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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울림(7)

admin 기자 입력 2015.05.24 17:02 수정 2015.05.24 05:02

ⓒ N군위신문
상대편이 감동되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 편에서 스스로 바치게 만드는 것, 보기에 따라서는 음험한 계략 같기도 하지만 유비(劉備)에게는 어쩌면 타고난 인품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비가 장송(張松)이란 자에게 묻기를 “내가 들으니 촉(蜀)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거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과 강이 가로 놓여 있다 했소. 그 땅을 쳐서 빼앗을 생각이 있다 해도 무슨 계책이 있어 들어갈 수 있겠소?” 그러자 장송은 몰래 품안에 감추고 간 그곳의 지리도본(地理圖本)을 유비에게 바쳤다.

유비가 말하였다. “조조(曹操)는 성급한데 나는 너그럽고, 조조는 거친 힘으로 다스리는데 나는 어짊을 으뜸으로 삼으며, 조조는 속임수를 잘 쓰지만 나는 충직함으로 그를 갈음하고 있소이다. 모든 것이 조조와 다르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오. 작은 이로움을 얻고자 큰 이로움을 저버리는 것이 되면 나는 할 수가 없소.” 어디까지가 책략이고 어디까지가 덕성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그 둘이 묘하게 뒤섞인 말이었다.

조조의 휘하 장수 부간(傅幹)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손권(孫權)의 오(吳)를 치려는 조조를 말렸다. “지난날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 명공(明公)께서는 무(武)를 쓰시어 열 중에 아홉은 왕명을 받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는 장강(長江)의 거친 물결을 두르고 촉은 숭산(崇山)의 험한 길이 가로 막혀 무의 위엄만으로 이기기 어렵습니다. 먼저 문덕(文德)을 닦은 뒤에 무위(武威)에 의지하심이 옳을 듯합니다.”

사실 조조는 유비와 손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학문적인 사람이었다. 지금 남은 것은 백여 편의 시와 문장뿐이나 조조의 문집인 위무제집(魏武帝集)은 모두 20권이나 되었다고 한다.

조조는 일관되게 사욕으로 주인을 팔아먹은 자는 죽였고, 아무리 자신에게 매섭게 저항해도 그 주인을 위해 힘을 다한 이는 되도록 해치지 않으려고 했다. 조조를 순전히 권모술수의 사람으로만 몰아붙일 수 없게 만드는 남다른 품성의 하나였다.

조조는 세력이 낫다고는 해도 손권과 싸움을 굳이 고집해야 할 까닭이 없었다. 아직 자기의 힘으로는 강남을 통째로 삼켜 버리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손권 쪽에서 조공(朝貢)이라는 명분까지 세워주자 못 이긴 체 화친을 받아 들였다.

사실련(사회정의실현시민연합) 중앙회 대표 박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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