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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향우소식

내 고향 사랑 실천가 故 송주현 선생

admin 기자 입력 2016.11.18 11:03 수정 2016.11.18 11:03

고향의 문학유적 보존…의흥향교, 압곡사, 인각사 등 문화제 지정 공헌

↑↑ 故 송주현 선생
ⓒ N군위신문
故 송주현 선생은 군위군에서 태어나 의흥면에 외가를 두고 우보면에 처가가 있는 전형적인 군위인으로 고향 군위의 문화재 보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 인물이다.

송주현 선생은 일찍이 문화재수리 기술자격고시에 합격하여 평생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근무하면서 군위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 보존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문화재 보존이야말로 고향 사랑의 전부요, 후대에게 자랑스런 역사를 전승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지름길이라 인식하고 고향에 있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의흥면 의흥읍에 있는 의흥향교는 1398년에 창건된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향교다. 당초 의흥면 수북리에 있었으나 현재의 위치에 옮겨졌다.

임진왜란 때 인근의 향교는 모두 불타버렸으나 이곳 유림 손돈암(孫遯巖)이 위패를 선암산(船巖山)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1년 여 뒤인 1601년 다시 옛터로 옮겼으며 1641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경상도에서 오직 이 향교만이 당초 그대로의 위패를 보존하고 있어 1985년 경북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하게 됐다.

의흥향교는 문화재로 지정된 후 먼저 대성전을 보수하여 오성위패를 보존하고 벽화를 보수했으며, 목재의 부식부분을 수리한 후 단청 등을 완료했다.

그러나 향교의 본채인 명륜당의 복원이 시급했으나 재원 문제로 손을 못대고 있던 차 1985년 경북도의 예산지원으로 4개년 계획으로 공사를 착수해 복원사업을 완료했다.

이렇듯 의흥향교의 문화재 지정과 복원사업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송주현 선생의 노력이 컸다. 그는 상부 건의를 통해 정책 입안, 행정지원, 재정확보, 기술 지원 등 전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함으로서 오늘의 의흥향교가 존재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로면 화산 아래에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원효가 창건한 인각사에도 그의 손길이 닿아있다.

인각사는 1307년(충렬왕 33)에 일연(一然)이 중창하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했고 총림법회(叢林法會) 등 대규모의 불교행사를 개최했다.
그후 조선 효종과 숙종때 증축했으나 대웅정과 요사가 붕괴되는 등 폐사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63년에 와서야 강설주는 승방으로 개조되고 극락전, 비각 등을 새롭게 수리 보존하게 되었고 1971년에 이르러서야 극락전과 명부전의 번와도 실시했다.

그후 인각사의 보각국사탑과 비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되었고 1992년에 사찰 주변 13,302㎡을 사적지로 지정(사적374호)하여 원상 보존토록 조치했다.

그리고 인각사 창건 뒤 고로면 낙전리 후편 산허리의 압곡사도 건립됐는데 이곳은 선사영정을 모시는 곳으로, 경북도 문화재 제239호로 지정했다.

이와 같은 문화재의 지정, 보수, 복원 등 내고향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 송주현 선생에 대해 정부는 옥조근정훈장을 서훈하여 그의 노고를 치하했으나, 지난 2013년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우리는 우리의 고향에 역사의 혼이 서려 있는 자랑스런 문화재가 고향사랑의 열정을 불태운 송주현 선생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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