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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빗자루의 자존심

admin 기자 입력 2015.08.03 15:43 수정 2015.08.03 03:43

ⓒ N군위신문
“쓸어버리다, 쓸어내다”는 빗자루의 대명사로 불러도 손색없다. 자기가 맡았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스스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려는 안간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켕기는 곳 있으면 서슴지 않고 쓸어버리는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 몽땅 빗자루가 될 때까지 전신을 불사르며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투혼은 역력 했다.

빗자루는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곡식을 타작 할 때는 긴 대나무로 만든 비, 마당을 쓸 때는 댑싸리비, 방을 쓸 때는 수수 빗자루가 제격이다. 대나무 빗자루로 방을 쓸 수 없듯이 어떤 경우에도 자기 영역을 벗어나질 않는 곧은 성품을 가졌다. 빗자루의 긍지와 자존심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50~60년대는 빈곤에 허덕였다. 누구 할 것 없이 생활고에 찌들어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머슴에는 꼴머슴과 상머슴이 있다. 꼴머슴은 농사일에 일머리를 쓸 줄 모르는 어린 머슴이다.

어린 나이에도 머슴이란 꼬리표를 달고 힘든 일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했다. 상머슴은 농사일에 일머리를 쓸 줄 아는 장정 머슴이다. 주인과 머슴과의 계약 기간은 일 년 단위로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이다.

세경은 계약과 동시에 완불했다. 아버지는 세경을 정할 때 머슴이 빗질 하는 것을 보고 세경을 더 주고 덜 주고 했다. 허리를 굽혀 빗자루 전체가 땅에 닿을 듯해서 마당을 쓰는 머슴은 상머슴으로 대우해 주었다. 허리를 곳곳이 세워 빗자루 끝으로 마당을 쓰는 머슴은 꼴머슴으로 품격을 낮추고 세경을 덜 주었다. 농사일을 할 줄 아는지 비질하는 것으로 시험해 본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타작할 때 힘들어 잠시 허리를 세워 비질하다 아버지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보리 이삭 다 쓸려나간다’고 야단치셨다. 꼴머슴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일 해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빗질을 하다 잠시 허리를 폈다고 ‘일하기 싫거든 그만하고 나가라’고 하시며 역정 부리셨다. 야단맞는 일은 식구들 중 내가 도맡다시피 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낱말은 없다’는 나폴레옹 명언처럼 “잠시 쉬었다 일해라”하는 아버지의 말씀은 어느 법전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집에만 있는 법이었다.

군 생활 했던 기억들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군 생활은 사회생활의 연장선에서 볼 때 의무이지만 인생에서 많은 보탬이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가을이 되면 월동준비와 제설작업용 빗자루 만들기에 분주했다. 대나무 빗자루는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싸리나무로 만들어 써야 했다. 야산에는 싸리나무가 거의 없고 있어도 키가 작아 쓸모가 없었다.

깊은 산에는 싸리나무가 드문드문 있어 키가 커서 빗자루로는 제격이었다. 월동준비를 위하여 대원들과 같이 지난해에 갔던 그곳에 갔다. 일 년 동안 자란 싸리나무가 내 키보다 훨씬 더 컸다. 싸리나무를 한 아름씩 베어 대강 손질한 후 돌아왔다. 일요일이면 대원들이 빙 둘러앉아 나무줄기에 붙은 잎들을 훑어내고 사용하기 좋도록 빗자루를 만들었다.

겨울철 내내 사용하고 남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눈 오는 날이 많으면 행여 준비한 빗자루가 모자랄까 걱정이 되었다.

눈이 왔다 하면 무릎까지 내리는 것 예사이다. 겨울철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만들어 놓은 빗자루는 바닥이 보일 듯 말듯했다. 불안한 마음은 늘 가지고 다녔다. 긴장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제대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는 말년에도 제설작업은 계속했다.

한번은 후임자가 빗자루로 눈을 쓰는 것을 보고 마음에 켕기었다.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안 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의무대 앞에 밤새 내린 눈을 혼자 쓸라고 했던 일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눈 오는 날 우리 집 앞에는 내가 쓸어낸다. 눈을 치우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기보다 보행자들을 위한 자그마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침 일찍 빗자루 들고 동네 어귀에 모여 청소했다. 협동과 봉사 정신을 심어준 교육이었다.

겨울철 손 시려 손을 호호 불며 거리청소를 했던 일은 가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대나무와 싸리나무 빗자루를 만들어 군부대에 보낸 일은 더욱 감개해 진다.

나는 몇 평 남짓한 소 마구간을 가지고 있다. 요즘 소 마구간은 선풍기며 분뇨처리가 잘 되어있어 옛날에 비하면 호텔과 같다. 마구간에 비치해야 할 필수 항목 중 첫 번째가 대나무 빗자루이다. 저녁에 준 사료와 짚을 먹고 남긴 자리에는 흙이랑 잡풀로 너절하다. 대나무 빗자루 없이는 쓸어낼 수 없다.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내고 그 위에 사료와 짚을 마음껏 먹도록 준다. 고개를 빼고 긴 꼬리를 흔들며 혀를 시계방향 반대로 호미처럼 구부려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은 정말 평화로워 보였다. 그 사이 시간이 저만치 가버린 것도 모르고 보고 만 있었다.

마음이 허전할 때 가끔씩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기 싫거든 나가라” “보리이삭”다 쓸려나간다. 하신 말씀이 생활의 보탬이 되었다. 허리를 굽혀 비질하는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세경을 꼴머슴으로 주실는지, 장정머슴으로 주실는지. 빗자루는 생활의 한낱 도구에 불과하지만 그의 자존심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박사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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