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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봄이 오는 소리

admin 기자 입력 2017.02.22 15:29 수정 2017.02.22 03:29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새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 깊은 산골 옹달못에서 얼었던 얼음이 치직하며 갈라지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에서 메아리친다.

나뭇가지들이 물을 빨아 넘기는 소리가 꿀꺽꿀꺽 난다. 산과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청하한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봄의 향연을 펼친다. 자연의 신비함에 내 영혼이 빨려들어 간다.

지푸라기도 붙잡고 싶은 때였다. 겨우내 고리타분한 방구석에 처박혀 책상머리에 앉아있었다. 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가 날개를 달고 창공을 훨훨 나르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이나 났다.

꼴뚜기는 꼴뚜기 끼리 논다 하듯 하루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가 놀러왔다. 머리도 식힐 겸 산에 올라가 바람이나 쏘이러 가자고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에 갔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한꺼번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향긋한 솔향기가 답답한 가슴을 확 트이게 해주었다.

응달 진 곳에는 아직도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겨우내 물 한 모금 못 먹은 듯 풀은 말라비틀어져 버석거리고 나무는 뼈만 앙상하고 허리가 굽은 장승처럼 해서 서 있다.

비탈진 양지 바른 땅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얼었던 땅이 뽀송뽀송하게 보이지만 위에는 말라있고 밑에는 얼어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발을 딛자마자 줄~ 떡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다. 엉금엉금 기어 일어났다. 엉덩이가 흙탕에 뒤범벅되었다. 산은 소리 없이 빙긋이 웃고, 친구는 우습답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앞이 탁 트인 산등성이에 앉아 봄이 가져다준 청명한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명상에 잠겼다. 봄은 생명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아낌없이 주고 있는데, 난 그것을 받을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주고받고 하는 사이에 정이 난다 하던데 그렇지 못해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봄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공짜로 줄까하고 친구한테 물어보았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것은 찾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 했다. 그렇겠지!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감 홍시 떨어질 때 까지 기달 수는 없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툭 한다.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며 산골짝이 에서 얼었던 얼음이 녹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난다. 버들강아지도 움츠렸던 몸을 기지개 펴면서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 양지바른 웅덩이에는 개구리들이 알을 낳느라 분주하다.

봄이 오는 소리인가 하고 귀를 쫑긋해서 듣는다.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신기한 멜로디만 들린다. 봄의 천국이 삭막한 세상에 보물단지 한 아름 안고 찾아 온 것 같다.

봄은 누구에게나 희망과 용기를 주면서 쉽게 찾아든다. 막 움트고 나온 새싹들은 굳은 각오를 하고 세상 밖으로 헤쳐 나온다.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자라는 모습을 본다. 가련하다기보다 인내와 끈기에 놀랐다. 나도 모르게 용기와 힘이 불쑥 쏟아난다.

봄의 세계를 맛보려 지난해 동창들과 같이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하동벚꽃축제에 갔다. 벚꽃 냄새와 희고 붉고 화려한 색깔들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화려한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용했던 가슴이 마구 요동쳤다. 길목에는 벚꽃세상이다. 벚꽃이 줄지어 서서 나를 환영하는 듯 꽃가루를 쉼 없이 뿌려준다. 천지를 꽃가루로 뒤 덮어씌우며 환상의 세계로 빠져 들게 했다.

봄은 신비롭다.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무아지경이다. 길 양편은 울긋불긋한 꽃잎들이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준다. 바닥은 떨어진 꽃잎이 고이 쌓여 푹신하다. 한 발씩 걸을 때마다 꽃잎이 망가질까, 아파서 견디다 못해 울어댈까 가슴이 조마조마 해 걸어 갈 수가 없다.

이곳에 와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욕심이 뿌듯 났다. 봄의 전령은 하필이면 하동에만 제일 먼저 찾아 왔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고향보다 더 좋은 곳 하나 없었다. 단지 있다면 섬진강과 바다가 맞닿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더 없다.

단순히 욕심이 나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뿐이었다.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게을러서 아니면 찾아온 벚꽃이 시시해서 되돌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며 마음을 달랬다.

봄의 정기를 받아 용기와 힘이 불쑥 쏟아난다. 어린 새싹들도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다 하는데,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난 스스로가 나약한 새싹보다 못할 리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봄이 되면 축 쳐져 있던 모든 생각들을 물 건너 띄워 보내고 희망찬 새로운 설계를 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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