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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창 시인 |
ⓒ N군위신문 |
인생 100세 시대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요즘엔 노인이라는 말 함부로 쓰다간 낭패를 당한다.
듣기 좋게, 기분 좋게 격식을 갖추어 선생님이라 불러봐라 얼마나 싱글벙글 하겠나.
오늘의 노인들은 그 옛날의 노인과는 너무나 다르다.
일본에서는 일흔을 넘으면 성숙했다는 뜻으로 숙년(熟年)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노년을 골든 에이지(golden age)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고용법을 고쳐 55세 이상을 장년(長年)으로 바꿔 쓰기로 했다. 장년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막 지났을 뿐이다.
이젠 정년을 은퇴 하고도 30~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 노년이라 하지마라. 아직은 봄꽃보다 아름다운 구십춘광(九十春光)이다. 지금의 나이가 몇이든 인생 2모작을 하려면 일단 건강해야 한다. 적당한 운동과 취미생활은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기본이다.
노년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꿈을 꾼다.
여가와 자기 개발에 적극적인 노인을 엑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한다. 노년의 빛깔을 통상 실버로 정의되지만 능동적이고 찬란한 황금기라고 주장하는 휴머니스트도 있다.
우리나라 옛말에 ‘노느니 장독 깬다.’ 는 말이 있다. 또 ‘노는 입에 염불 한다’는 말도 있다.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뭐든지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와 철학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무료하다고 느끼면 붓글씨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책을 읽다보면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도 얻게 된다.
고대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는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 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 하려 할 때만 존경 받을 것이다.”고 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다. 희망은 원래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만들어야 가능하다. 퇴계 이황은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지닌다(梧桐千年老藏曲).”고 했듯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노년을 맞이하면 행복한 것이다.
올해 아흔넷의 나이에도 사랑에 빠진 행복한 노인이 있다. 전 서독 총리 헬무트 슈미트의 이야기다. 망백(望百)의 나이에 새로운 연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2년 전 상처하고 개인비서로 일해 온 루스 로아(79세)와 사랑에 빠졌다. 무엇이 과연 행복한 노년인가? 남이 보기에는 한심하고 엉뚱해 보일지라도 자기가 자기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 할 수만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아흔넷의 나이에도 사랑에 빠진다면 분명 행복한 노인이다.
늙는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나이를 핑계로 ‘이젠 못해, 더 이상 할 수 없어’라는 이유로 멈추면 인생은 끝나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 모 일간지에 노인들의 활기찬 기사를 봤다.
미국 41대 대통령이었든 ‘조지 부시’는 자신의 90번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뉴스를 봤다. 참으로 담대한 공중곡예다. 또 세계 바이올린계의 거장 ‘이브리 기틀리스’는 현재 92세의 나이다.
그럼에도 얼마 전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음악가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업에 참가하여 직접 연주해 청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얼마나 대단한 노익장인가. 참 부럽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나가오카 미에코’라는 할머니는 80세에 시작한 수영을 95세 때 배영 200미터 종목에서 시니어 수영선수로 세계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 백수(99세) 나이에 세계기록을 11개나 보유하고 있는 세계 챔피언 할머니의 어엿한 이야기다.
우리는 누구나 90세나이에 스카이다이버가 될 수 없고, 92세 나이에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란 칭호를 받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95세 나이에 세계 챔피언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원론적인이긴 하나 마음먹기 따라선 노년을 새로운 2모작 인생으로 맞을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열정으로 또 다른 시작을 이끈다는 것이다.
도전하는 자는 노년에도 조연이 아닌 여전히 주연으로 인생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지게 살고 있다.
세월의 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지만 아직은 노년이라 생각지 않는다. 인생의 시차를 뛰어 넘어 최선을 다해 사는 노년들을 누가 감히 노인이라 부르겠나.
정년 없는 시니어가 무한 질주하는 사회. 얼마나 아름다운가.
백수(白壽)까지! 나도 아직은 20년은 더 일하고, 뛰어도 될 나이다. 노추한 과욕일까. 아니다. 해보겠다는 의지다. 느티나무는 나이테가 쌓일수록 나무가 굵고, 뿌리가 튼튼해야 한 500년 버티는 거목이 된다.
황성창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