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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탁 씨 |
ⓒ N군위신문 |
까탈을 부리던 늦더위도 물러가고 어느새 선선해졌다. 정말 오묘한 계절의 변화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우리 산악회가 첫 걸음을 하는 날 늘 그렇지만 첫 경험은 두렵고 설레이기 마련인가? 어디서 첫발을 디뎌야 할지 자못 걱정스럽다.
경북의 명산 영덕의 칠보산(七寶山)을 목적지로 정하고 대구에서 이른 걸음을 내딛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은 초록빛이 완연하다. 풍성하게 익어가는 오곡들은 농부의 땀이 밴 만큼 한 줌씩 혹은 한 보따리씩 곳간을 채우리라.
칠보산은 백두대간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고, 서쪽으로는 첩첩의 봉우리가 펼쳐지는 동해의 명산이다. 예부터 더덕·황기·산삼· 멧돼지·철·구리·돌옷(돌에 난 이끼) 등 일곱 가지 보물을 품고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행의 들머리는 매표소가 자리 잡는다. 등반대장의 동작에 따라 가볍게 몸을 푼 뒤 산행길에 오른다. 탐방로를 따라 걷는 호젓한 길이 소담스럽다.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며 스틱을 내짚는 회원들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초입부터 비탈길이다. 적잖이 급한 경사도에 숨은 이내 턱밑까지 차오른다.
길섶 곳곳에서 야생화 무리들이 반긴다. 산행의 피로를 선명한 들꽃들이 덜어 준다고나 할까. 소나무 군락지에 다다르자 진한 솔 내음이 내 몸에 휘감긴다. 가슴 속 티끌까지 털어낼 정도로 짙다. 그 숲에 몸을 맡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갈참나무, 물푸레나무와 어우러져 그대로 자연의 경연장을 이룬다.
숲길을 걷고 있노라면 산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소리가 속세의 잡념을 다 앗아갈 듯하다. 이렇듯 숲은 일상의 찌든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시 산길을 오른다. 한낮의 뙤약볕이 뿜는 더운 기운을 막을 길이 없다.
등줄기는 이미 땀에 젖어 범벅이 되었다. 이마에 질끈 동여맨 손수건마저 땀을 흘릴 지경이다. 간간이 불어주는 바닷바람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회원들은 힘든 산행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산에만 오면 없던 힘도 불쑥 솟는가 보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고 깊은 숨을 몰아쉴 때쯤 눈앞에 고즈넉한 쉼터가 나타난다. 잠시라도 쉬어 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여기서부터는 능선 길로 이어져 한결 수월하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얼굴빛이 밝다.
소나무 가지가 드리워진 가파른 언덕을 감고 오르자 마침내 정상이다. 뒤쳐진 회원들도 서로 밀고 당기며 한마음 되어 이내 뒤따른다. 정상에 올라서자 가슴이 탁 트인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눈썹 높이로 밀려든다. 발 아래로 굽어보면 겹겹이 포개진 능선을 따라 산의 속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깊은 계곡과 숲이 조화를 이루고, 유연함과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산세가 과연 명산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잠시 흐르는 땀을 훔치고 난 뒤 정상 표지석을 중심으로 첫 산행의 추억을 담는다.
이어지는 파이팅 소리가 활기차다. 잠시 뒤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 잘 차려진 식탁의 만찬은 아니지만 꿀맛이 따로 없다.
그렇게 정상에서 짧게 머문 뒤 시간을 아껴 다시 등운산 쪽으로 길을 잡는다. 숲에 둘러싸인 오솔길은 정겹다. 걸음을 내디딜수록 깊은 매력에 빠져든다. 어른 키만큼이나 훌쩍 자란 억새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일러준다. 오르고 내리며좁아지고 넓어지는 등산로를 반시간 남짓 걸으면 정상에 닿는다. 이곳의 조망 또한 빼어나다. 금방이라도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아래로 녹음이 짙은 등운산 자락이 기운차게 뻗어가고 있다.
산은 고단한 삶을 달래는 휴식처이자, 마음의 상처를 씻어주는 종합병원이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는 겸허함도 배울 수 있다.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보헤미안처럼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날, 가벼운 배낭 하나 걸머지고 떠나는 산행을 권하고 싶다.
일찍이 퇴계선생은 산과 함께 하면 독서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둘러본 두 개의 산 모두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아름다운 산이다. 등반의 스릴이 넘치고 경치 또한 좋다. 정상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하산 길에서 만난 솔숲은 한 폭의 수묵화를 뽐낸다. 숲이 선사한 신선한 공기는 청량제가 되어 세속에서 물든 나쁜 마음까지 씻어내는 것 같다. 이 산은 올라서기도 힘들지만 내려서기는 더 어렵다. 급경사를 만나 힘들어 하는 몇몇 회원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렇게 먼 길인 것 같지 않은 데도 오늘 내달은 길이 다섯 시간은 족히 넘는다.
바다를 마주하고 섰다. 시야를 가득 채운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을 품게 한다. 마음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밀려들고 나가며 산행의 피로를 씻어내느라 분주하다. 산행 후 생선회를 맛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 곁들여 바다 맛을 본다.
풍광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게다가 함께한 회원들에 취하니 이 아니 즐거우랴. 조직에 대한 책임감도 안전에 대한 부담감도 하산 주 한잔으로 말끔히 사라진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비록 모자라고 재주 또한 부족하지만 열정 하나로 조직의 책임을 맡았다. 아직은 인프라 면에서 절대 부족하지만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지듯이 발로 뛰고 마음으로 다가서면 길은 열리리라 믿는다. 출발점은 무난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넘어야할 산은 많고 많다. 이제 ‘굴렁쇠’라는 무대가 세상에 펼쳐졌다. 회원 모두 배우가 되어 찾는 관객을 매료시키는 연기가 필요하다. 관객의 감동을 받는 그날까지 우리 다 함께 지혜를 모을 일이다.
전국의 산객들이여, 일곱가지 보물을 찾으러 대한민국의 동해에 자리한 경북의 명산 영덕의 칠보산(七寶山)에 올라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지금까지 2015년 가을의 길목에서 칠보산 과의 만남 이야기 였습니다.
김기탁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