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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박사 |
ⓒ N군위신문 |
봄바람은 새 생명의 요람이다. 고요히 잠들고 있는 대지를 잠에서 깨운다.
꽁꽁 얼어붙은 산골짝에 실바람이 한들한들 소리 없이 찾아든다. 버들강아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계곡을 훈훈하게 한다.
새싹 움트는 소리가 숨죽은 듯 조용한 산천을 진동시킨다. 그윽한 봄 향기가 굳게 닫친 창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온다. 진정 봄의 전령이 왔음을 알려준다.
봄바람의 여신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봄 향기 가득 실은 꽃마차 행렬 따라 합천 황매산으로 갔다. 심심산골에 외로이 핀 이름 모른 꽃들이 수줍은 듯 고개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다.
소나무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깊은 산골을 가득 메워 등산객들을 매혹시켰다. 울창한 숲과 수정같이 맑은 물은 좋은 배경이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에서 여러 장 찍었다.
철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자연이 우리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변화무상 속에서 세월을 낚으며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상쾌한 봄바람의 맛을 마음껏 느꼈다.
철쭉과 억새로 유명한 합천팔경 중 하나인 황매산, 울긋불긋한 등산복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운작雲雀(덧말:운작)들이 재갈거리듯 온갖 이야기 꺼리로 꽃을 피우면서 등산객들이 모여들었다.
산기슭에 들어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산꼭대기가 하늘과 서로 맞대어 있다. 숨을 헐떡이며 등산객들 틈에 끼어 올라갔다. 얼마쯤 갔을까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정상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까?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대답에 철쭉꽃 냄새가 코에서 단내난다. 철쭉제 구경하려 이른 아침 서둘러 찾아왔는데 체력의 한계점을 드러낸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더니 실감케 한다.
바위에 걸터앉아 멀거니 하늘을 쳐다본다. 지평선 저 넘어 아롱거리는 아지랑이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아장거리며 걷는 햇병아리들 떼를 지어 봄나들이 하는 마냥 산허리 양지쪽에 앙증맞은 제비꽃들이 소곤소곤 거리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봄은 벌써 찾아왔는데 나비는 아직도 잠에 취해 마중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쩌다 연약한 날개를 저으며 그 동안 소원疏遠(덧말:소원)했던 꽃님들을 찾아다니며 입맞춤하는 나비가 눈에 들어왔다.
봄의 여신이 보낸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지도 못한 채 봄은 내 곁을 홀연히 떠나버렸다. 봄이 남긴 그 자리에 할미꽃 제비꽃 철쭉꽃 향기는 아직도 그 주위를 맴돌고 있다. 바람은 기분 내키는 대로 불어댄다. 봄은 떠났어도 춘풍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천지를 초록으로 변화시켜버렸다.
靑石(덧말:청석)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