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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얼려 죽인 난

admin 기자 입력 2017.04.02 21:51 수정 2017.04.02 09:51

난과 돌의 美學… 이성보 작가 에세이 연재

↑↑ 이성보 작가
ⓒ N군위신문
달라는 사람에겐 못 당한다는난을 재배하면서 제일 참담한 경우를 꼽는다면 그 첫째가 동해를 입었을 때일 것이다.

난실 전체가 왕창 피해를 입는 동해에 비하면 그래도 연부병은 좀 나은 편이다.
동해를 입은 애장품들을 난분에서 털어 낼 때의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난실에서 관리 부주의로 동해를 입는 경우도 있으나, 고가로 구입한 난을 잠시 문밖에 둔 것을 깜박하여 얼려 죽인 기막힌 사연이 있다.

난을 기르다 보면, 처음엔 싸구려 난을 사다 점차 난에 맛을 들이게 되면 어느 덧 고가의 난을 사게 마련이다.

그러다 무리를 해서 갖고 싶은 난을 덜렁 외상으로 구입하고서는 값을 치르느라 곤욕을 치른 후, 다시는 고가의 난을 사지 않겠다고 골백번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건만, 난이란 놈이 본시부터 맹랑하여 사지 않는다고 다짐한 사람 눈엔 영락없이 새롭고 요상한 것을 나타나게 하여 애간장을 태워 피를 말리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취미분야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면, 사진의 경우 처음엔 스냅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면 족하지만 차츰 고급 카메라를 찾게 된다. 오디오에 있어서도 같은 경우다. 카세트에서 시작하여 엄청난 오디오시스템을 찾게 된다.

서울 송파구에서 난원을 열고 있는 R선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처럼 맘에 드는 자생란을 사들고서 설레는 가슴을 안고 집에 당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아파트의 벨을 누르려는 순간, 세끼 굶은 시어머니 얼굴보다 더 무서운 마누라의 얼굴이 덩실하게 떠올라 꾀를 쓰기로 했다.
난이 든 봉투를 문 밖에다 잠시 두고는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커피를 끓이라는 등, 마누라가 바삐 돌아가는 틈을 타서 살며시 난을 집안으로 들여 놓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따라 남의 속도 모르고 마누라가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 영 기회를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다 명품을 만난 기쁨에 마신 술이 과하였던지 그만 깜빡한 것이, ‘아뿔싸!’ 다음날 아침, 그 난 생각이 났을 땐 이미 밖에서 꽁꽁 얼어 죽은 후였다.

얼어 죽은 난을 들고 망연자실한 R선생, 난잎을 닦다가 잘못하여 잎 한 장이 빠져 나와도 가슴이 철렁하는데, 송두리째 그 귀한 난을 얼려 죽였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비애가 무겁게 심정을 휘저어 놓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삼가 고난(故蘭)의 명복을 빌 수밖에.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마누라가 얼어 죽은 난의 값을 모르는 사실이다. 값을 알았다면 줄초상이 났을 것이라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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