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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냉혹하고 비정한 정치의 장에서 윤리와 도덕을 앞세우는 것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정치적인 책략이 될 수도 있다. 유비(劉備)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유비는 때로는 의심쩍을 때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의 어질고 의로움은 무슨 신화처럼 백성들 사이에 번지고 있었으며, 한때 세상을 주름잡았던 영웅들이 차례로 멸망해 가는 동안에도 오히려 세력과 경륜을 길러가며 살아남은 그의 유연한 처세도 어떤 기대로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조조(趙操)가 정확한 상벌과 능력에 따른 훈작에 의해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아울러 느끼게 했던 것에 비해, 유비는 끈끈한 인정과 몽롱한 충의에 호소하여 아랫사람들로부터 혈연에 버금가는 애정과 오랜 벗 같은 믿음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비, 그대는 기어이 나를 수고는 많고 얻을 것은 적은 그대의 꿈속으로 끌어들이고 마는 구려. 이제 나 제갈량(諸葛亮)은 항우에게 천명((天命)이 없는 줄 알면서도 따라나선 재사(才士) 범증(范增)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 없게 되었소.” “나 유비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네. 관우와 장비 두 아우는 두 번 다시 이 사람을 폄하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여라.”이른바 수어지교(水魚之交)란 말이 생겨난 연원이다.
유비가 돌연한 비감(悲感)에 빠져 죽음을 생각했다. 잘못되면 함께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줄 알면서도 자신을 따라오는 백성들이 준 감격은 죽음조차 가볍게 여기게 만드는 어떤 정신적인 절정감(絶頂感)까지 주었다.
“나, 조조가 유비라면 처음부터 전투에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백성들을 데리고 떠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굳이 따라오더라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나 조조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마워할 지언정 나를 좋아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려(買) 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다르다. 나는 한번도 그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백성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좋아하고 따른다.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얻고 있다.”
사실련(사회정의실현시민연합) 중앙회 대표 박두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