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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가마솥 서울

admin 기자 입력 2017.02.19 19:14 수정 2017.02.19 07:1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서울거리는 탄핵정국으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땅에는 촛불이 물결 따라 넘실거리며 다닥다닥 붙은 빌딩 숲에서는 오색찬란한 불빛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깊은 환상에 빠져 나비가 꽃을 찾으려 나풀거리는 듯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고뇌의 춤을 추고 있다.

광화문 네거리는 어둠이 서서히 깔려지고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젖어든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게 촛불 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눈 깜짝할 사이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꽉 차버렸다.

사람들 중에는 촛불시위가 어떠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하며 아이를 무동 태우고, 젖먹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사람도 있다, 촛불 들고 대통령 “퇴진하라 하야하라,” 태극기 들고 “반대 한다 반대 한다” 하며 연호하는 사람들로 주말 서울밤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나라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충성심의 발로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혹한의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십여 차례 집회하는 동안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가 자그마치 일천삼백만 명 된다하니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누구의 간섭도 강요도 없이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일천삼백만 명이나 되는 군중이 일심동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다. 거기에다 군중들의 물결이 파도를 타면서 조그만 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구령에 맞춰 불을 끄시오 하면 끄고, 켜시오 하면 켜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고서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혹여 외국에서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일천삼백만 개의 촛불이 너풀너풀 거리며 춤추는 겉모습만보고 경탄해 맞이할까 걱정스럽다. 지금 국가는 국정농단으로 우울하고 침울해하며, 백성들은 실망스러운 눈으로 정부를 바라보면서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다.

모두가 마음이 착잡하다. 한 치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캄캄한 정국을 어떻게 풀어날까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기를 열망하고 있다. 다행히 국민안정과 국익을 걱정하면서 밤잠 설치는 정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생각해 본다. 쓸 때 없는 비방과 헐뜯는 소모성 시간은 아무런 가치도 없을뿐더러 소용도 없다. 나라가 시끄러울 때면 국가와 국민이 똘똘 뭉쳐서 혼연일체 된 마음으로 어려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것만이 진정한 애국애족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부부는 동심일체라 일컫는다. 세상이 하도 뒤숭숭해서 이 말이 아직도 유효한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꽉 매운 일천삼백 만 명되는 군중들은 어떻게 한마음처럼 일심동체 되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생각할수록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인데도 군중들은 해 내었다는 그 사실에 더더욱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주말마다 물결 따라 흐르던 그 많던 군중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확 띨 정도로 줄었다. 국정농단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외치던 군중들 속에서 느닷없이 낯선 이색문구가 적힌 고무풍선이 하늘로 떠올랐다. 군중들은 일제히 비난하며 고무풍선을 없애버렸다. 이는 누군가가 시킨 것도 아니고 군중들 스스로가 저지했다. 모임의 성격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시민들의 일치된 생각과 행동에 놀랐다. 일치되는 순간의 힘은 태산도 옮길 수 있을 만큼 신비에 가까워 보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중들의 협동심을 보면서 군에 입대했을 때 훈련소에서 일어났던 일렬의 일들이 아련히 떠올랐다. 제식훈련을 통하여 흩어 진 생각과 마음이 하나가되도록 강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조교가 종대로 모여, 횡대로 모여, 일렬로 모여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도록 계속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줄을 맞추는데 한 사람이라도 튀어나왔다면 그 줄은 잘 할 때 까지 계속 반복시켰다.

한번은 훈련을 받는 도중 훈련병이 자꾸 틀려서 조교가 우리 줄을 밖으로 불러냈다. 너희들은 아직 기압이 덜 빠져 정신머리가 흐리멍덩하다 하며 백여 미터거리를 몇 바퀴 돌렸다. 꼴찌는 늘 두 바퀴 더 돌렸다. 우리는 그 녀석이 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대별로 제식훈련 시합이 있던 날이었다. 조교가 바로 옆에 따라오면서 목이 쉬도록 하나 둘, 하나 둘하며 열심히 구령을 붙였다. 구령에 맞추어 앞줄과 간격을 맞춰 행진을 잘하다가 그만 우리 줄이 잘못해서 열전체가 삐뚤어지게 되어 버렸다. 우리 줄 때문에 우리 소대 성적표가 최하위로 되어 꼴찌 조로 되었다.

뿔따구 난 조교가 장대같이 긴 곡괭이 자루를 들고 소대원 앞에 나왔다. 우리들 모두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눈에 불을 켜서 우리들을 째려보면서 옆들어 뻗쳐하고 한 사람 두 사람씩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얼마나 아플까 가슴이 뜀박질하면서 쿵덕거리는 소리가 옆 사람까지 들릴 것 같았다.

곡괭이 자루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 깜짝할 사이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두 번이나 내리쳤다. 죽을 것만 같았다. 옷을 내리고 엉덩이를 보았다. 생각보다 멍이 심하지 않았다.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이겨내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익혀 나갔다.

수십 명밖에 안 되는 훈련병들을 혼연일체 되도록 하는 것도 몇날 며칠 걸렸는데 일천삼백만 명의 군중들이 훈련도 없이 어떻게 단숨에 일심동체가 되었던지 생각할수록 궁금했다.

한 사람 잘못으로 두들겨 맞고 울고불고 원망도 했음에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멋있는 삶을 살기위해 새로운 건전한 정신문화의 혁명을 탄생시켰다. 늦었지만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일천삼백 만 명의 군중들 중에 누구 한 사람의 사고도 없이 자기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옛날 같은 소설이다. 화염병이며 돌 막대기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면서 자기주장을 외쳤다. 잡아가두고 암울했던 과거사들의 뒤안길을 돌아본다.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폭력을 자제하면서 평화적으로 자기의 뜻을 주장하는 성숙한 시위를 보면서 국민의 안정된 정서와 국력에 마음이 한결 평화로웠다. 세계 각처에서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참을 수 있고 자제 할 줄 알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면을 엿볼 수 있었다. 간혹 부질없는 생각으로 본질과 어긋나는 시위가 일어날까 쓸 때 없는 조바심이 난다.

탄핵정국으로 태극기와 촛불물결로 들끓던 서울의 밤거리를 보면서 세상사 모두가 다 내 마음과 똑~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생각과 이념이 같지 않았다고 물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이성 잃은 폭력적 애국주의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는 엄연한 법치국가이다. 법을 존중하며 법대로 모든 것을 원만히 처리하는 성숙한 국가임을 만방에 고할 것을 바라며 하루 빨리 평온한 세상이 새봄의 날개를 타고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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