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N군위신문 |
격세지감이다. 60~70년대에는 겨울이면 연탄가스중독 사건이 신문지상에 심심찮게 올라왔다. 가스중독으로 멀쩡했던 사람이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울먹이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이러다 보니 겨울이 오기 전에 틈새를 막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저녁 햇살이 해설피할 무렵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황금 돼지 한 마리가 아주 먼 곳에서 한 단숨에 달려와 내 가슴에 덥석 안겼다. 우렁찬 소리로 으앙~ 하며 인사한다. ‘튼튼히 잘 자라다오’하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눈인사했다.
온 천지가 내 것 같았다. 이리저리 뒹굴며 지내던 방이 갑자기 좁아졌다. 나는 드나드는 바깥쪽에, 아내는 안쪽 문을 버티고 서서 밤새도록 지킴이 되었다. 내 자리가 점차 위태로워졌다. 인생이란 다 그렇지 뭐 하고 웃으며 거친 손으로 똥 장군 한번 보듬어 주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두 달 되었다. 해가 짧아진 초겨울 낮에까지만 해도 잘 놀았던 녀석이 밤새도록 자지 않고 칭얼거렸다. 얕은 잠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눈을 뜨고 살펴보았다. 방안에 매캐한 냄새가 진동을 쳤다.
냄새가 짙은 곳으로 따라가며 맡아보았다. 잠자리 바로 위 장판 밑에서 지독한 가스 냄새가 올라왔다. 엉겁결에 양쪽 문을 활짝 열고 찬바람을 넣었다.
아내는 추위도 아랑 곳 없이 어린 핏덩이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참 후 칭얼거리던 녀석이 점차 조용해졌다. 불안함은 약간 진정되었으나 걱정스러운 마음은 여전했다.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이튿날 아침. 가스가 어느 틈새로 들어왔나, 하고 방안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장판을 걷어보고 넋 나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단단히 발라놓은 시멘트에 실금이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어지럽게 갈라져 있었다. 가스가 미세한 틈을 뚫고 아지랑이처럼 솔솔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지금까지 저승에서 살아온 것 같았다.
인간의 지혜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신이 아닌 이상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틈새는 생기기 마련이다. 하마터면 온 가족이 큰 변을 당할 뻔했다.
한때는 검도를 즐겼다. 관장선생님 말씀이 '검도는 틈새가 생명과 같다'고 하셨다.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상대편 틈새를 찾아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 아니었다.
공격자와 방어자는 틈새를 두고 최선을 다한다.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보이면 불행을 좌초한다. 틈새는 서로의 허점을 노출해버린 공통분모이면서도 요술쟁이와 같다.
틈새야, 네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난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내가 너를 알뜰히 보살펴주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이지만 너는 나보다 더 잘못했다. 가스가 들어오면 못 들어오도록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무관심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행여 잘못이라도 있었더라면 우리 세 식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리하여도 너는 미안한 생각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멍청이처럼 입을 딱 벌리고 하늘만 쳐다보고만 있으니 말이다. 너는 멍청이 아니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믿고 그 집에서 삼 남매를 낳고 키워왔다. 똥 장군 덕분에 김칫국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여기까지 왔다.
靑石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