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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황혼의 미소

admin 기자 입력 2015.07.19 21:58 수정 2015.07.19 09:58

↑↑ 박만규 이사
ⓒ N군위신문
나는 일제강점기 때 어머니 배속에 잉태되어 10달 후 세상과 인연을 맺어 이 땅에 태어났다.
그렇게 맨발로 마당에 뒹굴며 들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눈언저리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거기서 나는 땅을 파고 집을 짓고 살아가는 개미의 부지런함을 보았다.

4살 때 해방을 맞았으나 곧이어 9살 때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겪게 되니 집과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잿더미가 되고 배움의 터전인 학교마저도 불타버려 근근이 나무그늘 아래서 겨우 한글을 깨우칠 정도의 배움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검둥이가 되어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서 농부의 지혜를 익혔고 때로는 목동의 멋을 부리며 산과 들에서 뛰놀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성장해서는 도시로 나가 기름 묻은 옷에 망치 들고 기술을 배웠다.

그곳에서 무거운 짐수레로 큰 짐을 나르는 산업의 역군으로도 일하면서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세월의 흐름도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내 오늘 생전 처음 발급받은 여권을 옆에 두고 잠시 여유를 가지고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니 머리는 늦가을 서리가 내린 듯하고 튼튼하던 양 어금니는 언제 어떻게 나도 모르게 도망간 텅 빈 자국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토록 억새 보였던 두 팔의 근육도 잔주름에 가려졌다.
그렇게 몸은 세월을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3살 먹은 어린아이의 웃음 같은 잔잔한 미소가 살아있다.

보라! 나의 2세, 3세 후손들은 힘차게 일하고 씩씩하게 자라 내가 겪은 고통의 세월을 아무데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나를 타이른다. 나는 나에게 다짐한다. 죽으면 썩어질 몸 아끼면 무엇 하랴. 내 한몸 한 줌의 흙이 될 때까지 나는 내손에 쥐어진 호미로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릴 것이다.

연농 박만규 군위합기도교육관고문 군위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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