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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환 씨 |
ⓒ N군위신문 |
不在其位(부재기위) 不謀其政(불모기정) 제가 그 위치에 아니하거던 그 일에 도모하지 말라하였으나 오늘날의 국정을 보고 민초인 제가 졸필코저 필을 들었다.
군주정치가 타락하면 왕은 폭군(暴君)이 되고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衆愚政治(중우정치)를 하게 된다. 말인즉, 어리석은 무리들이 어리석은 정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을 건넌 장수는 뗏목을 버려야 하며 기둥을 세운 비계목으로는 가구를 짜지 말라 하였는데 입신양명에 도와준 사람을 버리고 자신보다 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자문과 조언을 경청하여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은공에 못 잊어 뗏목과 비계목을 입성시켜 간신으로 변절시켰으니 간하는 신하가 없으니 성군의 길은 아늑하기만 하였다.
耕當問奴(경당문노) 밭갈이는 머슴에게 물어야하고 바느질은 아낙네에게 물어라 하였거늘. 어려울 때 도와주었다는 妖妄(요망)한 慾女(욕녀)에게 자문을 요청하니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우매를 저질러 여우에 조롱받는 호랑이로 변했구려.
일찍이 노라나의 애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은 백성의 마음을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더니 공자께서 답하기를 “擧直錯諸枉則民服(거직조제왕 즉민복)이니라. 곧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곧지 아니한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니라”하셨다.
또 주역에 이르기를 德微而位尊(덕미이위존) 포용할 수 있는 덕이 작으면서 지위가 높고 知小而謀大(지소이모대) 아는 것이 적으면서 큰일을 도모하면 無禍者鮮矣(무화자선의) 재앙을 입지 않는 이 드므니라.”
선산 금오서원에 배향된 新堂鄭鵬(신당정붕) 선생께서 청송부사 재임시 중종반정에 일등공신인 영의정 성희안으로부터 청송의 명산물인 잣과 꿀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받고 잣은 태산 상상봉에 있고 꿀은 백성의 벌통에 있으니 태수인 제가 어찌 구할 수 있으리오라고 답장을 보냈다가 책망을 들었다.
그리고 연산군에게는 학문을 높이도록 하고 사냥은 제왕의 도리가 아니니 중지하여야 한다고 직간하였다가 장형 40대에 귀양살이한 사림의 유학자로서 온당치 못한 명을 거절하면서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왕에게는 통촉하는 상소를 간하는 청빈한 선비였기에 야은 길재, 점필제 김종직과 동배향되어 추앙을 받고 있다.
영조때 호조 서리인 김수팽은 선혜청(대동미, 포 출납청) 관리로 있는 동생집에 들렀다가 藍(람)항아리를 보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동생의 아내가 말하기를 “물감을 들여 살림에 보탠다”고 하자 그 람을 쏟으면서 우리 형제가 국록을 먹으면서 이런 영업을 하면 백성들은 무엇으로 생업을 삼는다 말이오라며 작은 부업도 허용하지 아니하는 공직자 애민정신의 귀감이 되었다.
人必自侮然後 人侮之(인필자모연후 인모지)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그를 업신여긴다.
千人所指無病而死(천인소지 무병이사) 천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면 그 사람은 병이 없어도 죽은 사람이다. 君辱臣死(군욕신사) 임금이 욕을 먹으면 신하는 죽어야 하는데 바람 막을 벽이 없으니 사면초가다.
여론은 갈대요, 민심은 파도다. 제궤의혈 (堤潰蟻穴) 개미구멍으로 인해 큰 둑이 무너진다.
실체 없다, 국정 발목잡기다 하시기에 안심했는데 원칙 없는 정치에 실망했고 노동 없이 부를 축척하는데 노했고 인격 없는 교육에 폭발하여 약속 어긴데 촛불을 들었다.
燭淚洛時民淚洛(촉루낙시민루락) 떨어지는 촛농은 오천만 국민의 눈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말고 고난에서 벗어나면 남은여생은 길다.
재구 산성향우인 노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