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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잊혀져가는 얼굴

admin 기자 입력 2015.07.22 10:15 수정 2015.07.22 10:15

ⓒ N군위신문
생각과 감정을 꾸밈없이 들어내어 보이는 것이 얼굴이다.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의 전체를 대변하며 잊어가는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기쁠 때와 슬플 때, 사랑할 때와 헤어질 때, 고민에 빠져 우울할 때 모습은 시시각각 변한다. 숨김없는 얼굴의 참모습이다.

구두 수선공은 신발 굽을 보고 신발주인의 성격을 짐작 한다고 했다. 나는 뭇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나름대로 짐작하며 지내왔다. 나는 갸름한 얼굴모양을 더 좋아했다. 내가 바라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없겠지만 구태여 잊으려고 애를 쓰지 않았고 잊어지기도 싫었다. 이따금씩 노을진 석양에 붉게 물들인 잔잔한 호수를 거닐며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갸름한 얼굴을 한 사람이 아련히 저만치에서 손짓하며 나를 불렸다. 나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반가움에 손을 내밀었다. 그 사람은 뒷모습만 희미하게 보이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아뿔싸!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그를 만나려 길을 나셨다.’

멀리서 풍경소리가 초가을 바람타고 은은히 들여오는 깊은 산속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듯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오솔길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솔향기에 취해 비틀걸음으로 산속의 정취를 만끽했다. 우뚝 솟은 소나무 밑에 통나무로 잘아 만든 간이 의자가 듬성듬성 놓여있다. 햇볕이 나무 가지사이를 헤집고 주룩주룩 쏟아 붓는다. 은빛으로 가득한 대지는 나를 꼼짝달싹 하지 못하게 묶어버렸다.

누르스름한 잔디위에 똑같은 얼굴을 한 참새 네 마리가 입맞춤하며 재갈거리고 있다. 어떤 녀석은 머리를 땅에 부비 대고 나래를 펴 양다리로 흙을 퍼 붓고 있다. 나는 그들이 날아갈까 조바심 내며 조금씩 다가가 “참새야, 우리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다”하고 말했다.

그 녀석들은 갑작스러운 내말에 어석한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나서는 휭 하니 어디론가 날아 가버렸다. 나는 머쓱해서 따라가지 않았다.

어느 날 지인들과 같이 참새 네 마리에게 말했던 그곳에 갈 기회가 생겼다. 지인들은 산속향기를 만끽하며 요란한 괴성을 지르며 즐겼다, 나는 바위 위에 덩그러니 홀로앉아 하염없이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참새 네 마리 생각에 젖어 있었다.

어디서 들어 본적 있던 새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고 내 귓전을 살며시 두드렸다. 내가 찾고 있던 그 얼굴일까 가슴조이며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보았던 참새 네 마리가 잔디위에서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다시 만난 기쁨에 하마터면 큰소리 칠 뻔했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또 말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우리는 서로 서로의 믿음으로 좀더! 가까워졌고 더 친숙해 졌다.

강과 산이 바뀌는 동안 그녀석의 모습이 나를 못 잊게 했다. 초저녁별이 쉴 사이 없이 촘촘히 하늘에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다. 한여름 밤 후덥지근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북쪽하늘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번갯불 같은 섬광이 번쩍하더니 온 천지를 대낮같이 밝게 비추었다.

이윽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무서운 천둥을 치며 온천지를 공포로 몰아 부쳤다. 쏟아지는 빗속을 해치고 저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요동치던 하늘이 숨을 고르는 동안 아침여명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하염없이 길 따라 가다보니 바다가 모서리에 작은 섬 하나있다. 피곤에 찌들려 초승달이 되어버린 내 눈을 깨웠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구름다리를 조심스레 건너갔다. 소금기 있는 바다바람을 먹으며 버티어 온 잔디는 부드럽다 못해 까칠했다. 페인트칠한 건물은 비바람에 못 이겨 페인트가 군데군데 군더더기 같이 일어났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어촌의 야경은 간혹 오가는 자동차 불빛과 하늘에서 내뿜는 별빛으로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떡갈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이 바위에 부딪혀 은 구술을 마구 쏟아 붓는다.

바닷가 가파른 바위꼭대기에 거센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집 한 채가 모진 바람과 싸우면서 우두커니 서있다. 실내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조용하고 아담했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하얀 솜 덩어리를 걸머지고 내 곁으로 다가와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어디론지 살아져 버렸다.

정원에는 잔디 소나무 아름다운 돌멩이 국화 채송화 다양한 꽃으로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소나무 위에서 새들이 괴성을 지르고 날개를 폈다 접었다하며 야단법석을 떨고는 휙~ 날아가 버린다. 바다와 눈 맞춤하며 마시는 차 한 잔 오늘 따라 향도 좋고 맛도 좋았다.

연못 한 귀퉁이에 허름한 낡은 이층 집 한 채가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이층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새벽을 재촉했다. 바람에 하느적거리며 금방 쓰러질 듯 불빛이 더욱 애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경쾌했던 음악소리가 시장바닥에서 외치는 앰프소리와 다를 바 없이 들렸다.

여러 해 동안 같이 지내왔던 참새며 기러기며 청동 오리며 솔향기 모두가 내 곁에서 하나 둘씩 멀어져 갔다.

꽁꽁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올라온 새 삯들은 있는 그대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천지를 아름다운 꽃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를 푸른 옷으로, 술렁이는 들판을 황금으로, 분주했던 시간들을 고요 속으로 안내해 주고 수면으로 까라 앉았다. 네는 다시 환생할 수 있지만 나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긴 여행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연못가 왕잠자리는 쉴 사이 없이 물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청동 오리는 짝을 이루어 나란히 물위를 거닐고 있다. 갸름한 얼굴을 한 참새는 풍성한 가을 하늘에 힘차게 비상했다. 인생의 무상함과 숨김없는 얼굴들의 참모습이다.

권춘수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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