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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斷想-가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admin 기자 입력 2014.11.04 23:38 수정 2014.11.04 11:38

↑↑ 황성창 시인·수필가
ⓒ N군위신문
폭염과 폭우를 몇 번 거치다 보니 어느 듯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처서가 지나고 백로로 시작되는 가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다. 가을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때가 되면 가을은 반가운 손님처럼 우리 곁에 천천히 찾아온다.

빛살 무늬도 찬란한 가을, 하늘은 높고 그리움이 가득한 계절이다. 청명한 가을날은 여행하기에 딱 좋은 철이다. 올 가을, 순천만 갈대밭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가을 운 대통이다.
한 번은 고향 향우회 후배들과 가을관광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또 한 번은 부산연제문인협회 가을 행사인 문학기행에 동참하여 문학과 함께 추억을 만든 하루였다.

흔히들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고 하지를 않던가. 여행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고. 직접 보고 느끼지 않고는 말 할 수도 없고,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으니 말이다. 파스텔톤 꽃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 길을 걸어보고 힘들어도 맞서봐야 절정의 순간에 가슴 울림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햇살을 등지고 달려 온 버스가 10시 반경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 땅, 순천만에 도착했다. 이맘때면 순천만 가을 갈대숲을 보기 위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들로 주차장은 빼곡하다. 주차장 입구에 ‘갈대愛, 순천 맛을 느끼다’라는 2014년 가을 갈대축제 현수막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오왕목 해설사의 영접을 받고 안내 할 스케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첫 행선지가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작가 정채봉관이 있는 순천 문학관이다.
소설가 김승옥은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 후 갈대 우거진 순천만 앞바다와 그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 모티프로 삼아 소설<무진기행>을 발표, 스타작가가 되었다.

전시관에 마련된 수많은 작품을 통해 김승옥의 문학과 사상을 새롭게 엿 볼 수 있었다.
또 옆 건물에 있는 동화작가 정채봉관을 들러봤다. 동심을 영혼의 고향이라는 신념으로 한국 동화의 새 지평을 펼친 아동문학의 대가 정채봉의 작품세계와 수 십 편에 이르는 작품 목록을 보면서 작가의 시대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순천이 낳은 걸출한 두 분의 문학관을 나오면서 내 자신은 지금 창작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지 자성해 본다.

문학관 관람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는 바람에 오후 1시가 훨씬 지나서야 예약된 식당에 도착했다. 차려진 점심 차림상이 푸짐하다. 넉넉한 밑반찬에 걸쭉하게 끓인 짬둥어탕이 일품이다. 새벽부터 설치느라 허기진 배에 한 그릇 뚝딱하니 그제야 든든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점심을 끝내자마자 곧장 순천만 자연 생태공원을 찾았다. 경관이 아름다운 순천만 갯벌은 2006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세계5대 연안습지다. 높은 하늘아래 갈대밭이 얼마나 너른지 끝이 까마득하다. 갈대숲 탐방로 사방이 갈색빛 갈대 이삭이 바람 따라 흔들리다 파도처럼 밀린다.

순천만의 가을은 순전히 갈대의 몫인가 보다. 갯벌 바닥에는 뻘흙을 한 껏 뒤집어 쓴 짬둥어를 비롯해서 농게, 방게, 칠게, 낙지, 꼬막이 오후의 햇살에 들쑥날쑥 거품을 뿜고 한창이다. 탐방로를 꽉 메운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넓은 갯벌에서 숨통을 쉬는 것은 그들 뿐만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활력을 잃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걸음 쉬어가며 활력을 되찾는다.

순천만 갯벌은 살아 숨 쉬는 생태계의 보고, 저서동물들의 낙원이다. 해가 서산 자락으로 기울어 노을빛으로 빤짝이고 갈대이삭은 햇볕 비춤에 따라 갈색으로, 잿빛으로 채색되는 모습 장관이다. 바다만큼 깊고 푸른 가을하늘에는 이름 모를 물떼새가 유유히 날아간다.
장자(莊子)는 “길이란 다니면서 생긴 것이다”고 했다. 여행하며 걷기란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이란 무릇 길 위에 뜻이 담겨 있다. 여행은 익숙하고 안전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힘들어도 즐겁게 느껴지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흔들리는 게 어디 남자뿐이랴. 여자도 꽃물 밴 들꽃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새로운 추억을 만날 것 같은 기대로 마음이 가을 구름처럼 둥둥 떠다닐 것이다. 오늘 하루, 자연과 주고받은 은밀한 밀어는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 둘 것이다. 가을밤은 깊어 가는데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순천만 갈대,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을 그 누가 알랴.

황성창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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