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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나무하러 가던 길

admin 기자 입력 2015.07.06 10:07 수정 2015.07.06 10:07

↑↑ 권춘수 박사
ⓒ N군위신문
겨울철 되면 땔감과 겨울나기 준비에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이듬해 봄에 사용할 새끼줄이며 가마니, 섶 등도 만들어야 했다. 밤으로는 희미한 등잔불 아래 짚신과 소쿠리며 봉태기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땔감 나무 준비는 가장 중요한 일거리 중 하나였다.

가을추수가 끝나면 곧이어 겨울채비하기에 분주했다. 겨울철에는 나무하러 먼 산길을 따라 걸어가야 했다. 야산에는 주로 억새풀과 잡목들이 많았다. 깊은 산중에는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졌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은 그게 아니었다.

흙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돌멩이만 앙상히 남은 산길을 보수해야 했다. 동네 하심이(동네소식전할 때 언덕위에서 큰소리로 알리는 사람)가 산길 보수작업 한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바지게지고 삽과 괭이를 가지고 산기슭에 모이라 했다. 동네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였다.

산길을 보수하면서 하심이는 큰소리 지르며 진두지휘했다. 청장년들은 지게에 흙을 가득지고 길이 움퍽 파인 곳을 메웠다. 나이 드신 분들은 가장자리에 있는 흙을 삽으로 떠서 메웠다. 밑에서 위로 쳐다보면 얼마 안 되는 거리인 것 같았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일이 끝나고 술도가에서 가지고 온 탁주 한 사발씩 마시며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길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했다. 길 따라 가면서 목적지를 올바르게 찾아가고 있는지 한번 되새겨 보아야 했다. 쉽게 다닐 수 있는 길, 가서는 안 될 길 있다.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고 또 때로는 그 길이 옳더라도 뒤로 돌아갈 때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 일찍 바가지에 싼 점심을 지게꼭대기에 매달고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했다. 지게만 덩그러니 진 사람과 소등에 질매와 걸채를 얻고 소 뒤따라가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다시피 해서 산으로 올라갔다.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뻗힌 산등성이에는 주로 사람들이 다니는 지름길과 소들이 다니는 구불구불한 길이 있었다. 굽은 산길 따라 올라가는 행렬의 모습은 어쩌면 중국의 차마고도 한 장면과 같았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땔감거리는 더 많았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며, 나무를 베고 남은 등걸과 낙엽, 억새풀, 잡목 등이 발목이 빠지도록 수북이 쌓였다.

새참 먹을 때 쯤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낫으로 마른 억새풀과 어린 잡목들을 베고 갈고리로 한 곳으로 끌어 모았다. 새끼줄 셋 가닥을 깔고 줄 위에 마른나무가지를 얹고 그 위에 갈고리로 끌어 모은 억새풀을 한테 똘똘 말아서 큰 뭉치를 만들었다. 큰 뭉치 두 개를 만들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바가지에 담아 간 점심을 먹었다.

시장기가 맹렬하게 일던 차에 산에서 먹는 밥맛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맛났다. 해가 뉘엿할 무렵에 그득하게 여러 동으로 엮어 내려갈 준비를 했다.

어둑살이가 여느 때보다 일찍 찾아든 겨울날, 고요한 산속의 새들마저 제 집을 찾아드는 것 같다. 지게만 덩그러니 지고 같이 올라왔던 친구들은 나무를 해 가지고 벌써 내려갔다. 나는 아름드리 네 뭉치를 하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려 서둘러 소 걸채에 실었다. 내려오는 산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욱 힘들었다. 짐을 가득 실은 소는 무거운 듯 한발, 두발 걸을 때 마다 아주 조심스러웠다.

육중한 체구에 자기보다 더 큰 나뭇짐을 네 동이나 등에 지고 가파른 길을 더듬거리면서 내려오는 소의 조심성과 신중함을 보고 놀랐다. 뉘엿뉘엿했던 해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평선 밑으로 잠수하듯 미끄러져 내려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 있듯이 땔감하려 친구들과 같이 먼 산에 갔다. 낫질이며 갈고리 하는 솜씨는 서툴렀다. 큰 소나무 밑에 불그스름하게 마른 솔가리(솔깔비)가 수북 쌓여있는 곳을 찾았다. 나는 누구 볼까봐 갈고리로 재빠르게 끌어 지게에 지고 내려왔다. 친구들은 자기키에 두 배 나 될 만큼 나무를 지고서도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들에 비해 엄청스레 적게 지고서도 무거운 걸음으로 수십 번 쉬면서 겨우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별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았다.

돌산 중턱에는 흙이라고는 거의 없고 작은 돌멩이가 많아 죽음의 산길이라고 했다. 길이 가파르고 쉬는 장소마저 없어 있는 힘을 다해야 내려올 수 있었다. 힘이 빠져 어깨가 무겁고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했다. 평지에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다. 그 이튿 날 나는 반 골병들었다. 친구들은 마른 솔가리만 끌어왔는데 나는 솔가리에 부엽토까지 함께 걸머지고 먼 길을 걸어왔으니 오죽했을까?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락내리락했던 산길을 찾아갔다. 당시 산길은 사람과 소들이 겨울 내 쉴 사이 없이 다녔기에 반지르르 했으며, 산천은 잡초와 떡갈나무로 뒤덮어 있었다. 지금은 울창한 산으로 변하여 하루 종일 사람들과 소로 붐볐던 옛길은 흔적도 없어져버렸다. 가파른 산길이 화려한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靑石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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