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
자랑스럽게 뽐냈던 붉은 단풍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가을이 깊다 못해 겨울을 재촉하는 것 같다. 반갑지 않는 감기는 빼놓을 수 없는 겨울의 대표적인 불청객이다.
사람들은 병원을 찾아가지만 소, 말 등 동물은 동물병원에서 찾아가야 한다. 가을에서 겨울 문턱사이에 동물병원은 가축전염병 예방접종에 온힘을 쏟고 있다.
농촌에는 대부분 소를 기르고 있다. 동물 중에서 특히 소를 좋아했다. 소박한 마음으로 한 마리 기르고 싶었다. 관심이 많으면서도 번식능력이나 건강상태며 품성들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하고 건성으로 보며 지내왔다.
어느 날 상인과 같이 소를 사려갔다. 한 마리 샀는데 이웃집소도 팔려고 하기에 한 마리 더 샀다. 차에 오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소가 아늑한 마구간에 들어오니 암전해 졌다. 지금까지 소를 건성으로만 보아왔던 눈이 번뜩 떠였다. 건강상태는 볼 수 있었지만 번식능력과 품성은 어떤지 궁금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왔던 것 같다. 해박한 사람은 스스로 피곤할 때도 없지 않다. 소가 기침 한 번했어도 폐렴일까, 한 끼만 걸러도 소화불량일까 하면서 걱정한다. 다른 집에 있는 소는 어물을 먹지 않는다. 기침을 한다 해도 모두건성으로 들려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우리 집 울안에 있는 소가 내 것이라는 이름을 붙고 나서부터 눈과 귀가 소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일 먼저 똥을 본다. 똥이 딱딱하면 변비고 물렁하면 변비가 아니고 정상이다. 다음 구유를 본다. 저녁에 준 사료를 다 먹었으며 소화가 잘되고 남겼으면 사료가 많던지 아니면 소화불량일까 생각하며 세심히 살펴본다. 간혹 열이 나고 기침하고 해서 사료를 먹지 않을까 걱정 되었다. 매일같이 진료하려 다녀보면서도 내 것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게 많았다. 욕심일까 아니면 스스로 일어난 발로일까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짚이랑 사료를 주었는데 다 먹지 않고 남겼다. 먹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이튿날 역시 남겼다. 소의 건강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뻑뻑하고 누런 콧물이 양쪽 콧구멍을 틀어막아 숨을 못 쉬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같잖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다른 집으로 매일같이 소 진료하려 다니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는 멀거니 처다 보면서 정말 당신이 수의사 맞습니까. 왕방울 소님! 정말 미안합니다. 곧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꾀병처럼 났었다.
사료를 줄때면 쓰다듬어 달라며 머리를 쑥 내 밀었던 놈이 갑자기 변심했다. 눈도 한 번 마주쳐주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료만 먹고 외면해버렸다. 자식같이 돌봐주다가 잠시 돌아보지 못한 사이 일어난 진풍경이었다.
짙붉은 단풍에 하얀 서리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서리가 단풍에게 그동안 사람들에게 환희와 즐거움을 주면서 고생 많았다. 푹 쉬어라 하며 위로해 준다. 나무 잎들은 밤사이 거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거무칙칙한 몸둥이에 붙어있다. 세찬바람이 간간히 불었던 곳에는 살얼음도 인사하며 동장군이 왔음을 알려준다.
월동준비는 빈틈없이 꼼꼼하고 완벽했어야 했다.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 닥치는 추운겨울이면 외양간은 쓸쓸해 보였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은 주인의 몫이다. 땅이 꽁꽁 얼어버린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외양간은 집에서 십 여리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물을 길어 가져 갈 수도 없었다.
수도공사에 연락해도 답이 없었다. 온 식구가 매달려 겨우 물이 나오게 했다. 하루 동안 물을 먹지 못했던 소들은 물소리가 나자마자 우루룩 달려와서 물통에 입을 담그고 정신없이 물을 먹었다. 수통에 가득했던 물이 쑥~욱 줄었다. 마음껏 먹은 소는 입에 물을 지르르 흘리면 수통에서 물러났다. 배가 보기 좋게 불룩했다. 원망했던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자리를 떠났다.
겨울 내 먹어야 할 양식도 만만찮다. 겨울의 길목에는 소 양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볏짚을 헛간에 차곡차곡 재어야 했다. 땀과 먼지가 뒤범벅되어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굴뚝에서 빠져나온 생쥐와 다를 바 하나 없었다. 짚을 거두어드리고 나면 사료를 실어날아야 했다. 눈이 쌓여 도로가 빙판 되면 자동차는 꼼작도 못한다.
한두 달 먹을 양식을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끝이 없었다. 북서풍이 몰아치면 외양간 소똥은 얼어서 백두산 높이만큼 솟아올라 붙는다. 외양간 외벽에 방풍막을 치고 왕겨준비도 빼놓을 수 없었다. 왕겨는 이부자리와 같다. 왕겨를 쌓아둔 창고를 들어다보면 태산 같았다. 이 많은 왕겨도 겨울이 끝나면 창고가 텅 비워진다. 바닥에 왕겨를 많이 깔아주면 소들도 푹신한 느낌을 가진다. 양다리를 쭉 뻗고 배는 불룩하게 해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되새김 하면서 평화로운 삶의 행복을 만끽한다.
너의 곁에는 늘 내가 있다. 겨울이면 기승을 부리는 감기, 틈만 나면 염치도 없이 마구잡이 쳐들어온다. 멋대로 뛰놀게 했어야하는데 너를 가두어 버렸다. 왕방울 소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락하고 편하게 그리고 행복스럽게 해드리겠습니다. 무럭무럭 자라기만을 바랍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수의학박사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