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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한밤중 소동

admin 기자 입력 2015.04.18 15:08 수정 2015.04.18 03:08

ⓒ N군위신문
소는 외부의 공격을 피해 주로 밤중에 분만한다. 새끼는 이백팔십여일 동안 궁궐 안에서 편안히 지내다가 삼신할머니 성화에 못 이겨 세상 밖으로 쫓겨 나온다. 속상한 새끼는 눈물을 머금고 어미 배를 힘껏 걷어차 버리고 나온다. 어미는 힘든 고통을 꾹 참고 새끼를 낳아 충실히 기른다.

분만고통은 어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새끼에 대한 모성애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했다. 어미보살핌 속에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헤쳐 나갈 길을 찾는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한밤중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중 소 울음은 예사로운 일 아니다. 소 울음소리에 마구간에 나가보았다. 어미가 새끼를 낳고 엉덩이에 빨래줄 같은 것이 길게 달려있다. 축주는 겁에 질려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빨리 오라고만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사람은 분명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지만 한참동안 서성거렸다. 가까스로 확인하고 어두운 밤길을 나섰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또 전화가 왔다. 얼마나 다급했으며 연이어 전화할까 생각했다.

수의사는 어쩜 불행한 직업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축주 집에 도착하면 주인은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으레 마구간으로 안내한다. 오늘도 다를 바 없었다.

높다랗게 걸려있는 희미한 전깃불이 마구간을 온전히 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조심스레 들어가서 소 뒤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건강한 소가 분만 후 자궁전체가 비정상적으로 자궁을 빠져나와버린 자궁탈출이었다.

어두컴컴한 전깃불에 비치는 출혈이 더욱 낭자해 보였다. 처치하는 과정과 처치 도중 일어나는 여러 가지 돌발 상황들을 충분히 설명했다. 주인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처치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경과가 아주 좋았다. 어미는 곧바로 새끼를 핥아준다. 그제야 긴장되었던 축주는 안심이 되었다는 듯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질병과 기형, 태위변경 등으로 새끼가 정상적으로 분만하지 못할 경우를 난산이라 한다. 난산일 때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자기들만의 특이한 방법으로 해보고 안 될 경우 가축병원을 찾는다. 전화를 받고 축주 집에 도착하면 동네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 뱉는다.

이야기를 들은 후 처치하기 전에는 반드시 축주에게 어미 소와 새끼의 건강상태를 알려주어야 했다.

난산은 희비를 엇갈리게 하는 요술쟁이다. 난산처치를 끝내고 나면 주인이 제일먼저 새끼의 생사여부와 성별을 확인한다. 새끼가 코에 들어있는 양수를 내뱉는 소리를 들으면 살았구나하고 법석을 떤다. 수컷이면 얼굴이 밝고 암컷이면 풀이 죽어버린다. 빌어먹을 것 돈도 안 되는 것 낳으려고 이렇게 애를 썼다. 주인은 못마땅한 듯 말을 거침없이 내뱉어버린다.

동네사람들이 “야~ 이 사람아! 새끼가 살았으면 다행이지 수놈이면 어떻고 암놈이면 어떤 노. 잘 크면 되지 뭐 그것가지고 풀이 죽는냐”하며 위로한다. 가세해서 나도 한 마디 던진다. “난산처치가 잘 되어서 다행이지 잘 못 되었으면 제왕절개를 했어야만 했다”하고 자리를 떠난다.

소는 우둔하고 느려 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소와 호랑이가 싸우면 소가 이긴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소는 아주 지혜롭고 예민하다. 난산일 경우에는 더욱 예민하여 낯선 사람이 들어가면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땅바닥으로 수그리고 양 뿔로 공격자세를 취한다.

자기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 해치려고 하는 사람을 알아 낼 만큼 영리하다. 체위를 바꿔가며 간간히 힘을 주어 새끼를 낳는 지혜로움은 정말 대단하다.

소 외모는 우락부락하지만 마음은 여리다. 어린애기와 같이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헛기침과 대화를 매일같이 하는 동안 소는 기침소리와 대화억양을 듣고 주인이라는 것을 모름지기 안다.

어쩌다 사료 주는 삽이 바닥에 떨어져 큰소리가 나면 사료를 먹지 않고 귀를 쫑긋하고 그쪽을 쳐다본다. 다른 짐승들의 발자국 소리도 알아낼 만큼 아주 예민하다.

밤 왕진은 어쩐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난산으로 왕진을 갔다. 주인과 이웃사람 두 분이 취기가 약간 있는 듯해서 마구간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두 사람이 자기대로 해보다 안 되어 나를 불렀던 것 같다. 난산은 시간과 다툴 만큼 급한 상황이다.

도착 후 어미와 새끼건강 상태를 확인하는데 주인은 느닷없이 빨리하라고 지시하듯 한다. 이상야릇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축주에게 설명한 후 처치를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날따라 새끼를 빨리 구해야 되겠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사투를 벌이다 시피해서 새끼를 무사히 받았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시무룩해져 있다.

새끼가 죽어서 나온 것에 불만인 것 같다. 내가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어쨌든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아라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소가 한밤중에 새끼를 낳다가 잘못이라도 생기면 어떠할까 늘 걱정된다.

위험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소는 변함없이 새끼를 낳고 잘 기르고 있다. 오늘도 분만이 가까워진 소들은 가끔씩 불룩한 배를 핥으면서 묵묵히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 박사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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