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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군위신문 |
예전에 우리 집 재산 첫 번째는 외양간에 누워 있는 누렁이였다. 상급학교로 진학 할 때면 학자금 역할을 단단히 했다. 그는 온순하고 어질기까지 하다. 우람한 체구에 애정과 눈물도 많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과 더불어 친숙히 지내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농경시대에는 사람 너 댓 명 몫을 거뜬히 해치우며 중요한 역할 했다. 노동력뿐만 아니라 운송수단까지 필수 불가결이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쉴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다행히 이른 봄에 일 년 농사를 짓기 위한 기초 작업을 마치고 나면 잠시 여유 시간을 갖는다. 이 시기에 새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생활사에 맞추어 생리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출산시기가 다가오면 외양간을 깨끗이 하고 짚도 두툼하게 펴주어 새끼 받을 준비에 정성을 다했다.
우리 집은 누렁이를 한 가족처럼 여기며 배려 또한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외양간을 멍석으로 가려주고 짚단을 썰어 소여물을 끊어주었다. 짚으로 만든 멍석을 소등에 덮어주고 먼 길 갈 때에는 짚으로 촘촘히 엮은 짚신을 신겨주기도 했다. 밤에 소의 울음소리나 워낭소리가 들릴 때면 화들짝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인기척이 있는지 살피기도 했다.
이백팔십 여 일 동안 어미뱃속에서 자라난 송아지는 바깥세상 구경하려 밖으로 나왔다. 갓 태어난 어린송아지는 비틀걸음으로 걷다가 넘어지고 일어났다가 또 넘어지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비틀비틀 걸음으로 젖을 찾는다. 어미 소는 새끼가 다칠까 입으로 새끼를 한곳으로 몰아넣는다.
파란만장한 세상을 어떻게 이겨낼는지 어미 소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어미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먼발치에서 유심히 보고 있던 어미 소는 걱정이 되어 ‘음~’ 하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한걸음으로 달려간다.
어미의 모성애는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만큼 크다. 따스한 햇살이 외양간 구석까지 사정없이 들어 닥친 봄날에, 평화스럽게 누워 어린 새끼에게 젖을 빨리는 어미의 모습은 정말 세상을 고요로 빠져 들게 한다.
후덥지근한 어느 여름 전화벨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황급히 달려갔다. 어미 소가 신음소리 내면서 마당 한 가운데 벌떡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가 새끼를 분만한지 한 달 가량 되었는데 먹지도 않고 누워서 일어나지 못한다.
새끼는 어미의 고통도 모르는 체 누워있는 어미 배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젖을 찾는다. 어미는 만사가 귀찮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온 정성을 쏟아 치료했다. 얼마 후 소가 몸을 가누지 못한 체 네다리를 벌벌 떨면서 일어났다. 송아지는 어미에게 매달다시피하면서 젖을 찾는다. 어미는 머리를 수그린 체 눈을 지그시 감고 탈진된 상태로 네 다리를 벌려주면서 젖을 먹인다. 새끼는 꼬리를 흔들어 대며 젖을 열심히 빨아먹는다. 입가에 거품이 나도록 젖을 배불리 먹고 나서야 물었던 젖꼭지를 놓고 꼬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힘차게 마당 한 바퀴를 뛰어본다.
어미는 새끼가 저만치에서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안심이나 되었는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걸음으로 비틀비틀 거리며 외양간으로 들어간다. 외양간에서 냄새를 맡으며 한 바퀴 돌고나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고개를 새끼 있는 쪽으로 돌리더니 심호흡 한번 크게 쉬고 난 뒤 숨을 거두었다. 비록 성격은 무뚝뚝하고 우직하지만 소의 모성애는 우리들의 삶 현장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박사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