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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불청객

admin 기자 입력 2015.04.06 17:21 수정 2015.04.06 05:21

ⓒ N군위신문
구제역 예방접종으로 한해가 시작되었다. 소, 돼지, 사슴, 양, 등 발굽이 두 개 가진 동물에 발생하는 법정전염병이 구제역이다.

입과 유방 발굽 사이에 물집이 생겨 걸음걸이가 절뚝거리며, 침을 많이 흘리며, 식욕부진 증상 등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폐사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오년 전, 안동에서 발병하기 전에는 병명도 모른 정도로 미미했었다. 육류수입이며 해외여행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지금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형국이다.

구제역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해 질 무렵까지 방역에 안간힘을 쏟았다. 쌀쌀한 초겨울 아침에 축산 농가를 일일이 방문하면서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잠잠했던 바람이 아침 햇살을 한 모금 마시더니만 날씨를 갑자기 영하로 곤두박질시켰다. 손발이 꽁꽁 얼어 한 발자국도 옮기기 힘들었다.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사 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외양간은 한 칸막이에 한두 마리씩 기르고 있는 재래식과 소 목걸이를 설치해서 수십 마리 사육할 수 있는 현대식이 있다. 재래식으로 된 외양간에 있는 소들은 낯선 사람이 들어가면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엉덩이는 담벼락에 붙이고 머리는 밖으로 내다보면서 부채꼴 모양으로 형성해서 버티고 서있다. 이를 때는 담력도 필요하겠지만 우선 소를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후 신속히 주사하는 방법이 뒤따라야 했다.

이에 반하여 현대식 축사는 대부분 자동 소 목걸이인 스탄죤이 설치되어있다. 사료를 먹을 때 목걸이가 자동으로 걸리는 것을 느끼고 있는 소들은 당황한 표정 없이 그대로 서있다. 고생하지 않으면서도 짧은 시간에 많은 소에게 주사할 수 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일 소와 씨름하면서 방역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럼에도 주어진 기간 안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해야 했다. 해가 서산에 걸려 꼼짝달싹하지 못할 때쯤이었다.

한 우리에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벌판에서 달리기하듯 꼬리와 양발을 하늘로 치켜 올리고 먼지를 내면서 서성거렸다. 날뛰는 소 곁으로 다가가면서 한 마리, 두 마리씩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소가 내 곁을 날렵하게 지나갔다. 뒤따라가서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다. 소는 놀랐다는 듯 펄쩍 뛰면서 뒷발로 내 가슴을 걷어차고 달아났다. 뒤로 벌러덩 넘어지면서 숨이 꽉 막혀버렸다.

가까스로 일어나 가슴을 움켜쥐고 소똥 위에 나뒹굴어 떨어진 내 모습을 보았다. 소똥으로 뒤범벅된 이 순간만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축산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시작한 청운의 꿈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린 순간이었다.

예전에는 추접하고 더러운 곳을 비유하여 “돼지우리 같다. 소 마구간 같다”고 했다. 지금은 사람이 내버리는 생활 쓰레기가 주위환경을 더욱 악화시킨다.

시대 흐름에 따라 세상도 많이 변천해왔다. 사립문을 철 대문으로, 초가 이엉을 기왓장으로, 흙벽을 벽돌로, 재래식 건물을 현대식 건물로 변했다. 그 속에서 예방과 치료로 건강히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에 반하여 마구간에도 많은 변천을 거듭해 왔었다. 지금은 재래식 축사들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으며 대부분 현대식 축사로 되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환경과 예방소독 철저로 동물의 건강을 보살펴주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구제역 같은 질병이 복병처럼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른 봄, 가축 예방접종한다고 하루 전에 마을동장에게 연락했다. 축주들은 마이크 소리를 듣고서도 예방을 하지 않으려고 못 들은 척 외출해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한두 마리씩 있는 집을 찾아가야 했다.

양쪽배가 북처럼 불룩하여 임신 일고여덟 달 되어 보인 소가 봄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임신 말기에는 예방을 피하는 것이 서로 간의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임신 몇 개월 되었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곳도 없어 난감할 때 한두 번 아니었다.

축주가 집에 있어도 주사를 쉽사리 맞히려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번에 주사 맞고 사흘 뒤에 유산했다. 여물을 먹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하며 극구 거절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대문을 나서면서 생각해 보았다.

백신에 의하여 유산되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자연유산이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혹연 자연유산일지라도 주사 후 유산되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한마디씩 내뱉는다. “가제는 게 편이다.” 소 뒷발에 차여 가면서도 소의 생명을 지키고자 애쓰는 흔적은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

고생스럽게 구제역 방역이 끝나고 나면 그 후유증도 만만찮다. 농경시대에는 가축이 농사에 유익한 수단으로 이용해왔지만 지금은 생활경제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개체에 따라 구제역 백신에 저항력이 강한 소와 약한 소가 있다. 어쩌다 주사 후 안면 부종, 우울, 의기소침, 유산, 식욕 전폐 등 특이한 증상을 보일 때가 있다. 축주는 당황한 표정으로 전화가 빗발친다. 아픔을 같이 해야 했다,

방역은 전쟁과 다를 바 없다.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드는 반면 엄청난 양의 피 흘림도 감수해야 했었다. 수백만 되는 소가 한결같을 수 없겠지만 간혹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사투를 벌이다시피 해온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간의 힘들었던 시간이 보람으로 다가왔다.

뒷발에 차여 소똥에 덩그러니 누워있었을 때 생각하면 한없이 밉게 보였다. 그럼에도 입이 부르트고 혓바닥에 물집이 생겨 여물도 못 먹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은 애처롭기도 하고 불쌍했다. 질병에서 회복된 가축들이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수의사로서 기쁨은 세상 어느 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박사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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