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만날 수 있을까 기다려진다. 오늘따라 텅 빈 채로 다니던 마을버스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 시골의 향수가 물씬 풍겨나는 장날, 사람과 보따리가 뒤엉켜 버스 안은 쾨쾨한 냄새로 가득하다. 조용했던 시장은 왁자지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삶의 애착을 더욱 느끼게 한다.
괜스레 삼일과 팔일이 기다려진다. 가시오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 고향 군위장날이다. 이날이 되면 공연히 마음이 들뜨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버스가 저만치에서 라이트를 깜박이며 서서히 시장입구에 멈추어 선다. 상인들은 버스출입구 앞에 다가서서 사람들이 가지고 온 보따리를 먼저 받으려고 우르르 달려든다. 버스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할머니가 낑낑거리며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상인이 보따리를 빼앗다시피 가져갔다. 왜 남 보따리를 빼앗아 가느냐고 고함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조용한 곳으로 가버렸다.
헉헉거리며 달려가 숨이 찬 목소리로 당신한테 이 물건 안 판다하며 보따리 “내 놔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실랑이가 붙는 듯 하더니만 이내 꺼져버리고 가격흥정이 시작되었다. 상인은 돈을 건네고 나서 ‘망할 할망구 하고 못마땅한 듯 투덜거리며 바쁜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장날이 되면 꼬부랑 할머니들이 일렬로 서다시피 해서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걸어가는 할머니들 보고 “어딜 그렇게 바삐 걸어가십니까?”하고 물으면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 “보면 몰라” 그걸 다물어보느냐 하는 듯 성의 없어 보이는 대답이 일색이다.
버스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하루에 한두 번씩 다니는 버스 한 대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산간벽지를 오가고 한다. 병원에 한 번 오기가 그리 쉽지 않다. 장날을 기다렸다가 시장도 볼 겸 병원을 찾는다. 새벽녘 같이 버스를 타고 병원에 오면 병원문은 굳게 잠겨 있다.
타고 왔던 버스가 되돌아가는 시간에 맞추어 타고 가야 하는데 병원문은 열리지 않고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병원 앞에는 진료 받을 사람들이 선착순대로 쭈그리고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장날은 빚 갚는 날. 이웃집에 돈을 꿀 때는 누구나 장날 갚겠다고 하고 빌린다. 일상생활에 쓰이는 가용돈 이랑 생필품들은 장날에 장만하기 때문이다. 날이 궂으면 행여 장이 서지 않을까 걱정한다. 다음 장 설 때까지 지내기가 힘들어 했다. 농촌에서 오일장은 더없이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한다.
장날 아침이면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고추, 마늘, 배추 등을 가득 실은 경운기가 텅텅 거리며 느린 속도로 시장으로 들어간다. 상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가 물건을 잽싸게 잡고 경운기와 같이 뜀박질한다. 상거래상 물건을 먼저 잡은 사람이 그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행사를 할 수 있다나.
중년이 넘어 보이는 한 상인이 죽을힘을 다해 고추포대를 잡고 달려가다 숨이 차 그만 고추포대를 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삶의 비참함과 냉혹함이 한꺼번에 몰아닥친다.
주인과 상인이 가격흥정을 한다. 고추주인을 한가운데 두고 상인들이 빙 둘러서서 가격을 조절한다. 그만하면 됐다하고 부추기며 협박하다시피 흥정을 마무리 지어버린다. 상인은 돈을 받지 않으려고 뻗대는 주인 손을 억지로 붙잡고 돈을 건네주고서 고추포대를 들고 어디론가 손살 같이 내달아 갔다.
돈을 받은 주인은 속았던 것 같이 찜찜하게 생각하며 꼼짝하지 않고 멀거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허탈감이 휘몰아치며 마음의 평정을 마구 짓밟는다.
그럼에도 장날은 기다려진다. 시게전에 가지 않으면 물가시세를 알 수 없다. 농산물 시세는 시게전에서 이루어지다시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보고, 그날그날 시세를 알아보려고 할 일 없어도 시장에 들린다. 이런저런 사람들로 장날은 북적되기 마련이다.
장날은 더없는 평온과 풍요를 안겨준다. 하루를 쉬면서 먹고 입을 거리며 보지 못했던 자질구레한 소품들을 마음껏 즐기며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만날 수 있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식 들을 수 있다. 한잔 그~윽 하면서 즐거운 한 때를 만끽 할 수 있다. 장날이 언제더라 하며 벽에 걸린 달력을 또 쳐다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수의학 박사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