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텔레비전에 방영된 ‘쩐의 전쟁’이란 드라마가 요즘 새삼 떠오른다. 인간만사, 돈은 영원한 화두다. 사람팔자를 가늠하는 잣대도 돈이 많고 적음에 달린 것 같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 경험에 미루어보면 인간적인 문제, 돈 문제, 그리고 육신의 질병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을 때 고통이 얼마나 깊고 오래 가던가! 혈육을 나눈 친인척이 배반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럽던가! 그리고 내 몸에 병이 깊으면 잠 못 드는 고통이 하얗게 밤을 샌다.
이 세 가지의 고통의 공통점은 돈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오고,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다보면 육신은 병들게 마련이다.
도대체 돈의 속성은 어떤 건가. 천의 얼굴을 가진 수탈자의 가면 같다. 피도 눈물도 없는 부도덕한 이미지를 내 품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목숨마저 담보로 한 돈 거래는 수 백 년 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모양이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전<베니스의 상인>은 대부업자 샤일록과 안토니오간에 이루어진 계약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채무자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생살 1파운드를 도려내는 인육재판을 소재로 한 16세기 때의 작품줄거리다.
그럼, 수 백 년이 지난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다를 바 없는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며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는 맹수들과 다를 바 없이 보인다. 망하기 직전의 부실기업을 짓밟고 사냥해 헐값에 사들인 부동산을 비싸게 되팔아 엄청난 돈을 번다.
작은 부자들은 돈을 아껴 부자 되지만, 큰 부자는 큰돈을 써서 부자가 된다. 여러 형제들이 의좋게 살다가, 갑자기 돈이 생기면서 형제간에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 대개는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의절하고 끝내 원수지간이 되고 만다.
요즘 롯데가에서는 구순의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서로 편을 가르고 다투어 온 나라가 시끄럽다. 돈 앞에는 부모형제도, 국민의 눈도 안중에 없는지 막가자식 상항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이전투구 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어안이 벙벙하다.
잊을 만하면 곪아 터지는 재벌들의 잦은 분쟁을 보면 맞갖잖은 짜증이 삼복 강더위에 열불이 타오른다. 몇 해 전 삼성이 형님 아우가 한 판 붙었다가 화해로 끝났으나 몸살 앓는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다.
현대그룹도 2000년에 벌어진 왕자의 난은 골육상쟁의 대표적 사례다. 두산도 비자금 폭로전을 벌이다 벌인 쪽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또 부모 자녀가, 이복형제가 갈등과 불화로 멱살잡이로 물고 뜯는 꼴사나운 투전판 싸움도 수두룩이 보았다.
기업경영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원칙의 싸움이 아니라 돈의 쟁탈전이다. 돈이 너무 좋아 한 푼이라도 더 갖겠다고 명분도 서지 않는 일에 이빨을 갈며 몰골사납게 싸운다. 법화경에 “황금비를 내린 다 해도 욕망을 다 채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돈에 무한 집착하는 이들을 빗대어 말한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재벌이 골육상쟁의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LG그룹이나 SK, 신세계 같은 재벌가들은 현재까지 친족간 큰 문제없이 기업을 잘 꾸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자 삼대를 못 버틴다는 말이 있지만, 경주 최부잣집은 삼백년 지나도 만석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진 자의 윤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근검절약하는 가훈에서 엿 볼 수 있다.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마라. 일 년에 만석 이상의 재물을 불리지마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 없게 하라.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마라. 시집 온 며느리들을 삼년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지산지고의 윤리강령 같은 가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 있으면 부의 위세도 과시하고 싶고, 권력도 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허나,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 특히 롯데는 창립초기 일본 땅에서 수많은 역경과 차별을 견디며 성공한 기업이다.
더욱이 지금 같은 거대한 기업군단을 일구게 된 초석에는 정부의 정책지원과 혜택이 있었지 않았는가. 창업초심으로 돌아가 합리적인 기업경영으로 후계 분쟁을 종식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신뢰받는 기업으로 탈바꿈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서로가 이해와 양보로 ‘쩐의 전쟁’이란 부정적인 탐욕의 불씨가 꺼지길 바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솔선수범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소비자 고객에게 기업의 이윤을 환원하는 윤리적, 사회적 일류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황성창(시인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