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브루셀라란

admin 기자 입력 2016.01.03 21:43 수정 2016.01.03 09:43

↑↑ 권춘수 박사
ⓒ N군위신문
전국이 떠들썩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발생한 적 없었던 축산 농가들이 어찌할 바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유산, 불임증, 유방염 증상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가축전염병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했다. 축산 농가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한 마리씩 피를 뽑아야 한다. 일상에도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가끔 일어나지만 피를 뽑는 도중 일어난 사고도 만만치 않았다. 불의의 사고로 입원중인 동료 수의사를 병문했었다.

뜻밖의 광경에 할 말 잊어버렸다. 돌과 같이 단단한 소 뒷발에 차여 무릎십자인대 파열로 고생하고 있는 동료, 뿔에 떠받쳐 갈비뼈골절로 입원한 동료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병실에 우두커니 누워있다. 전쟁 중 부상으로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는 전쟁영화 한 장면과 같았다. 어쩜 수의사란 직업이 이토록 비참한 직업일까 생각해 보았다.

피를 뽑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탄죤(자동소목걸이)이 설치되어있는 외양간에는 쉬우나 재래식 외양간에는 매우 힘 든다.

밧줄로 소의 양쪽 뿔을 묶고 소머리를 기둥에 바짝 동여맨 다음 피를 뽑는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체력이 소모된다. 그나마 바깥주인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여자 혼자 있는 집이며 죽을 고생을 다해야했다. 하루 종일 소와 씨름하고 나면 체력의 한계가 들어난다. 비틀걸음으로 돌아
와 다음 날 아침 또 씨름하려 나가야 했다.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다. 간혹 피를 뽑던 순간 소가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 바늘이 빠져버릴 때도 있다. 또 찔려야 했다. 찌를 때 마다 소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 친다. 축주는 ‘우리 소 다 죽인다’소리치며 언짢은 얼굴로 쳐다본다. 주인괴성과 힘든 조건 속에 기가 눌려 이마에서 식은땀이 쉴 사이 없이 흘러내린다. 간신히 피를 뽑고 나면 축주는 서먹했던 얼굴로 아까 했던 이야기 잊어달라면 손을 꼭 잡아준다. 이러는 사이 따뜻한 정이 오가고 서로가 믿음으로 친숙해 진다.

브루셀라병에 감염된 수의사가 한두 명 아니었다. 입원한 수의사 한 명이 검사를 보름 가까이 했어도 병명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환자가 수의과대학 세균학교수인 친구한테 병의 증상을 말하고 한번 알아주게 하고 부탁했다. 며칠 후 혹시 브루셀라병 증상이 아닌지 담당의사에게 이야기 해봐라하고 전화가 왔다. 회진 차 들렸던 담당의사에게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했다. 담당의사는 이야기를 듣고 브루셀라병 증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적확한 치료를 했다. 거의 완쾌된 상태로 퇴원했다. 답답하고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어미 소가 브루셀라병에 걸려 매몰하게 되었다. 어미 소가 병에 걸리면 백제시대 순장하듯 새끼도 함께 매몰했었다. 어미는 아침 에 주는 소죽통을 말끔히 씻은 듯 해놓고 새끼 등을 핥아주며 평화로운 시간을 갖고 있다. 새끼는 시원한지 눈을 지그시 감고 숨죽은 듯 가만히 서 있다. 이순간도 잠시이었다. 매몰하기 위해 어미를 외양간에서 몰고 나왔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어미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 나섰다.

새끼는 어미 뒤따라 밖으로 나오자마자 즐거운 듯 꼬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양 뒷발로 하늘을 차며 달린다. 어미 소가 저만치 갔을 무렵 새끼는 헐레벌떡 거리며 숨 가쁘게 뛰어왔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없다. 그럼에도 이 세상을 한순간에 깨뜨려버린 죄인과 다를 바 없는 나, 떨리는 손으로 주사를 놓아야만 했다. 얼마 뒤 소가 비틀거렸다.

어미 소는 있는 힘을 다해 네다리를 뻗대고 송아지에 젖을 먹인다. 송아지는 젖을 정신없이 빨아먹는다. 젖을 다 먹은 송아지는 어미 얼굴 쪽으로 가서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피운다. 소는 송아지 얼굴에 입을 한번 맞추고 눈을 감고 땅바닥에 쓰려졌다. 장비로 어미 소를 구덩이에 넣었다. 꼬리를 흔들며 뛰놀던 송아지도 어미 따라 갔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천둥번개 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끼를 사랑했던 어미의 지극한 정성을 더듬어보며 내 마음이 울컥했다. 하늘나라에서 모자간 서로 만나 평안히 지내기를 바랐다.

오늘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농촌수의사, 심적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축산발전에 매달려 농촌의 부강을 꿈꾸고 있다. 그럼에도 축주들은 불평이 만만찮다. 일 년에 한 번씩 일제검사를 받아야했고 어미나 송아지 매매할 때마다 검사를 받아야한다며 불평한 심기를 들어냈다. 거기에 검사유효기간이 삼 개월 하던 것이 이 개월로 단축되어 더욱 짜증냈다. 심지어 일제검사하려 가면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싫어하는 축주를 달래가면서 피를 뽑아야 하니 눈치까지 보여 진다. 내 탓으로 돌리기는 너무나 억울하다.

검사하러 갔다가 한 집을 지나쳐버렸다. 왜 우리 집은 안 해 주노 사람 봐 가면 해 주나 하며 동네가 떠들썩할 때도 없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해질녘 까지 쉬지 않고 검사하는 직업도 좋지만, 좋은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축산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새벽안개를 뚫고 쉴 사이 없이 달려간다.

대구가축병원,원장
의학박사 권춘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