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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나는 왜 써야하는가?

admin 기자 입력 2015.11.18 00:18 수정 2015.11.18 12:1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삶의 흔적을 낱낱이 후세에 남기고 싶은 심정으로 문장의 형틀에 구애됨 없이 쓰고 싶었지만 글은 형틀에 맞추어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나의 심경을 억누르고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속어에 내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글은 자기취향에 따라 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머릿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라지만 글의 기본요소 정도는 알아야 했다. 이런 것도 모르고 나는 글을 쓰다보면 글이 저절로 틀에 맞춰 들어가는 줄만 알고 무턱 대놓고 썼다. 여태껏 썼던 글들이 죽은 글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뒤 늦께서야 알고 깊은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양반은 글덕, 상놈은 발덕”이라 했다. 그 옛날,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서 자식들 공부시켜 면서 시키고 싶은 심정 부모님들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아직도 나는 머리에 쇠똥도 벗기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간결하게 쓴 글을 볼 적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또한 글을 얼마나 쓰면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내용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쉬울 것 같아보였다.

막상 글방에 들어와 보니 내 생각은 어림도 없었다. 사자보다 더 무서운 글의 형식이란 것이 버티고 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걱정되었다. 과연 내가 태산보다 높은 이 길을 지나갈 수 있을까하고 고민에 빠졌다.

말과 글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짧은 영어실력 가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이것 사고 싶은데 주인한테 한번 물어봐라 한다. 난들 유창한 말을 구사 할 수 없는 처지인데 퍽이나 곤란했다. 하는 수없이 손짓으로 볼펜과 종이를 가리키면 돌라고 했다. 사고 싶은 물건이름을 글로 적어보였다. 주인은 내가 적은 글을 보고 금방 알아차리고서 물건을 가져다주며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말은 주술관계 없어도 알아들을 수 있지만, 글은 주술관계가 분명해야 했다. 글은 그 사람의 사상의 저변을 알 수가 있고, 말은 들어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가 있다. 말과 글은 서로의 다른 특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고 했다. 무력으로 문화를 짓밟을 수 없을 만큼 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었다. 글이 한번 지나간 그 자리는 썰물이 지나가간 듯 언제나 깨끗하고 말끔해졌다. 겉모양은 바람이 불면 곧 날아가 없어질 것 같지만 한번 흰 바탕위에 정좌한 글은 영원토록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록 종이쪽지에 적은 메모일지라도 그 힘은 대단하다.
아버지는 외동으로 태어나서 어른들을 모시고 집안일과 바깥일을 돌보면서 지내왔다. 서당에 갈 형편도 못 되어 원생들 뒤에서 어깨 넘어 글을 배웠다. 종이며 한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마른 감나무 잎에 글을 써가면서 배웠다. 당시 아버지 연세에 글 아시는 어른들은 몇 분 안 되었다고 생각된다. 면사무소에 가서 자녀들 이름을 등재할 만큼 글을 익혔던 사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틈틈이 갈고리 같은 굳은 손가락으로 거머리같이 꾸불꾸불하게 획을 그으면서 나에게 글을 가르쳤다. “글은 꼭 알아야 된다. 글 모르면 바보가 된다” 아버지의 절실한 염원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준 첫 글자는 하늘천자이었다. 왜 하필이면 수많은 글자 중에 하늘천자만 가르쳐 주고 세상을 떠났을까? 여태까지 생각해도 모르고 지내왔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똑똑해야 한다는데 그렇지 못하여 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계는 지금 영토문제로 분쟁을 일삼고 있다. 한·일 관계만 해도 독도문제로 늘 시끄럽다. 이럴 때 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글로 표기한 문서이다. 한 가문의 계통과 혈연관계를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표기한 보첩도 마찬가지이다.

문서는 흔적을 일깨워주는 귀중한 증거자료이며 무기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 보잘것없는 글이라도 자세히 들어다보면 위대한 힘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발견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글로 남긴 흔적들이 비록 부끄러운 기억뿐 일지라도 자기 삶의 반면교사가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허망하게 보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 삶의 전부를 서투른 글로 표기해서 후세대대로 남기고 싶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수의학박사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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