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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하고 동경해 왔었다. 그러던 중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한테서 태백산 눈꽃축제 가자고 기다렸듯이 연락이 왔다.
벌써 마음이 들떠 만사를 제쳐놓고 곧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충동질 했다. 어린애 마냥 가슴이 설레고 몹시 기분이 좋았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엉덩이를 오리모양 걸음으로 비뚤비뚤 거리며 함께 가지 못한 친구들을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우쭐했다.
몇 해 전 뉴질랜드 다녀와서 설사 때문에 수개월 동안 고생했다. 아직도 병마와 싸우고 있으면서도 여행병이 또 도지는지 친구들과 같이 가까운 곳이라도 코에 바람 쐬고 싶었다. 마침 전화가 왔기에 친구 몇 사람과 같이 축제에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태백은 태백산맥을 정점으로 정선과 나눠지는데 여기에 간다는 것은 단지 눈꽃축제 보려간다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더 기대하지 않았다. 솔직히 눈꽃축제도 보고 싶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생각이 더 많았다.
우리가 타고 간 버스 안에는 대구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가게 되어 분위기가 낯설었다. 여행 관계자가 어제 눈꽃축제를 개장했기 때문 오늘은 어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빌 것 같다하며 주의사항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버스가 맑은 아침공기를 마시며 힘차게 달렸다. 창밖 농촌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겨울이 풍기는 냄새는 여전했다. 논바닥에도 비닐하우스 위에도 하얀 서리가 보송보송한 눈꽃처럼 살포시 내려 앉아 있다. 썰렁한 대지는 아침 햇살에 눈 부비며 기지개를 펴면서 꿈틀거리고 있다.
길 양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쭉 뻗어있고 길목에는 뿌연 안개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길을 잠시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개였다. 얼마나 달려왔던지 버스는 깊은 산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힘이 달리는지 가쁜 숨을 몰아 내 쉬며 헐떡거리고 있다. 눈꽃축제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는 지친 듯이 마음 놓고 후유~ 하며 긴 한숨을 내 쉰다.
버스에 내리는 순간 태백의 정기를 받은 매서운 찬바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 인 냥 따뜻한 내 얼굴을 사정없이 후리치고서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순간 내 몸과 얼굴은 얼음장 되어 얼어붙었다.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정리하느라 안전요원들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가 눈꽃축제 기분을 한껏 달궈줬다. 덩달아 내 마음도 후끈거렸다. 셔틀버스가 쉴 사이 없이 사람들을 수백 미터 되는 축제장으로 태워 나른다. 도로 옆 주차장은 산기슭 따라 중턱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한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차량들이 빽빽이 줄지어 서 있어 차량축제를 연상케 했다. 어쩜 눈꽃축제와 차량축제가 한 쌍의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 같았다. 보고 느끼고 즐기는 재미 이루다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졌다.
얼음조각으로 닭 등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축제장소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흡사 소떼들이 무리지어 올라가는 것과 흡사했다. 얼음판위에 넘어질까 발걸음을 하나 둘 세어가면서 느리게 걷고 있다. 겨우 올라갔다.
햇볕을 받은 흰 눈이 작렬하듯 사방천지를 온통 하야케 만들어 버렸다. 눈이 시리고 눈물 나고 침침해서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다. 선 그라스 없는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연신 훔쳐도 감당할 수 없었다. 시력 잃을까 걱정하며 가까스로 눈을 지그시 뜨고 얼음 조각을 둘러보았다.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높다랗게 꾸며놓은 무대장치에서 흘러나오는 가수들의 노랫소리가 매서운 추위를 한결 따뜻이 녹여주었다. 여러 모형 중에 정유년 붉은 닭의 모형을 한 조각이 제일 멋스러워 보였다. 여기에서 사진 한 장을 담고 싶었는데 워낙 날씨가 차가워 누구한테 마음 놓고 카메라 샷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염치 불구하고 젊은이한테 부탁해서 겨우 한 장 찍었다.
젊은이들이 즐기고, 먹고, 수다 떨며 노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즐기는 것이라고는 뚜렷한 것 하나 없다. 수다 떤다는 것이 고작 늙어가는 이야기뿐, 그렇다고 먹새도 좋으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를 반추해 보면서 여태껏 살아왔던 과거사들이 내 마음을 너무나 우울하고 무겁게 했다.
태백시는 깊은 산중 요술의 작은 성城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동녘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높고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찬란한 아침을 맞는다. 구수한 시래기 꾹 끊이는 냄새가 태백시내에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을 헤집고 나와 국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몰려든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적응해 가며 사는가 보다. 잠시 동안 이곳에 머물었다고 내 삶에 대한 욕심이 새싹처럼 새록새록 돋아난다. 지나간 세월이 다시금 돌아올 수 없다. 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오늘 죽어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명언처럼 내일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못다 했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어진다. 허망한 생각인줄 알면서도 허망한 생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어쩔 수 없다.
축제장에서 빠져나와 해발 855미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역 ‘추전 역’에 가보았다. ‘추전 역’ 정상에서 부는 바람 생각보다 매섭고 차가웠다. 머리에 썼던 모자가 바람에 휙 날려 어디론가 날려가 버렸다. 코에서 흐르는 콧물은 금방 얼어붙어 숨쉬기가 불편했다.
정거장에 우두커니 쉬고 있는 열차에게 “너는 나보다 행복하구나!” 뭇사람들로 부터 많은 사랑과 인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한 마디하고선 추위에 견딜 수 없어 곧장 자리를 떠났다.
자리를 뜨면서도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려오면서 추전역명을 새긴 웅장한 돌을 떠받고 있는 아랫돌에 새겨진 글을 보았다. 『이 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기차역이다. 1973년 10월 16일 험준한 산악과 협곡을 따라 부설된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해발 855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 이 역은 태백선 건설공사 중 가장 힘들었던 정암 터널(4,505m)을 옆에 두고 있으며 이곳의 지명이 예로부터 싸리밭골이라 전해 내려옴에 따라 이를 본 따 추전역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단체관광은 스케줄대로 하기 때문 따라해야 했다. 버스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강 낙동강 1,300리 발원지인 황지연못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연못은 태백시내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상지上池 중지中池 하지下池 세 개의 못으로 나뉘어있다. 여기가 낙동강 발원지라 하여 감회가 남달랐다. 낙동강 이름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옛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물줄기가 ‘낙양(상주의 옛명)의 동쪽’에 있다하여 낙동강이라고 불렀다한다.
낙동강은 백두대간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샘물이 봉화 문경 상주 김천 대구 부산 등을 지나가는 동안 금강, 남강, 밀량강을 만나서 김해 을숙도를 지나 1,300리 먼 길을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흘러 마침내 섬진강과 따뜻이 포옹한다, 지금까지 섬지강의 깊은 사연을 알지도 못하면서 건성으로 보아왔던 것이 좀 머쓱하고 해서 다시 한 번 고찰해 보고 싶었다.
전설은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 건지 말아야 할 건지 분간 할 수 없어 그냥 믿는다. 황지연못에 대한 전설도 예외는 아니다. “옛날 황지연못 터에 황동지라는 부자富者가 살았는데 인심이 워낙 수악해서 노랭이라고 불렸다한다. 하루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는데 한 노승이 찾아와 염불을 하며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의 거절에도 염불만하고 서 있는 노승을 보고 심술이 나서 쇠똥 한 가래 퍼서 바릿대에 담아 주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며느리가 노승을 붙잡고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였다.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날 따라 오시오” 하였다. 지 씨는 아이를 업은 채 노승의 뒤를 따라가는데 노승이 말하기를 “절대로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어느 산등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한 소리가 났다. 며느리는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껴져 내려가 큰 연못이 되었다한다. 이를 두고 황지 연못이라 부른다.
황지연못 상지上池에는 하루에 5000톤 되는 샘물을 땅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쉼 없이 뿜어대고 있다. 이 물이 흘러내려가면서 낙동강을 이루어 1,300리 먼 섬진강까지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따뜻이 전송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묵묵히 길 떠나는 물을 어루만져주며 무사히 도착하라고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물의 끈질긴 근성을 다시금 새겨보며 내 삶에 엮어보려 했다.
처음 본 눈꽃축제 생각보다 화려했다. 수백 대의 차량물결은 파도에 실려 춤을 추며, 사람들은 눈꽃 매력에 정신을 홀린 듯 괴성을 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 이 좋은 세상, 여태 나는 무얼 하며 살아 왔던가? 반성과 후회를 하며 방구석에 처박혀 앉아 고리타분한 세월과 씨름하며 지내왔던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생각할수록 속상했다.
그럼에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된 나는 여전히 세상 밖을 뛰쳐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눌러앉아 애만 태우고 있다.
‘옥에 티’라 해야 할까, 깊은 계곡이며 빽빽이 늘어 선 나뭇가지에 새 햐 얀 눈꽃송이가 주렁주렁 맺힌 설경을 즐기려 왔었는데 그렇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다행히도 오가며 차창 밖에 보이는 괴암절벽,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따뜻이 맞아주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루를 잘 보냈다하며 웃음이 가득했다. 시간 나는 대로 다시 한 번 더 놀려가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고했다.
註釋 : 황지연못 전설에 대하여 태백시청 관광문화 홈페이지에서 일부 발췌하였음.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