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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고향마을에서의 겨울맞이

admin 기자 입력 2014.12.15 17:32 수정 2014.12.15 05:32

ⓒ N군위신문
갑자기 한파가 독하게 몰아치니 어느 잊지 못할 겨울이 생각난다.

김장은 이미 끝났고 달력은 한 장 남아 쓸쓸함을 더해 간다. 나이는 한 살 보탬 속에 세찬 바람 낯을 스치니 음산함에 음산함을 더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세월은 주마등처럼 지나고 그리움은 날을 세운다. 헤어지기 싫었던 그리운 죽마고우(竹馬故友)그들은 이 추운 겨울 하나 둘 하늘나라로 가고 몇 안남은 친구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는지 소식도 없고… 보고 싶다!

이것이 세월에 매달려 통곡하는 이의 애잔한 마음이란 말인가. 먼 옛날 우리가 어릴때는 이 때쯤이면 한낮에도 처절한 추위와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담벼락에 붙어 따듯한 햇볕을 쬐곤 했다. 햇볕이 내려쬐는 집은 밖이 집 안보다 더 따뜻했기 때문이다.

햇볕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햇볕이 구름 사이로 들어가면 어느 틈엔가 손은 핫바지 속으로 들어와 있다. 저녁이면 어느 집 굴뚝에서나 밥 짖고 군불 때는 연기 피어오르고 가정의 따뜻함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떠한가. 풍족해도 너무 풍족하다. 풍족의 그물에서 허우적대다가 정체성을 잃어간다. 겨울철에는 소갑, 장작 가득히 쌓아놓는 것은 고사하고 더운물 나오는 아파트에서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풍속도가 되였다. 예전에는 김장을 해놓으면 1년 농사는 다 지었고 그것으로 등 따습고 배불러 했다.

동내 아낙네들은 의례 인사로서 “자네 집 김장 했나?” “안 했지”하면 “그러면 내가 거들어주지”라며 막상 김치 담그는 날에는 이미 동네 김치가 되어버렸다.

김장 후 겨울의 잔치에는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이웃 간에 정이 넘쳐흐른다. 그 때의 세상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토(淨土)의 세상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살기는 풍족하다 하여도 어디에서도 그와 같이 따듯한 아름다운 정경은 찾아 볼 수 없다. 어디에서 잊어버린 아름답고 정 많은 옛날을 찾으란 말인가?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남편, 자식들의 밥을 이불속에 묻어두고 화롯불에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이며 쫄아가는 된장찌개를 보면서 희미한 등잔불에서 아랫목에 앉아 뜨개질하며 기다리는 것이 어머니들의 포근한 일상이다. 마치 동양화의 아름다운 여백을 보는 듯하다.

귀소 본능이 있는 연어는 산란을 위하여 높은 폭포를 뛰어오르나 뜻을 이루지 못해 반복 고뇌에 시달렸다. 우리 인간도 고뇌의 줄기에 칭칭 감겨 있다. 아무리 과거가 고뇌에 차고 쓰라려도 그리워지는 것은 그땐 가난 했지만 가족 간 화목과 이웃 간의 정이 있었고 일흔이 넘은 지금 잊을 레야 잊을 수 없는 묵은 때가 묻어 있어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살던 기억일망정 더 그립고 생각나는 것은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징조겠지. 이제는 옛날을 그리워한들 그것은 단지 그리움에 그칠 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이 아니다.

시대를 거스르며 산다 한들 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그것이 문풍지처럼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아니다. 날씨 뿐 만 아니라 세상의 추위 또한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이럴 때면 추운 겨울 부뚜막에 신발을 올려놓던 어머님의 정성이 몹시 그립다.

세차게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 밤 밖에서 꽁꽁 언 몸으로 들어오는 아들에게 “추웠지? 어서 아랫목에 발 집어넣어라. 곧 저녁 차려 오마” 하던 매일 반복되는 숨 비 소리처럼 길게 들려오는 그리운 그 음성 단 한 번 만이라도 더 들을 수가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을 텐데.

이제 세상은 냉랭한 한파가 몰아치듯 야멸치다. 그래도 어느 선량한 이가 있어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 거야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것을 믿는 나는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겨울이 지나 새싹이 치솟는 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충·효·예 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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