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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내 인생의 반환점

admin 기자 입력 2017.01.18 23:28 수정 2017.01.18 11:2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백세까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옛날에는 생각 할 수도 없는 기초노령연금 건강검진 독감예방 임플란트 건강보험 등 여러 가지 제도로 노인들의 복지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격세지감으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또 다른 삶의 맛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인생 반환점을 돌았다. 얼마 남지 않은 골인 지점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한 발짝 두 발짝 다가 갈수록 여태 보지 못했던 사선死線이 분명해 보인다. 그것도 모르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듯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80킬로미터 가까운 속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마라토너들에게는 죽음의 사선을 밟는 순간 죽음에서 다시 환생하듯 기쁨의 영광을 감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무심히 그 길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내 삶의 마지막 뒤안길이 영광이라기보다 한 잎의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아 초라하고 쓸쓸해 보인다.

개원 했는지 벌써 반세기가 다가왔다. 어느 날 관계직원이 느닷없이 찾아와 연세도 많으신데 용퇴 하시면 어떨까요? 하며 웃음 반 지정 반하며 말을 꺼냈다. 듣는 순간 매우 불쾌했다. 아직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용퇴와 연세”란 말에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어버렸다.

새해 벽두 생각지도 않던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관계직원이 인사차 들렸다하며 그동안 노고가 많았습니다. 아낌없는 정성으로 돌보아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아쉬웠던 시간들을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하고 자리를 떠났다.

떠날 때면 떠날 텐데 서글픈 감정이 온 몸을 휘감아 버렸다. 사람 마음은 스스로가 다스리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 할 수 없었다. 스스로 물러설 줄도 알고 떠날 줄도 알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지 아니면 불안했던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푸념하며 지금까지 명예롭게 살아왔던 삶의 흔적에 행여 더럽고 추악한 오물에 더럽힐까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던지 남들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일에 찌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다. 얼마나 잘못 살아왔기에 인생 반환점을 지나 골인지점에 가까이 왔음에도 정신없이 쏘다니고 있는 나를 보고 남들이 무어라 할까 은근히 불안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기가 찬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때 마다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진료하려 나가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보았는데 아직도 병원을 하십니까? 돈 많이 벌어 놓았으면서도 뭐 하려고 고생스럽게 하십니까? 벌어놓은 돈 가지고 편안하게 살지요.” 하면서 위로인지 격려인지 알아듣지 못한 말을 서슴지 않고 내 뱉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설자리도 없어진다는 말이 있다던데 그럴까하고 반추해 보았다. 남들이 나를 나약하게 만만들었기 때문이지 스스로 나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진국에서는 건강이 따를 때 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건전한 생각과 멋있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양식에 걸맞게 따라가며 좋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끔 있었다.

몇 해 전 충북 단양에 있는 제비봉 정상까지 등반한 적이 있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 나이가 든 회원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내가 세월을 제일 많이 먹은 티가 났다. 젊은 사람들 못잖게 기분에 들떠 출발했다.

제비봉 입구에 도착하여 장비를 착용하고 등반할 준비를 했다. 선배님! 산이 가파르고 험악합니다. 위험한 곳이 군데군데 있으니 조심하셔야 됩니다. 혹시나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회원들이 걱정한다. 주책없이 따라 온 것이 회원들에게 부담 주는 것 같아 잘못 따라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왕 따라나선 것 어쩔 수 없었다. 회원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회원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넘어지면 안 된다.

가다가 힘들어 중단해서도 안 된다.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 깊이 새겨두었다. 쌕쌕거리며 젊은이들 틈에 끼어 올라갔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기어올라 지날 때면 허파에서 바람 내뿜는 소리가 고요한 산천을 진동시켰다.

하늘을 찌를 듯 가파른 절벽이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렸다. 겨우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선배님! 올해 팔순 다 되어가지요 젊은 우리도 올라오기 힘 드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고 반기는 듯 인사한다. 속으로는 죽을 지경이었지만 칭찬 한 마디에 힘들었던 모든 고생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정상에 오를 때 까지만 해도 느린 속도로 지루한 시간과 싸우면서 올랐다. 반환점을 돌면서 부터 8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 못 본 꽃들 내려 갈 때 보려고 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 하고 제자리에 와버렸다.

반환점이 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그럼에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다시 그 꽃을 보려고 마음가짐을 다짐했다. 혹여 그 꽃이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면서 나를 기다려도 가는 세월 잡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애만 태웠다.

반환점은 인생의 두 번째 새 출발 시점이다. 새로운 삶의 향기를 느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아간다.

글 쓰고 배우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내 삶의 행복 그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이보다 더 멋진 삶이 또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백세까지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허황된 꿈도 꾸어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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