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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또 하나의 동반자

admin 기자 입력 2015.06.01 16:31 수정 2015.06.01 04:31

ⓒ N군위신문
소는 부의 상징이다. 나는 부질없이 뒤늦게 소 몇 마리를 키우면서 소와 더불어 삶의 순간들을 같이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알알이 맺힌 오곡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짐승들도 때가 되면 홀연히 떠나 돌아오지 못할 아주 먼 곳으로 가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소를 키우고 있다.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어린 송아지 세 마리가 먼 여행길 따라 낯선 농장으로 이사 왔다. 피로도 잊은 채 즐거운 듯 차위에서 단숨에 펄떡 뛰어내렸다. 먼저 들어온 녀석들이 놀랐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코를 벌렁거리며 서서히 다가섰다. 여러 마리가 에둘러 코를 실쭉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갓 들어오는 녀석은 공포에 질려 꼬리를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벌벌 떨며 오가도 못하고 서 있다.

집단생활에는 자연히 질서가 따르기 마련이다.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열이 불가피하다. 열 평 남짓 되는 좁은 울안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 약한 놈이 코너에 몰려 죽는다고 고함을 질러도 힘센 놈이 그대로 눌려댄다. 이삼일 동안 계속 따라가며 공격해서 끝내 항복을 받아낸다. 서열이 정해지면 울안은 정적이 울리고 평화로움이 찾아든다. 한번 패한 놈은 다시 도전하지 않는 순수함도 보여준다.

먹는 만큼 배설량도 많다. 청소를 부지런히 했어도 바닥은 금방 지저분해졌다. 청소할 때 트랙터가 지나치면 머리를 내밀고 혀를 날름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큼직한 등치에 비해 겁이 많다. 몸에 상처가 나서 치료하려고 마구간에 들어서면 일제히 머리를 벽 쪽으로 갔다 대고 엉덩이는 바깥쪽으로 해서 버티고 서있다.

한낮에 낮잠을 즐길 때는 뜨거운 공방전이 있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누워있는 놈의 엉덩이 위에 다른 놈이 그 위에다 머리를 얹어놓고 부채꼴 모양으로 잠을 잔다. 태평스럽게 잠들고 있는 이 시간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다.

청소를 끝내고 바닥에 왕겨를 깔아 주고 나면 궁금한 놈이 먼저 어슬렁어슬렁 걸음걸이로 걸어 나온다. 코를 실룩거리며 수북이 쌓인 왕겨 더미를 머리로 슬쩍 건드려본다. 안심이나 하듯 입술을 코 위로 찡그리고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밝은 표정을 짓는다.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던 옆의 것들이 한꺼번에 뛰어든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와 꼬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웅~ 웅~하며 몸을 바닥에 대고 비벼대며 어떤 녀석은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놈 머리를 뿔로 들어 박기도 하고 뒷발로 펄떡펄떡 뛰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소의 순수함이 나의 동심을 유발한다.

아침마다 건강을 체크하며 소홀함 없이 온갖 정성을 다해 기울었다. 그 사이 소와 나는 모름지기 품성이 비슷해지면서 스스럼없이 친숙해졌고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설 수도 있었다. 빗자루질 할 때 어쩌다 엉덩이가 소 얼굴 가까이 다가갈 때 있다. 어떤 놈이 억센 혓바닥으로 바지를 핥아 옷이 짖겨져 엉덩이가 보였다. 귀엽기도 하고 밉살스럽기도 했다. 기가 차서 빗자루로 얼굴을 한차례 후려갈겼더니 미안하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댄다.

사료를 주려면 혀를 날름거리는 놈, 한 톨이라도 더 먹으려고 껄떡거리는 놈, 사료 바가지를 긴 혀로 끌어당기는 놈, 바닥에 사료를 부을 때까지 머리를 바닥에 고정시켜놓고 기다리는 놈, 여러 형태로 자기 모습들을 숨김없이 적나하게 들어내 보인다.

아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감각능력은 대단했다. “자, 밥 먹자”하고 큰 소리로 부르면 사료 주는 시간을 아는 듯 미련스럽게 누워있던 놈들도 황급히 뛰어온다. 머리를 쑥 밀어내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군침을 삼키면서 껄떡거린다. 한 삽 두 삽 떠주면서 친숙을 갖기 위해 “쭈쭈”라고 말하며 준다.

그럴 때마다 소들은 알아차린 듯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린다. 살 처분하거나 매몰준비 할 때는 알아차리고 있는 듯 양쪽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맺혀있다. 특히 도축장에 들어설 때는 더욱 그러했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여려서 무서움과 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어느 날 먹이 주려고 마구간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마리가 어제께 부터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평상시에도 미련한 놈들은 사료를 주어도 물끄러미 쳐다보고 빨리 일어서지 않는 놈들도 있어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부지런히 관리했음에도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 곁을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이른 새벽 소 실어 나르는 운반차량이 왔다. 쉽게 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던 것이 의외이었다. 밧줄로 뿔을 묶고 장비로 끌어당겼다. 살이 너무 찐 까닭에 굵직한 밧줄도 맥없이 끊어져 버렸다. 죄지은 것처럼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하는 대로 육중한 몸을 그대로 맡겼다.

장비가 허술한 탓에 소가 차에 올라가는 도중 미끄러져 곤두박질쳤다.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일어나 간신이 차위에 올라간 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예감하는 듯 했다. 푸우~하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내 엉덩이를 물어뜯고 거친 혓바닥으로 손등을 핥아주던 녀석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위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모습은 나를 너무나 슬프게 했다.

차가 서서히 미끄러지듯 마구간을 빠져나갔다. 소는 죽을힘 다하여 고개를 한 번 들고 나를 쳐다보고서 이네 고개를 차 바닥에 처박았다. 쿵 소리가 나의 가슴을 오려내는 듯했다. 차가 떠난 뒤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정겹게 지내왔던 시간들을 뒤돌아보았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보낸 내 심정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랐다.

소똥이 뒤범벅되어 진흙같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 소가 남겨 놓은 발자국을 어루만져 보며 지난날의 애환을 달랬다. 소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주고 먼 여행길을 떠났다. 내용물은 거름, 가죽은 피혁, 뼈는 사료, 지육은 식용으로 제공해 주었다. 고행 길을 떠나면서도 나에게 최고등급이란 큰 선물을 주고 떠난 너에게 할 말 없다. 부디 다른 세상에서 편히 쉬기를 바랄뿐이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박사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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