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황성창 시인 |
ⓒ N군위신문 |
가을의 마지막 절기, 찬이슬 내린다는 상강이 지났다. 가을 하늘은 높아서 더 푸르게 보이고 가을 노을은 울음처럼 붉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놓은 듯하다. 당나라 어느 시인은 “산승이 날짜를 꼽을 줄은 몰라도, 한 잎 지면 천하에 가을 옴을 안다네”라고 말했듯이 여름철의 비바람에도 끄덕 않고 버틴 오동잎도 새로 돋은 가을 기운에는 속수무책인 것 같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이즈음 나무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힘겨울 때다. 결실을 맺으랴, 다가 올 북풍한설에 맞설 채비까지 갖추랴 무척 분주하다. 길 가에 핀 들국화도 코스모스도 하얗게, 노랗게, 불그스레하게 가을 색으로 한창 물들이고 있다. 세상에 모든 나무가 빛깔 바꾸기에 한창이다. 은행 나뭇잎은 샛노랗게, 갈참나무는 갈색 물을 잎 위에 뿌리느라 분주하다. 세상 만물이 가을을 맞이하는 기색이 또렷하다.
지난 시월 중순 중학교 동창회 정기총회 모임에 다녀왔다. 칠월칠석날 밤 견우와 직녀가 만나 듯 기대와 설렌 마음으로 오전 11시경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서울 친구들과 합류해 모임 장소인 대구 수성못 선착장 남쪽 오리학교에 도착했다.
오리처럼 떼 지어 뒤뚱거려 보자고 오리학교에 하루의 놀이터로 정한 것 같다. 오늘처럼 빛살 무늬도 찬란한 가을 하늘이 깊고 푸르러 참 좋다. 며느리는 언감생신(焉敢生心), 딸에게만 허락한다는 가을햇볕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가을이다. 수성 못가 여기저기 핀 국화꽃을 보니 문득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앞만 보고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유년기 앳된 모습의 파편들을 모아 퍼즐을 맞춰 본다. 주름꽃이 곱게 핀 만면에 웃음 띤 중후한 혈색은, 나뭇잎이 삶을 마감하기에 앞서 장렬하게 뿜어대는 가을 색 불꽃같다. 그렇다. 나뭇잎은 가을이 되어 떨어지고 있지만 나무 역시 봄의 푸른 꿈과 여름의 정열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이를 먹었어도 나무처럼 청정하게 살고 싶다. 우리도 한때는 눈부신 스무살 청춘이 어니였든가.
지난 계절 동안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어온 노동의 수고를 접으며 내려놓은 낙엽이 길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높다란 담벼락에도 멈춰 선 세월이 엎드려 붙어 있다. 그 푸르든 담쟁이가 선홍빛으로 잎사귀가 시들어 간다. 여름 내내 움켜쥐다 헤어진 담쟁이 손끝이 자잘한 포도 빛으로 여위어 간다.
가을은 풍요한 계절이기도 하지만 쓸쓸한 계절이기도 한다. 추풍낙엽이라 우리네 인생인들 어디 다를 바 있겠나. 휘고 굽어진 나뭇가지가 우리네 삶처럼, 가끔 힘들고 서러울 때 가지를 흔든다. 우리도 아직 뿌리치지 못한 미망(迷妄)이 남았거든 더 늦기 전에 털어버리고 어부바 부바 하면서 세월을 업고 바람 따라 손 흔들며 가고 싶다.
우리네 삶을 깊게 조감하고 성찰해야 하는 계절이 가을인 것 같다. 꽃 피는 봄인가 했더니, 폭염에 장마가 지고, 소슬바람에 낙엽이 떨어진다. 사람들은 무심코 낙엽을 밟고 간다. 비록 떨어지는 낙엽이라도 함부로 밟지 않았으면 한다. 떨어진 나뭇잎을 오래 바라본다고, 가만히 생각한다고 해서 어찌 나무의 속내를 알 수 있겠는가마는, 시간에 담긴 나무의 버팀을 떠 올리며 나무의 힘겨운 애옥살이를 더 깊이 사랑 할 수밖에 없는 계절이 가을인가 보다.
인생은 눈 쌓인 벌판 같아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고스란히 흔적이 남기 때문에 어디로 어떻게 밟고 갈 것인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눈이나 인생이나 잠시라도 소홀히 하면 금세 온데간데없이 스쳐가 버린다. 자연과 학연으로 얽힌 우리들의 인연, 석양처럼 단풍처럼 곱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가을 풍경, 한 잔 술에 마음속 수묵화를 그려 본다.
황성창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