 좋아하시던 우리 엄마가, 생각지도 않는 지병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고행길을 홀로 걷기 시작하셨다. 힘이 소진하고 기력이 다 하여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홀로 떠나 가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앞이 캄캄했다. 상여가 떠나지만 동네 어른들께서 막내는 어찌 울지도 않느냐고 하신 말씀 들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와야 울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관 속이지만 엄마는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하관 시간이 다가오자 이제 정말 엄마를 영영 볼 수 없게 되었구나 하는 슬픔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 없이 슬프고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다. 엄마의 그리움에 한밤중 산소를 찾은 적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못다 했음이 한꺼번에 표출되었다. ‘시간은 어렵고 힘든 일을 모름지기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그토록 잊지 못할 것만 같았던 외로움과 그리움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곁을 서서히 떠나갔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엄마한테 물려받은 영육간을 고이 간직하고 후손들을 번성케 하여 엄마를 길이 찬미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엄마는 우리들을 위하여 살아오신 분이다. 늘상 내곁에 계시면서 후손을 걱정하는 제 마음을 아시고, 저에게 삼남매을 주시어 이들 모두에게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과분한 엄마의 사랑에 한없이 감사드린다.

어머니! 이제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하늘나라’에서 살아생전 때처럼 이웃 분들을 모셔놓고, 어머니 애창곡 ‘새야, 새야, 파랑새야’ 한 곡을 뽑으시면서 즐거운 시간으로 보내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수필과 지성’ 7호 수록

▷수필과지성 아카데미 16기 수료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학박사
▷경북수의사회 학술위원
▷대한수의사회 학술위원
▷경상북도 수의사회장
▷민주평화 통일자문위원
▷군위군 정책자문위원
▷군위군 공직자 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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