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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원장 |
ⓒ N군위신문 |
가짜이면서도 진짜인 것처럼 행세를 버젓이 하고 있다. 멋도 모르고 날아들던 벌과 나비들이 뜨거운 불김에 놀라 황급히 날아가 버린다.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니 너 보고 하는 말이구나 하고 화가 잔뜩 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옛 추억을 더듬어 본다. 예나 지금이나 국화빵 냄새와 모습은 그대로이다. 어릴 때 겨울밤은 유난히도 길었다. 밤이 길어 군것질도 하고 싶었지만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흔하지 않았다. 감자며 배추뿌리가 전부이다.
간혹 잠을 자다 시장기가 들면 저녁에 먹고 남은 찬밥 한 숟가락에 얼음이 주렁주렁 달린 물김치 한 쪽을 걸쳐 먹고 허기진 시장기를 채웠다.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고 으스스 추워 이불을 뒤 집어 쓰고 추위를 녹였다. 이렇게 먹는 즐거움과 생의 풍요를 만끽하며 긴긴 겨울밤을 보내곤 했다.
유난히도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당시에 군것질거리로 인기 있었던 것은 빵이었다. 고향에 중 고등학교가 하나뿐이었을 때이다. 삼사 십리 밖에 떨어져있는 학생들은 학교주변에 있는 방을 구해 자취를 했다. 어쩌면 그들과 달리 나는 학교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호강스럽게 지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추운 겨울밤 자취하는 친구 집에 대여섯이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친구가 야! 우리 이렇게 심심하게 놀 것이 아니라 빵 내기하며 놀자하고 말을 꺼냈다.
모두 좋다하며 두꺼운 옷을 걸쳐 입고 가게로 갔다. 초저녁이 약간 지날 무렵 장승만한 키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학생 대여섯 명이 가게에 들어섰다. 가게주인은 겁에 질린 듯 눈이 휘둥그레져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난로 가에 빙 둘러앉아 내기를 어떻게 할까하고 말을 주고받고 하느라 시끌시끌했다.
세 사람씩 편을 갈라 가위 바위 보로 해서 이긴 편은 공짜로 진편은 빵 값을 몽땅 내기로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마지막 내가 할 차례였다. 경기는 2:2이다. 내가 잘못하면 빵 값은 우리 편이 걸머져야했다.
숨 막히는 순간 이었다. 가슴이 조이고 뜀박질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겨야 했다.
나는 무섭고 두려워 눈을 감고 주먹을 내 밀었다. 그 순간 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우리 편이 외치는 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우리 편이 이겼다. 상대편은 내가 자기편이 아니라서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처음에는 우리 편도 내가 있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겼다. 내기를 할 때 마다 내가 들어간 편은 한 번도 이겨본 적 없기 때문이다. 오늘 따라는 상황이 달랐다. 야임마야! 우짠일이고, 우리 편이 질줄 알았는데 네가 이기다니 하느님이 도와주셨다. 오늘이 생에 처음으로 이긴 날짜다. 메모해두어라 하며 내 등을 두드려주며 부산을 떨었다.
공짜로 얻어먹는 기쁨은 말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빵맛이 이렇게도 맛있는 줄 몰랐다하며 진편을 애달게 했다. 진편은 빵틀에서 금방 굽혀 김이 모락모락 난 빵을 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들의 손이 오르락내리락 할 적마다 눈동자가 쉬지 않고 따라 다녔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동안 포도청은 노발대발했다. 빵을 먹고 싶었지만 어찌 할 수 없었다. 빵 값이 많이 나올까 걱정 되어 입맛만 쭉쭉 다시고 있었다.
빵을 어떻게 굽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허름한 포장마차 한 대가 담벼락 밑에서 머리에 빨간 스카프를 쓴 아주머니가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빵을 열심히 굽고 있었다. 먹고 싶기도 했고 어떻게 굽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밀가루를 물과 소금 설탕에 섞어 반죽을 한다. 국화무늬로 새긴 빵틀을 불 위에 얹어놓고 달군다. 주전자에 가득 담긴 반죽이 주전자 입을 통하여 흘러나온다. 하얀 반죽이 빵틀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이내 검붉은 팥소가 뒤따른다. 또 그 위에 하얀 반죽을 덮는다.
사람들 어깨너머로 하얀 반죽이 달궈진 빵틀에 갇혀 이리저리 뒹구는 모습을 보았다. 살려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하는 소리가 귓구멍을 찢는 듯 했다. ‘찌찌’하며 불에 타는 듯한 소리가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온 몸을 불사르며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겨울철이며 밤낮 가리지 않고 내기하기가 바빴다. 엿이랑 두부랑 빵 내기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그중 국화빵 내기가 제일 인기가 있었다. 이기고 지고하면서 밤새는 줄 모르고 놀았던 지난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