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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처와 첩의 해몽 이야기

admin 기자 입력 2014.11.10 16:19 수정 2014.11.10 04:19

ⓒ N군위신문
한 선비가 있었는데 아내와 다정하게 잘 살다가 친구의 소개로 첩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이 선비는 첩과 더불어 살면서 본처를 박대하여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선비가 잠을 자다가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머리에는 말통(열 되가 들어가는 사각의 나무통)을 이고, 발에는 나무로 된 나막신을 신고, 허리에는 기(기) 풀로 만든 띠를 두른 채 손에는 피가 흐르는 음호(陰戶)를 쥐고서,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다.

이에 선비는 매우 괴이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음이 산란하여 첩에게 꿈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자 첩은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했다.

“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머리에 말통을 썼으니, 이것은 곧 죄를 짓고 형벌을 받아 옥에 갇혀 큰 칼을 쓸 징조를 나타냅니다. 둘째로 허리에 기라는 풀로 엮은 띠를 둘렀으니, 이것은 죄를 짓고 붉은 색의 오랏줄에 묶여 끌려갈 징조라 하겠습니다. 셋째로 나막신을 신었다는 것은, 옥에 갇혀 나무로 된 형구인 질곡(桎梏)을 발에 차게 될 징조입니다. 넷째로 손에 피가 흐르는 여인의 음호를 쥐고 있었다는 것은, 형벌을 받아 머리가 잘려 피를 흘릴 징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들어간 것은, 사형을 받고 죽어서 혼백이 가묘(家廟)에 들어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필시 죄에 몰려 죽을 매우 흉한 꿈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첩의 이처럼 아주 세밀하고 자신 있게 해몽하며, 매우 불길한 징조인 것으로 설명했다. 이에 선비는 첩의 설명이 모두 그럴듯려 마음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가문이 불행하여 곧 큰 재앙을 만날 것 같으니, 내 화를 당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기보다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날부터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선비의 아내는 비록 남편이 첩과 살면서 자신을 박대 하지만, 그래도 부부의 정으로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누워있는 남편을 찾아가 물었다.

“여보, 당신의 병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보구려, 내 얼마 전에 이러저러한 꿈을 꾸었소. 그래서 첩에게 얘기했더니 해몽이 몹시 불길하기에, 내 미리 죽으면 집안의 화를 면할 수 있을까 하여, 죽으려고 식음을 폐하고 있는 중이라오.”

이에 아내는 한참동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여보! 그 꿈은 매우 좋은 길몽인데 무슨 걱정을 해요?”
“길몽이라니? 어떻게 해석을 해서 길몽이 되오?”
“들어 보세요. 말통을 이고 있었다는 것은, 말통은 네모진 물건이라 반드시 사모(紗帽)를 쓸 징조입니다. 허리에 기라는 풀로 만든 띠를 둘렀다고 했지요? 기는 ‘콩깍지’를 뜻하는 글자이기도 합니다. ‘콩깍지’는 ‘깍지’라고도 하니, 곧 뿔로 만든 각지(角指)의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이것을 허리에 둘렀으니까 곧 각대(角帶- 벼슬한 사람이 띠는 띠)를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아내는 “발에 신었다는 나막신은 곧 목화(木靴 - 사모관대에 신는 장화 같은 신)를 뜻하며, 손에 쥐었다는 피 묻은 여자의 음호도 매우 좋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피는 붉은 색을 나타내며, 음호는 보통 하는 말로 ‘보지’가 되니까 보지(寶紙- 중요한 것을 기록한 종이)를 같은 음으로 숨겨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붉은 색의 보지’란 ‘홍보지(紅寶紙)’를 의미하니, 회시(會試) 과거에 급제했을 때 합격을 알리는 홍패 (紅牌)가 되므로 반드시 급제할 징조입니다. 따라서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허리에는 각대를 두르고, 발에는 목화를 신고서 손에 홍패를 쥐고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들어가 배례한다면, 이게 ‘대길(大吉)’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아내의 풀이를 들은 선비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 것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그래서 일어나 마음을 먹고 식사를 하여 기운을 회복하고는, 그 해 봄 과거에 급제했다.
이 후 선비는 첩을 내보내고 아내와 화락하게 살면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말년에는 재상자리에까지 오르며 부부가 늙도록 해로했다고 한다.

글제공: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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