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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청령포

admin 기자 입력 2017.04.02 21:47 수정 2017.04.02 09:47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단종의 비애가 서린 곳이다. 왕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왕권세습으로 왕이 되었으나, 왕이 된지 1년 반 만에 계유정난을 일으킨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주위사람들의 욕망과 욕심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고 죽음을 당해야 했던 한 맺힌 이곳 청령포 이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던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하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더니만 그런가 보다. 부모형제 뿐만 아니라 신의 아들까지도 죽여가면서 권력과 권세에 혈안이 되어 몸부림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만행이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욕망과 욕심은 무한한 것일까? 성서를 읽어 본적이 있다. 그들은 하늘까지 닿는 바벨 탑을 세우려 했다. “ 예수는 “유대의 왕 나자렛 예수” 라는 죄명으로 총독 본시오 빌라도한테 죽었다” 고 한다. 단종도 죄명 없이 삼촌한테 죽었다.

단종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에 비유한다면 분별없는 생각이라 하겠지만, 죽음에 대한 사연은 비슷한 데가 있다. 욕망은 신의 아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죽이는 것을 보면서 신들도 그 앞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종친회에서 조상의 한과 얼이 서린 단종이 유배된 곳 강원도 영월 청령포를 찾아갔다. 단종은 조선의 5대왕 문종과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단종은 혈족으로 보아 권씨의 외손자이다.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이 세자이던 시절 후궁으로 들어왔다가 두 명의 세자빈이 폐출된 후 왕비가 되었다. 불행히도 현덕왕후는 아들 단종을 낳고 사흘 만에 죽었다. 그럼에도 문종은 세자빈을 더 이상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단종은 어머니가 없어 부득이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의 손에서 자랐다. 단종의 형제는 동복누나 경혜공주와 이복동생 경숙옹주가 있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고 열두 살 어린나이에 조선 6대 왕위를 승계했다. 수렴청정 할 분이 없어 문종으로부터 고명顧命을 받은 김종서·황보인 원로대신에 의해 정사를 보게 되었다. 대신들은 황표정사黃表政事를 통해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조선 전기에 강력했던 왕권은 단종 대에 접어들면서 군약신강君弱臣强이 되었다.

대신들의 세력을 못 마땅하게 여긴 종친들이 새 세력으로 결집했다. 단종의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을 대표로하는 종친세력이다.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대신들 때문에 주요관직에 오르지 못한 신료臣僚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수양대군을 지지하게 되었다. 단종에게는 왕권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왕자의 난이 일어 난 후, 혈육을 제거하는 비정한 참상이 또 벌어졌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할 목적으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김종서·황보인 대신들을 처단하고 동생 안평대군도 처형했다.

태종과 세조가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망은 대단했다. 수양대군은 영의정에 올라 조정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단종은 즉위 3년에 수양대군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려났다. 금성대군의 집에 연금 상태로 있다가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펼친 것을 기화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이곳 청령포로 유배 되었다. 그때 단종의 나이가 열일곱 살 이였다.

유배된 후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됨에 따라 사약을 받았다. “실록에는 조정 대신들이 노산군을 처형하라고 주장해 세조가 이를 윤허 했다. 사약이 내려지자 노산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록되어 있다.”

단종이 죽은지가 200년이 훨씬 지난 뒤 숙종 7년에 노산대군으로 복위되고 숙종 27년에 왕의 시호를 받고 추증되었다.

야망과 욕심이 살아있는 한 암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권력과 지배와 순종이 칡넝쿨처럼 얽힌 세상에서 마음 졸이며 살았던 단종, 권력 암투에 희생양이 되어 꽃다운 어린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꽃도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죽은 그 자리에는 한과 설음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은 저만치 가버렸는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봄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 불쌍한 것.

산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않은 것 같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는 스스로가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 모든 권력을 아들에게 이양하고, 집단적 사회체계의 기본가치로 세상을 이끌어 갈 힘을 길러 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업적을 화려한 장식으로 마감한다. 자연스레 이루어진 사회 규범에 따른 순응과 순리가 아닐까 한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에 나막신처럼 생긴 통통배를 타고 청령포에 들어갔다. 조그만 한 섬 한 가운데 주인 잃은 장송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허리 굽혀 목례하며 서 있다. 삼면이 강물에 둘러싸인 육육봉은 답답한 가슴을 쓰려 내리는 듯한 아픔을 참고 한 많은 세월을 묵묵히 버티고 있다. 낡은 돌기둥에는 동서 300척尺 남북 400척이란 음각이 새겨져 있다. 이 안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금지구역”이란 말인 것 같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표석 앞에서 밤새 울먹이며 홀로 지낸 단종을 그리며 생각한다. 창 없는 감옥생활을 하면서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그럼에도 숙부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과 눈물로 지새우는 어린조카에게 위로는커녕 사약까지 보냈으니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며 원통함을 맛본다. 단종의 슬픔을 고이 간직한 청령포, 세세대대로 이어지면서 우리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청령포 삼면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물 단종의 비애를 안고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나룻배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너갈 때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청령포 땅을 밟으면서 얼마나 슬퍼했을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에서 무섭고 두려운 고뇌 속에서 얼마나 떨었을까? 청령포아! 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겠지 속 시원히 말해 주려무나. 단종의 애처롭고 가여운 마음이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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