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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만리장성에서 보낸 뒷이야기

admin 기자 입력 2015.01.16 10:35 수정 2015.01.16 10:35

ⓒ N군위신문
덧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서 고희를 맞이했다. 지나간 자리를 뒤돌아보니 허무함뿐이다. 흔적이라도 남겨두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가진 것 아무것도 없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말라빠진 나무둥치 같은 육신뿐이다. 여기까지라도 살아왔기에 다행스럽다.

고희를 맞은 우리들은 초등학교 동기로 서른여섯 명이 "일심회"란 이름으로 구성하여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우애로 잘 지내오고 있는 터이다. ‘세월에 이기는 장수가 없다'하듯 긴 세월 동안 쓸쓸히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이며 뜻밖에 일어난 안타까운 일들도 많다.

특히나 살아생전 재담꾼으로 익살부리며 우리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던 친구가 고희연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친구죽음으로 우리들에게 준 슬픔과 안타까움을 말 할 수 없다. 낙엽이 한잎 두잎 떨어지듯 내 곁을 홀연히 떠난 친구들을 지켜보며 격세지감이 새롭게 느껴진다.

회자인구란 한자성어를 빌린다. 예순 살이 넘으면 지난날의 직위에 대해 논하지 않으며, 일흔 살이 넘으면 재산이 많고 적음을 논하지 않고, 여덟 살이 넘으면 산에 누워있으나 집에 누워있으나 같으니, 노인 연령에 도달하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인생을 즐기면 살자는 내용을 음미해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멋있게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렇듯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면서 달려오다 잠시 쉬는 동안 회고해 본다. 아쉬움과 후회도 많고 맞바람에 개 눈 감추듯 눈 깜짝할 사이 어느덧 칠순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우리 곁을 떠난 친구며 병고와 씨름하며 투병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난다. 이제 어쩔 수 없다. 푸념이나 하듯 지나간 일들을 반추해 보며 살아가야 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친구들이라고는 허송세월 속에 무심코 보내버린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찾으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한다.

우리들은 이러한 현실을 예견이나 한 듯 격월제로 만나 즐기면서 여기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매서운 세월이 우리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겨우 열아홉 친구들만 남겨놓고 아무렇지도 않는 듯 태연히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다. 먼 여행길을 홀로 걷고 있는 친구들에게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과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가족과 함께 고희연을 가지려 3박4일 동안 중국으로 떠나보려 한다.

관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을 몇 번씩 다녀왔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중국을 찾는 우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지나간 2002년 1월 5일 합동회갑연을 제주도에서 가졌다. 십년이 지난 지금 2012년 1월 6일 합동고희연을 중국에서 갖게 되어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으며 여간 자랑꺼리가 아닐 수도 없다. 이러한 아름다운 분위기를 하나 빠뜨림 없이 고이 간직하고 싶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나열해 나름대로 엮어본다.

2012. 1.6(금요일) 첫째 날
십년 전만 했어도 고았던 얼굴들이었는데 그새 눈가에 온통 주름살뿐이다. 그 얼굴이며 그 몸매에 추운 겨울날씨에도 불구하고 멋 부려 본 흔적이 역역하다. 우주복 차림에 긴 코드를 걸쳐 입고 붉고 검은 형형색색모자에 검은 안경까지 걸치고 어슬렁어슬렁 걸음으로 모여든다. 촌뜨기는 아무리 꾸미고 치장해보아도 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멋부려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오전 9시경 한사람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했다. 9시30분 출발하여 10시30분경 대구공항에 도착 후 국제선 수속을 마치고 비행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져 가는데 한 친구가 중국에는 술값이 비싸다 하며 공항 밖 마트로 뛰어갔다. 출발 직전 한 보따리 안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일행은 전원 탑승하고 멋진 고희연을 생각하며 낮 12시35분 중국행 CA 146편으로 무사히 출발하였다.

오후 2시경에 북경에 도착하였다. 현지 가이드가 친절히 맞이해준다. 휴식도 없이 곧바로 전용차량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이화원으로 갔다. 이화원은 약 800년 이상 된 역사를 가졌으며 북경에서 16km 떨어진 북경에서 제일 큰 공원이다.

역대 황제들의 행궁(덧말: 임금의 별궁)으로 쓰였다. 청조 말기에 서태후가 자신의 은거 장소를 만들기 위해 1888년 공원 재건공사 때 무리한 군비를 유용하였다. 이로 청의 해군이 약화되어 청조가 멸망을 좌초케 된 원인이 되었다.

이화원을 관람하고 중국의 전통요리 오리구이를 음미해 보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 북경 최고의 다채로운 기예쇼 서커스 관람하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였다.

기예쇼 공연장에 들어갔다. 현지인들과 외국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다. 다행히 우리는 좋은 자리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도록 사전에 좌석 표를 구입하여 편히 관람할 수 있었다. 기예사들이 조명을 받으며 환상적인 쇼를 펼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중 자전거 한 대에 십일 명의 기예사들이 뒤 엉켜서 부리는 묘기는 정말 신기하였다. 현란한 기예쇼에 감탄을 하며 중국관광에 매우 흡족한 듯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기예쇼 관람 후 북경 최대 번화가인 왕부정 거리를 둘러보았다. 왕부정 거리는 한 마디로 사람과 먹거리 많기로 유명하다. 사람이 서있으면 물결에 따라 흘러가듯 저절로 떠밀려 간다. 뭐 하나 사고 싶어 물건을 고르는 순간에도 떠밀려 간다. 자국 사람들은 무엇을 제일 많이 사먹는지 본다. 양 꼬치, 전갈튀김, 과일꼬치, 떡볶이, 견과류 강정 등이 주를 이룬다.

한두 시간 가량 사람들이며, 먹거리며, 시내구경을 마음껏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흐뭇한 하루를 보내고 즐거운 내일을 맞으려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1.7(토요일) 둘째 날
일정에 따라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토목공사 유적인 만리장성 관광을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도심지 주택양식은 현대와 옛것이 한곳에 어울러져 있다. 대국이란 말을 듣기에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침 일찍 일어난 참새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인사하느라 재잘거리는 것처럼 우리도 다를 바 없다. 어제 보았던 것, 먹어보았던 것 주고받고 이야기 하느라 버스 안은 시끌벅적하다.

어느 듯 버스는 도심 속을 빠져나와 시골길을 달린다. 차창 밖 산과 들을 보며 달린다. 2002년도 만리장성 관광 왔을 때 이 길을 달려본 적 있다. 당시 산은 모래자갈 석회암으로 헐벗었고 허허벌판에 사람하나 볼 수 없었다. 십여 년이 지난 오늘 만리장성으로 가는 길에 좌우로 보이는 산과들은 확연히 달라졌다.

삭막하게 보였던 민둥산이 조림사업으로 푸른 산세로 변했고 들판에는 하얀 비닐하우스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몇 년 후 되면 산은 푸르게 될 것이며 넓은 들판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과일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우리농산물 생산체계도 하루빨리 여기에 대응 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일반적 통념으로 한번 관광했었던 곳은 기피하는 현상이 많다. 특별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가 만리장성 입구에 멈춘다. 처음 왔을 때는 기상악화로 케이블카 운행할 수 없어 섭섭했었는데 다행히 도보로 올라가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수작업으로 한 벽돌을 만져보기도 하고 장군들이 말 타고 성벽을 오르고 내리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겨울인데도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가면서 숨이 차 쌕쌕거리며 올라가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운 좋게도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하늘로 나는 기분이다. 올라갈 적에는 몰랐는데 내려올 적에는 무서움이 든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잘못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해서 불안하였다. 무사히 내려와서 감사히 생각했다.

허기가 느껴진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버스는 이를 알아차린 듯 부지런히 달린다. 대형 음식점에 도착했다.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음식점이라 한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꽉 찼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식사하는데도 방음 장치가 잘 되어있는지 아니면 식사예절에 익숙한 관광객들로 모였는지 조용하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바로 옆 중국에 있는 모든 상품을 진열해 놓았다고 한 곳으로 갔다. 골동품, 자기, 실크로 짠 각종 모형물, 장신구며 다양한 상품들로 진열해 놓았다. 일일이 보려면 하루해가 모자랄 정도이다. 시간에 쫓겨 못 다보고 떠났다.

버스는 시간에 구애됨 없이 우리를 명나라 황제13능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명13능 입구에는 참도(덧말: 임금이 왕릉을 참배할 적 걷는 길)가 있다. 양쪽으로는 갑옷으로 무장한 12개의 무관석상과 사자, 코끼리, 말, 낙타, 기린 등의 석상이 있다.

명13능 안에는 각종 유물과 유품으로 가득하다. 관광을 끝내고 중국 전통 발 마사지 체험을 했다. 마사지사 들의 실제 나이는 얼마인지 몰라도 어려 보였다. 손놀림은 대단히 유연하며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마사지를 받고 나니 피로가 가시는 듯 기분이 상쾌하다. 즐거운 하루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내일의 행복을 찾으려 꿈속으로 달려갔다.

1.8(일요일)셋째 날
안내원이 하루 계획을 알려준다. 우리일행은 안내원 따라 도보로 천안문 광장 관광에 나섰다. 조용하던 광장이 오늘따라 무슨 날인지 경비가 삼엄하다. 체크하는 곳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천안문 광장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고 건성으로만 보아왔다. 이번에는 알뜰히 찾아보고 충분한 해설을 듣고자 안내원 바로 옆에 따라 다녔다.

만리장성은 북경의 중심이다. 광장의 넓이는 40만㎢이고 50만 명 정도의 집회가 가능하다. 천안문은 명나라 영락 15년에 건설되었다. 처음 승천문 이라고 했는데 전화로 소실되고 1651년에 재건되었다. 이 후 천안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선언 했던 장소이다. 천안문위에 걸려있는 대형 초상화는 중국 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초대국가주석인 모택동의 초상화이다. 천안문광장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인민영웅기념비 가있고 바로 뒤편에 모택동주석 기념당이 있다. 1976년 11월24일에 기공하여 1977년 9월9일에 낙성하였다.

이전에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최근에 와서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70만 명의 노동력이 들어갔다.

천안문광장 서쪽에는 인민대회당이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과 같다. 여기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당. 정부의 중요한 회의가 개최된다. 50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다. 서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면 중산공원이 있다. "연경성은 북경의 옛 이름이다"라는 강희황제가 쓴 난정비정을 비롯하여 원명원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천안문광장 동쪽에는 혁명박물관이 있고 그 옆 건물이 역사박물관이다. 이 두 개의 박물관은 1959년에 세워졌다. 혁명박물관은 100년의 중국사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역사박물관은 고대에서 아편전쟁까지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고궁박물관은 명나라·청나라의 황제가 살았던 성이 박물관으로 되었다. 고궁은 자금성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같다. 천안문에서 일직선으로 전삼전 후삼궁 있다. 전삼전은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을 가리키며 이 구역에는 국가적인 행사와 의식이 행해진다.

후삼궁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을 가리며 이 구역에는 황제가 정무를 보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지역이다. 해설 받아쓰기 쉽지 않네. 정신이 혼미하여 휴식을 취하고 싶다.

천단공원으로 갔다. 이곳은 명나라·청나라 때 황제들이 매년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 피곤함이 역습한다. 자꾸 앉고 싶다. 그럼에도 안내원은 혼자 중얼거리며 걸어간다. 볼거리가 또 있다하며 우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며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설명해준다.

버스를 타고 "금면왕조"를 관람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금면왕조는 중국고대 신화 속 한 여왕이 뜨거운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지불하는 사랑의 로맨스로 전쟁, 상전, 위조, 경축, 달빛, 홍수, 제사, 환화 등 8개 단계를 빌어서 쓴 여왕의 품위와 덕망을 잘 묘사한 걸 작품이다. 중국에서 볼거리라 할 수 있다. 재미있고 감동 깊게 관람했다.

사흘 동안 안내원 뒤를 따라 다니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인생 칠십 고래희"라는 말에 위안을 받으며 피로를 풀었다. 저녁이 되자 시끌벅적하던 사방이 숨 고르는 듯 조용 해 진다. 일석관광에서 우리들을 위하여 마련한 아늑한 연회장으로 안내한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아래 은은히 들려주는 한국가락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워 우리들을 열광케 한다.

당시 연령들은 들쭉날쭉했다. 여든 살 다되어간 친구들도 있었다. 그중 제일 나이 많은 연장자가 마이크 잡고 행사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일흔 살 되도록 무병무탈로 여기까지 걸어온 모두들에게 기쁨과 축하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먼 타국에까지 와서 어렵고 힘든 이 행사를 성대히 맞을 수 있도록 애써 주신 손제원 일석관광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십년 전 회갑연 때도 제주도에서 사장님의 배려로 행사를 잘 치렀는데 오늘 또다시 고희연을 주관해 주셔서 더욱 기쁩니다.

인사가 끝나고 식순에 따라 케이크 자르는 순서다. 네발이 달린 널따란 상위에는 겨울철에 없는 수박이며 참외 등 각가지 음식으로 정성스럽게 진설하였다. 상 한가운데는 초대형 생일케이크에 우리 모두의 나이를 합한 대형 촛불이가 우뚝서있다.

나이는 일흔 살 되어도 마음은 아직 어린애와 같다. 서로의 생일을 축복하며 "생일 축하노래"를 부른다. 앞날의 영광을 밝혀 줄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잘랐다. 모양새 있게 차려놓은 칠순 상 앞에서 한 가족 한 가족 기념촬영을 시작으로 잔치가 벌어진다.

푸짐한 음식과 40도나 되는 중국고유의 술인 고량주로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자꾸만 흘러간다. 취기가 오른다. 술이 약한 친구는 서너 잔에 곤드라진다. 중국 한 복판에서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연회가 무럭 익어갈 무렵 친구들은 가이드가 불러주는 "어머님의 은혜"노래에 어린애마냥 눈물 글썽이며 훌쩍거린다.

우리들은 진행자가 마지막인사 끝으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연회장 사장님께서 손 흔들어주며 내년에 "또 온 네이"하는 인사에 "또 올께"하고 떠났다. 사장은 중국사람 이면서도 경상도 말투로 인사를 곧잘 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무심코 흘러간다. 막을 수 없는 세월에게 부탁이라도 하는 듯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건강히 잘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애원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남은 인생 아까워 발버둥 치는 듯하다. 이는 누구나 싶게 할 수 있는 말 아니다. 좋았던, 나빴던 어떤 일을 당해보지 않고는 고통의 아픔은 아무도 모른다.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조금 있으면 여든 살이 다 넘어가는데 애원이라도 할 만하지 뭐! 그렇다고 무작정 맞다 것은 아니지만…. "너도 내 나이 되 봐라"하는 속언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머물 것이라 믿는다. 지나간 일들을 음미해 보면서 내일을 생각한다.

1월9일(월요일)넷째 날
오전 8시20분 북경출발이다. 평일보다 일찍 일어나야한다. 지난 밤 늦도록 즐기며 놀았던 탓에 잠이 태부족하다. 대취된 술이 아직 더 깨어 모다 얼굴들이 옹송옹송해 보인다. 걸음 거리가 흔들흔들한다. 그래도 좋다. "인생 칠십 고래희"라 했다 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해를 꼭 안고 70km로 달리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간다. 오늘과 같은 즐거운 날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내 곁을 홀연히 떠날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기만 빌면서 서로서로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흔들흔들하며 걸어가는 걸음 모습 또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길고도 짧은 3박4일간 여정의 막을 내린다.
그동안 고생하신 일석관광 손제원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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