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어느 듯 12월 마지막 날이다. 봄과 여름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한데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송년 이맘때는 손도, 발도 꽁꽁 시린 겨울이다. 매섭고 찬 겨울바람이 불 땐 그 옛날 따뜻한 아랫목이 더욱 그립다.
해마다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아쉽고 허전하다. 갑오년에 다사다난이란 말, 참으로 우울하고 참담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는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걷듯 조마조마했다. 세밑에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는 건 남기고 어느 것은 버려야 할지를, 기억과 망각의 경계선에서 한 해를 보내야만 하는 아쉬운 회한도 많다.
시간을 서투르게 쓴 것은 아닌지 너무 짧은 세월은 시간을 도둑 당한 것 같다. 정초에 세운 야망 하나 이루지 못한 게으름의 자괴감으로 엄벙덤벙 살아온 날 들이 눈앞을 스친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자네는 “삶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살아온 세월과 반비례 한다”고 했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어떠한 간절함에도 되돌아오지 않는 무심한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묻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내 운명에 거친 발길질에 차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뒷맛이 씁쓸하다. 모두들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한 해가 아니던가.
제야의 종소리는 울리고 동쪽 하늘은 여명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2015년의 첫 태양은 불끈 솟아올랐다. 갑오년 새해를 새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다른 새해가 코앞에 있다.
새해는 빛처럼 밝고 좋은 일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묵은해를 되새기며 새해부터 작심하여 신년 계획을 세워보자. 새해 첫날이라고 별 다를 게 없다지만 시작의 설렘은 숨 가쁘게 차오른다. 못해 본 일, 하고 싶은 일, 기어이 해야 할 일을 여벽에 그려보자. 그러기 위해 불교에서 말하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참뜻을 풀어본다. 즉 먼 산만 처다 보지 말고 발밑을 똑 바로 보자는 뜻이다.
느림 걸음으로 세상을 탐색하며 발밑부터 차근차근 다질 일이다. 일 년 이라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 사실에 감사를 느끼자. 올 한 해는 주춤거리지 않고 만사가 형통 할지, 힘껏 도전하면 이룰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본다.
아마추어정신은 도전에 있는 것이고, 프로정신은 기록을 깨는데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미련과 아쉬움은 새로운 도전에 불씨가 된다. 새해 첫날 심기일전하여 사랑과 건강, 희망으로 출발하자.
2015년, 365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찰나들이 가득 채워져 나를 내답게 할 것이다. 가슴을 활짝 열고 희망이란 꽃을 피우자.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이왕에 사는 삶, 힘차고 보람 있게 사는 거다. 타이어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새로운 길로 악세레다를 힘껏 밟아 가는 거다.
새롭게 시작하는 신년에는 내면을 위한 진지한 시간들로 꽉 채워 봤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1년 365일, 세월은 눈 깜빡 하는 찰나다.
유별난 인생도, 특별한 전락은 없을 거다. 훌쩍하는 세월, 날마다 좋은 일만 생각하자.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지금 막 떠오르는 태양 같이 좋은날 있으리라 믿는다.
황성창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