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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공희 전 교육장 |
ⓒ N군위신문 |
게이트볼 강습의 수료식을 한지 불과 한 달 만인 그 해 10월 10일, 안동 MBC 방송국이 주최하고 안동시 게이트볼 연합회가 주관하는 ‘경상북도 게이트볼 대회’가 안동에서 개최했다.
우리군의 초보선수들은 구경도하고 경험도 쌓기 위하여 6명의 선수와 10여명의 응원단이 대회에 참가했다.
경상북도 내의 31개 시·군중에서 참가한 시군은 28개 시·군, 대회의 규정에 의하여 추첨으로 3~4개 시·군을 한 조(팀)가 되도록 하니 총 8개 팀, 각 팀별로 경기를 하여 그 팀에서 1등을 한 팀이 8강전에 오르게 된다. 8강전부터는 두 팀씩 대전하는 토너먼트방식으로 하여 이긴 팀 4개조가 4강전을 한다. 4강전에서 이기면 두 팀이 결승전을 하게 된다.
우리군은 문경군과 경주시와 한 조가 되었다. 상대 시·군은 모두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게이트볼을 시작한 시·군이니 경기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리라 짐작하면서 ‘연습을 하는 셈으로 평소 하던 대로 쳐 보자’고 서로 다짐했다.
첫 대전(對戰)의 상대는 문경군이었는데 대회규정에 따라 우리가 홍공(紅球)을 잡고 먼저 쳤다. 1번 선수가 1번 공을 쳐서 제1게이트를 통과하고 제2게이트의 자리를 점령(占領)했다.
이어서 3·5·7번의 선수들도 기특(奇特)하게도 모두 제1게이트를 실수 없이 통과했다. 뜻밖에도 우리 선수들 너무 잘 했다. 칠수록 사기(士氣)가 솟아난 우리 선수들, 끝까지 실수(失手)없이 승세(勝勢)를 이어나가 ‘14 대 9’로 대승(大勝)하니, 선수들의 기쁨은 물론이고 응원단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음 경기는 우리와 같은 팀인 경주시와 문경군의 시합이다. 30분 동안 그 경기를 구경하며 휴식(休息)을 한 우리 선수들은 두 번째 대전에 우승후보라고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경주시 팀이다. 더구나 우리는 백공(白球)을 잡을 차례이니 불리(不利)한 경기이다.
짐작하던 데로 초반전에는 경주시 선수들이 잘 했고 우리 선수들은 불리했다. 그런데 중반전(中半戰)이 넘어서자 전세(戰勢)가 반전(反轉)하여 경기가 잘 풀리니, 사기가 오르고 힘이 솟아난 우리 선수들, 전세를 뒤엎고 ‘12 대 9’로 역전승(逆轉勝)하여 8강전에 오르니 선수들은 물론이고 응원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가 놀라고 칭찬이 쏟아졌다.
경상북도 내 31개 시·군 중에서 끝으로 가까운 작은 군세(郡勢)에 뒷받침도 적은 신출내기 선수들이 8강에 올랐으니 모두가 놀랄 지경이었다. 기쁨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오후에 치러지는 8강전에 참가했다.
8강전부터는 두 팀씩 대전하는 토너먼트식이다. 8개 팀이 추첨에 의하여 대전하게 되는데 우리는 강팀 중의 강팀인 구미시와 대전하게 되었는데 불운(不運)하게도 백공을 잡게 되었으니 더욱 불리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경기도 잘 풀리지 않았다. 상대팀은 제1게이트를 모두 통과했는데 우리 팀은 두 개 밖에 통과하지 못했다. 결과는 초반전에서 이미 결정이 난 셈이다.
그러나 기회는 아직도 있다. 끝까지 해보자고 이를 악물고 분전(奮戰)을 했다. 후반전에 가서야 전세가 조금 풀렸지만 이미 반전(反轉)할 시간이 없었다.
주심(主審)의 ‘경기시간 종료’의 선언으로 경기는 끝이 났고, 경기결과는 ‘12 대 18’로 졌다. 초반의 불리와 부진(不振)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래도 12점이나 땄으니 장한 일이다. 분(憤)하고 아쉬웠지만 8강에 올랐고, 우승후보팀과의 경기에서 12점이나 땄따는 자부심(自負心)을 간직하고 자위(自慰)하며 ‘내년에 다시 보자!’고 다짐을 하고 군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