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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망매가와 도솔가

admin 기자 입력 2015.02.02 18:38 수정 2015.02.02 06:38

↑↑ 류미옥 해설사
ⓒ N군위신문
이번에는 선조들의 문화와 얼이 담긴 향가, 요즘 세대들은 생소하다고 느낄 향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 해보고 그 뜻을 계승하고자 한다.

향가에 대해 알아보기 전, 향가의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 가보자. 향가의 향(鄕)에는 우리나라 또는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옛 신라 사람들이 중국의 한시와 같은 시가(詩歌)를 구분하여 만들어 부르던 노래가 바로 향가이다.

향찰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 와서 우리말의 순서되로 써 놓은 글이다.

향가가 현 시대에 전해 지고 있는 것은 총25수 인데 만약, 신라51대 진성여왕(2년) 888년에 삼대목(三代目)이 라고 하는 향가집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면 25수 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된다.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은 사뇌가를 수집한 것이다. 신라를 시기적으로 삼대(三代)로 나누어 내려져오는 모음집으로 예부터 현 시대에 까지 신라 전대에 걸친 향가집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간위홍’과 ‘대구화상’ 이 두사람이 삼대목(三代目)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실전 되었다고만 알려 지고 있다.

먼저 삼국유사의 향가 14수를 구분해 보면 4구체, 8구체, 10구체 이렇게 세가지가 있다.
4구체는 4줄, 8구체는 8줄, 10구체는 10줄인데 10구체는 4줄-4줄씩 짝수로 내려 오다가 마지막 2줄은 낙구(떨어져 있는 구절)이며, 9번째 줄은 감탄사가 들어 간다.(아흐라고 표현한다)

4구체의 향가는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이며 8구체는 처용가와, 모죽지랑가 10구체는 재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원왕생가, 원가 우적가 ,도천수대비가, 혜성가 등 이다.
10구체는 가장 완성된 작품이다.

시조도 초장, 중장, 종장으로 나뉘듯이 향가도 점차 형식이 변해 가면서 시조로 정착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부터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릴 신라시대의 향가 중 재망매가와 도솔가를 지은 월명사를 먼저 소개하려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승려이며, 향가작가로 살아갔던 ‘낭승 월명사’는 능준대사의 제자로서 항상 사천왕사(四天王寺)에 머물렀는데, 그는 피리를 잘 불었다고 한다.

하나의 일화로써 달밤에 피리를 불며 큰 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 멈쳐 섰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길을 월명리(月明里)라 부르게 되었고 월명도 이 일로 더욱 이름이 알려 졌다고 한다.

재망매가

생사(生社)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彌陀刹)세상에 만날 나는 도(道) 닦아 기다리리.

위의 제망매가의 내용을 살펴 보면 월명사의 누이는 젊은 나이에 죽은 듯 하다.
작별 인사 한마디 나눌 겨를 없이 순식간에 죽음의 길로 떠나버린 누이를 생각하면 얼마나 충격과 고통이 컸는지 그 아픔이 느껴진다.

스님이라면 보통은 49제를 지내면서 불경을 읽고 공양을 올리며 누이의 영혼이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원 하였을테지만 월명사는 향가를 지어 부르며 누이를 추모 한다.

놀라운 일은 노래가 끝났을 때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제단위에 올려 진 종이돈이 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
그 종이돈은 죽은 영혼이 다음 생으로 가기위한 여비 즉, 노잣돈일 것이고 또 서쪽으로 갔다는 것은 죽은 누이의 영혼이 서방정토로 갔다고 추측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름내 푸르던 나뭇잎이 이른 바람에 덧없이 떨어져 버린다며 사람의 목숨은 정말 덧없는 것이구나 라고 탄식 하는 것에 월명사의 아픔을 알수가 있다. 작별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순식간에 죽음의 길로 떠나 버린 누이를 생각하는 아픈 마음을 주위 식물에 표현한 것은 슬픈 마음의 절절함을 자연에 비유한 듯하다.

향가의 힘이 얼마나 대단 했는지 알수 있는 것은 도솔가의 배경설화를 보면 두 개의 해가 나타난 재앙을 푼 것을 보면 월명사는 분명 비범한 능력의 가지고 있었다.

경덕왕(760)년에 해가 두개 나타나 10일동안 사라지지 않아 민심이 뒤숭숭해지자 고민하던 경덕왕이 해법을 묻자 신하들은 인연있는 스님을 불러 산화공덕(散花功德)을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열흘동안 해가 두개가 떠 있는 사건에서 보듯이 해가 두개나 나타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며 이것은 어떤 정치적인 사건으로서 상징적으로 보아야 한다

또 하나의 해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권력자가 나타 났다는 뜻이다
왕권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으로 인한 혼란한 상태를 하늘에 해가 두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으로 표현 하였다.

왕권을 놓고 왕실과 귀족층이 충돌 한 것이라 국가 위기 상황에서 경덕왕은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꽃을 뿌리고 도솔천의 부처님을 맞이하며 공덕을 쌓은 의식을 거행 했는데 화랑의 무리에 있으면서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던 월명사가 이 일을 맡게 된다.
월명이 도솔가를 지어 부르니 조금 지나자 하늘의 재앙이 사라졌다.

신라시대 때부터 나라의 어려움이 있을때는 노래로 극복하려는 전통이 있었음을 향가를 통해 알수가 있다.

향가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고유의 시가 이지만 배경설화의 내용을 알아야만 신라인의 마음을 이해 할수 있다.

첨단 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요, 노래들 같지만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던 신라인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수 있다.

일연공원에 향가 7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교과서에 실려 있는 향가들이다.
현존하는 향가가 애초에 어떠한 성격의 노래 였는지 그 배경설화에 대한 이야기와 삼국유사를 기록한 일연스님의 향가에 대한 인식을 되새기는 현장학습장으로나 관광명소로 거듭 나기를 희망 한다.


류미옥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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