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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재주

admin 기자 입력 2016.12.18 20:03 수정 2016.12.18 08:03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재주는 다양했다. 갓난 애기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함을 느꼈다. 세상에 나오면서 응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연약한 손과 발로 세상을 걷어찼다. 무엇이 불만인지 계속 울어댄다. 배고파서 아니면 몸이 불편해서인지 알 수 없다.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핏덩이를 안고 별짓을 다했다. 천연스럽게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고귀함을 헤아릴 줄 알았다.

함박웃음으로 웃기도하고 손발을 입에 넣고 ‘쪽쪽빨기도 한다. 방바닥에서 이리저리 구르기 하다가 희한한 자세로 힘겹게 배밀이를 한다. 기어가다 방바닥에 코를 들이박아 응아~하고 운다. 개구리처럼 엉금엄금기어가다 스스로 앉는다.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일어서려고 애쓴다. 몇 발짝 디디다가 넘어진다. 수 없는 재주를 부린 끝에 겨우 걸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재주를 부려가며 살아가고 있다. 지나친 재주를 부리다 원숭이 꼴로 되는 사람도 가끔씩 본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면 없는 사람들이 축산상담하려 자주 온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 사업하다 힘도 딸리고 해서 소 몇 마리 키우려고 왔다고 한다. 허우대가 멀쩡해 보인다.

소 먹일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짐작컨대 그곳이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길이라 하던데 그 땅을 매입 했을 지도 모른다.

삼사 년 지났을까. 고속도로 계획안이 확정되었다. 측량 기사들이 측량기를 들어다보며 도로가 지나갈 곳을 빨간 페인트와 리본이 달린 작은 말목을 군데군데 박으며 분주히 바쁘게 오간다.

고속도로가 뚫히면 돈이 곧 쏟아질듯 뽐내며 다니던 사람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시무룩한 얼굴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온다. 왜 이러한 모습으로 다니십니까? 하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난 이제 죽었습니다. 고속도로가 이곳으로 지나간다고 하기에 있는 재산 다 팔아 땅을 샀습니다. 고속도로에 편입된 땅은 손바닥만큼 들어가고 나머지는 쓸모없는 땅이 되어 버렸답니다. 눈물을 글썽 그리며 더 이상 말을 이으지 못한다.

재주가 너무 많은 것도 탈이다.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 잠시 생각해 보았다. 벤처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인한테 투자하는 경영방법을 배웠다. 하면서 서슴지 않고 투자한 것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면 될 것이다’ 하는 막연한 생각이 때론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티끌만한 재주만 믿고 쓸 때 없는 허영과 탐욕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엄청난 ‘화’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당황하는 모습은 너무나 처절했다. 고통과 아픔의 상처를 읽을 수 없었다. 활기 넘치던 의욕은 간곳없고 우울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너무나 안쓰러웠다.

투자 가치가 있다고 소문난 어느 산골 벽지가 있다. 투자자들이 밤낮없이 모여든다. 공인중개사무소도 때 아닌 산중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평당 몇 십 원하던 땅값이 갑자기 몇 백 원씩 올랐다. 어제 오늘 다르게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십여 년쯤 지났을까 부동산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땅값이 계속 오를 것이다. 하고 팔지 않고 있었다. 땅을 팔면 수 천만 원이란 생각에 마음은 늘 부자였다. 지금은 땅을 팔라고 해도 아무도 사려하지 않는다. 쓸 때 없는 허영과 탐욕으로 빚어진 생각이 불행을 자초케 했다.
땜을 준공한다는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매년 실시하는 가축방역을 올해도 실시했다.

방역을 수년간 해 왔기 때문에 누구 집에 소 돼지가 몇 마리며 심지어 그 집에 숟가락 몇 개 까지도 알고 있다. 지난해 없었던 외양간이 하나 더 생겼다. 축주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이다. 동장한테 그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외지에서 들어 온 사람이다. 농사꾼 얼굴이 아니었다. 언제 왔습니까? 보아하건데 도시 양반 같은데 뭐하려고 이런 산골에 와서 소를 키우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대답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몇 해 지나고 땜 공사가 시작되었다. 동네가 수몰지구가 되었다. 그 사람은 엄청 많은 보상금을 받고 떠났다. 우리가 평생 동안 벌어도 못 벌 돈을 단 삼년 만에 다 벌었다. 사는 것도 돈 버는 것도 다 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의연한척 해도 마음은 편하질 않는다. 세상보고 불공평하다고 해도 소용없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 같다. 그렇다고 재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재주로는 그 어떤 재주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뿐이다. 투정부리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든다.

재주가 있고 없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사는 세상이다. 있는 자는 있는 데로, 없는 자는 없는 데로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고 있다. 약한 재주가 쓰려질 때면 강한 재주가 버팀목이 되어준다. 서로서로가 돕고 위로해 주며 사는 세상 밝고 명랑한 사회가 이룩될 것이라 믿는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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