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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군위신문 |
큰딸은 애비인 나를 많이 닮았다. 작은 키와 손과 발, 심지어 성격까지 쏙 빼닮았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중 누구를 많이 닮았을까? 아마도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이번 ‘8.25남북합의’는 형식상 남측 김관진 안보실장과 황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 4명의 접촉이지만 실제로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박근혜 김정은 두 정상의 첫 회담인 것으로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박·김 두 정상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보고 듣고 자기의 의견을 관철한 것이기 때문이다. 황병서는 권력서열 2위, 김양건은 대남정책의 1인자이지만 아무 실권이 없다.
김정은이 “무조건 확성기를 중단 시켜라!”는 명령만을 수행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잠도 안자고 장장 무박4일간 마라톤협상을 했다. 김관진 실장과 황용표 장관한테 “우리가 도발하면 확성기 틀어라!”며 불쌍하게 매달린 것이다.
우리측 두 사람도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꼭 받아내라!”는 박대통령의 지시를 지키기 위해 “나는 전군을 지휘한 사람”이라며 호통 친 김실장과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따진 홍장관의 애쓴 흔적이 보인다. 재발방지 문제가 막히자 단호하게 “철수 하세요!”라고 두 번이나 지시한 박 대통령은 원칙을 그대로 밀고 나가서 성공시켰다.
1972년 5월 4일 김일성은 평양에서 박정희를 대리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만났다. 그 무렵 박정희 대통령은 “적어도 한쪽 손이라도 서로 붙잡고 있으면 적이 공격해 올 것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79년 6월 30일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측의 만류를 무시하고 주한미군 철수 반대의 논리가 담긴 긴 문장의 서한을 꺼내 카터 앞에 내놓고 45분간 장황하게 설명하자 카터는 턱 근육이 씰룩거리며 분노했다. 카터는 화가 나서 철수를 강행 하려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주한미군 철수는 무산됐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국 성인 남녀 2,003명을 대상으로 ‘해방이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가 박정희 대통령을 꼽았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24%)과 김대중 전 대통령(14%)을 합한 것보다 높다.
이 여론조사를 더 살펴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잘한 일이 잘못한 일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데, 잘한 일 가운데 으뜸은 경제발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었다. 반대 하는 국회의원이 있으면 중앙정보부에 끌고 가서 코수염도 뽑고 두들겨 팰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이 반대를 하면 아무것도 통과 시킬 수가 없다.
국가정보원에 끌고 가기는커녕 뒷조사도 할 수가 없다. 국정원이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정도로 취임 후 오랫동안 야당의 사사건건 트집으로 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게다가 원내대표조차 “헌법 제1조 2항” 운운하며 맞서는 등 여당 의원들도 딴죽을 거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어떻게 국정을 순조롭게 이끌 수 있겠는가?
5년 임기의 절반을 보내고 후반기에 들어가는 8월 25일 새벽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
자 회담 추진 등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합의를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유감’이 ‘사과’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동안 꽉 막혔던 남북관계에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6개항 합의’ 발표 후 SNS에는 박대통령이 김정은의 엉덩짝을 두들겨 패는 재미있는 동영상이 떠돌았다. 말 안 듣는 애는 두들겨 패기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안아 주기도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너무 강하게 원칙만 고집부리지 말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포근함을 본받아서, 서민과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보듬어주는 어진 대통령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이수만 언론인/한국컴퓨터속기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