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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曹操)가 능력만 있으면 출신이나 평판 따위는 무시하고 사람을 쓴 것에 비해 원소(袁紹)는 그렇지가 않았다. 원소는 인간 그 자체보다도 가문이나 직위, 경력 따위 등 그에게 부가된 사회적 제도적 인정을 중시했다. 뒷날 조조와 원소와의 다툼에서 승패를 결정한 것은 그런 두 사람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동탁(董卓)의 휘하 장군 여포(呂布)를 상대로 하여 관우(關羽)의 청룡도가 태풍처럼 후리고 가면, 뒤이어 장비(張飛)의 장팔사모가 유성처럼 찔러오고, 다시 유비(劉備)의 쌍고검이 매섭게 배어 왔다손견(孫堅)의 아들 손책(孫策)은 유표(劉表)에게 패한 선부(先父)의 영구를 앞세우고 강동으로 돌아가 장사지냈다.
그런 다음 무리를 이끌고 강도(江都)에 머무르며 몸을 굽혀 어진 이와 학식 있는 선비들을 맞아들이고 사방의 호걸들을 대접하니 세력이 불어갔다.
천도(天道)가 멀다 하나 그렇지는 않다. 조조가 지난날 동탁 장군을 죽이려다가 실패하여 도망가는 길에 착오로 자기를 환대하는 여백사(呂佰奢) 일가 를 몰살시킨 일이 있었다.
그 응보로 이번에는 서주(徐州) 도겸의 수하 장수 장개(張闓)가 조조의 부친 조숭과 그 일가 40여명을 조조의 근거지로 호위해 가는 과정에서 수레에 실린 금은보화를 탈취하기 위해 모조리 죽여 버렸다.
유비는 무슨 일이든 때가 온다고 허겁지겁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때가 자신에게 매달리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성품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바라면서도 그는 익은 감이 떨어지듯 자연스레 일이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조조 그대는 칼로 여포를 베려 하지만 나 유비는 인의(仁義)로 그를 사로잡겠다. 그대는 천하를 얻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 힘을 쳐 없애려 하지만 나는 그 힘을 덕(德)으로 길들여 내 힘에 보태려 한다.”
사실련(사회정의실현시민연합) 중앙회 대표 박두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