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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거룩한 유산

admin 기자 입력 2015.05.18 14:44 수정 2015.05.18 02:44

ⓒ N군위신문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내 전신은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크나큰 재산이다. 큰 형님과 터울이 많이 나서 형님이라고 부르기가 머쓱할 정도이었다. 형님은 아버지의 역할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부모와 같은 지위를 물려받았다. 형제들은 당연한 처사로 받아들였다.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 어쩌다 한 번씩 재산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라고는 너희 오 남매와 손바닥만 한 논 밭떼기가 전부이다. 비록 얼마 안 되지만 너희에게 물려줄 전 재산이다. 너희들은 이것 가지고 서로 의지하면서 자손 대대 흥성한 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애절한 염원이 담긴 이 말씀이 유언처럼 내 가슴에 쌓였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앞뜰에 있는 제일 좋은 논과 밭은 큰아들 것이고, 저쪽 산모퉁이에 있는 것은 둘째 아들 것이다”하시면서 말씀으로 등기필증을 다해 놓으셨다. 누나 두 분은 불행하게도 재산상속권으로 한 필지도 받지 못했다. 당시 대다수의 여자는 상속권을 생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막내 것이라고 받은 것은 홍수가 나면 붉은 흙탕물이 거칠게 밀어닥쳐 금방이라도 쓸어 없어질 듯 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 말씀이 바로 법이었고 누구도 항변할 수 없었다.

날씨가 비가 올 듯이 흐려지면 괜스레 걱정되었다. 홍수가 나면 논이 떠내려갈까 조바심으로 지내왔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심은 모가 배배꼬이면서 시들어져 갔다. 하천 쪽에 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천을 파서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자고 대책을 의논했다.

곧바로 집집마다 삽과 괭이 등을 가지고 하천에 모였다. 물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열심히 했다. 나는 나무로 만든 큼직한 삽에 밧줄을 두 줄로 매어 두 사람이 줄을 당기는 작업을 했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 틈에 끼었다.

관리자가 내 곁으로 와서 큰 소리로 “너 형이 나오지 왜 네가 나왔지?”하며 역정 부리며 말했다. 장년들이 나와야 일이 진척되는데 어린 내가 나왔으니 역정 부릴 만도 했다.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어야 했다. 벌금 내지 않으려고 머리수만 채우러 나왔던 줄 알고 역정 부렸던 것 같다.

홍수나면 제일 먼저 침수되는 논이 내 논이라서 남달리 더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주지 못한 관리자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작업이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을 시작해 밤이 이슥하도록 횃불을 밝혀가면서 하천바닥을 팠다. 삽에 매인 줄이 너무 굵어서 손바닥이 물집이 잡히고 진물이 났다. 얼굴은 핼쑥하고 눈은 죽도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쑥 들어갔다. 해골 같은 모습으로 줄을 당겼다. 한 삽 두 삽 삽질 할 때마다 물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원했다.

쉬는 시간에 땅바닥에 큰대자로 벌떡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자랑하듯 빤짝이며 촘촘히 박혀있다. 그중 제일 큰 별이 긴 꼬리를 흔들며 하늘에서 내 가슴으로 툭 떨어졌다. 벌떡 일어나서 남이 볼까 봐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머리를 숙이고 ‘하느님 제발 비를 내려주십시오’하며 양손을 합장하고 기도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며 어린 것이 기도를 다 했을까?


내 허리만큼 파고 들어가니 물길이 보였다. ‘와! 물이다’ 사람들은 물소리에 피곤함을 잊어버리고 몰려들었다. 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한밤중 정적을 깨뜨리었다. 손가락 한 마디 넘게 갈라진 논바닥은 물이 꽐꽐 소리 내면서 들어왔어도 어디로 갔는지 고이질 않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하천에 펀 물을 다 주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땅을 적시려면 아직 멀었는데 관리자가 와서 고함을 쳤다. 손바닥만 한 논에 어째 그리 오랫동안 물을 대노하며 물길을 다른 논으로 돌려버렸다. 남의 전 재산을 두고 손바닥만 하다 하니 억장이 무너진 것 같았다. 물 관리 해주고 먹고사는 주제에 남의 재산을 흠집 잡다니 하며 달려들고 싶은 심정 꿀떡 같았다.

동지 나무는 나에게 유일한 유산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장마철만 되면 한시라도 걱정을 놓을 수 없게 한 아버지를 못내 미워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동네 어른들 틈에 끼어 이야기를 들었다. 이웃집 어른께서 “춘수야! 지당 목 나무 너 아부지가 심었다. 저 나무는 너 아부지가 일꾼 둘이 데리고 깊은 산중에서 캐가지고 온 것이다. 네가 아마 중학교 다닐 때인지 확실히 모르겠다만 그때 심었다. 크게 잘 자랐는데 한번은 동지 나무 바로 옆집에 불이 나서 저 나무가 화근으로 죽을 뻔했는데 겨우 살아났다. 너 아부지는 나무를 동네 어귀에 심어놓고 오가는 사람들이 너 잘되라고 축원해 달라고 심었다”고 하셨다. 막내아들을 남모르게 지극히 생각하셨던 아버지의 깊으신 은혜 헤아릴 수 없었다.

여름 날씨는 가뭄과 장마가 연속된다. 햇볕이 쨍쨍하던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는 돌개바람이 불더니만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먼 산 하늘에서는 전깃불 같은 번갯불이 긴 꼬리를 달고 새처럼 하늘을 가로지른다. 눈 깜작할 사이 내 머리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먼지 쌓인 땅이 먼지를 일으키며 빗방울 따라 젖어든다. 괜스레 걱정된다.

혹시 장마라도 되면 어떠하지 하고. 아니나 다를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더니만 그새 도량 물이 황토색으로 바꾸고 개울을 가득 채웠다.

도리 입고 보릿짚 모자 쓰고 비를 맞으며 논으로 나갔다. 황토물이 하천 중간을 채우고 유유히 흘러갔다. 삽시간 뒤에 황토물이 방천 위까지 출렁거렸다.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방천 뚝 무너지면 논은 흔적도 없어져 버린다.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럼에도 하늘은 성난 소처럼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답답한 마음으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뻥 뚫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해질녘 서쪽 하늘에 붉은색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다음 날 아침 들판에 나가보았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방천 허리는 개미허리처럼 잘록했고 벼는 베개 베고 낮잠에 취해 꿈틀거리지 않고 코를 골고 있었다. 논에 온갖 정성을 다해 다듬어 온 나는 힘의 한계를 느꼈다.

바람이라도 불면 꺾어질 것 같은 어린 가지가 벌써 의젓한 거목으로 자랐다. 불볕이 내리쬐면 나무그늘 밑에서 매미와 같이 음악공부에 빠져버렸다. 어렵사리 장마를 이겨낸 논바닥에는 벼들이 알알이 박혀 쉴 사이 없이 황금 알을 낳고 있다. 아버지 넋을 고이 기리면서 평화로이 살아가고 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박사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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