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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말(言)의 위력

admin 기자 입력 2017.04.30 22:29 수정 2017.04.30 10:29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결국, 터지고 말았다.
말 한마디가 온 세상을 누비며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말의 근간을 뒤흔들어 댔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이 튀어나올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맞았다.

농담 속에 뼈가 있다는 말 있다. 어느 수장이 국정을 다루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맨입에 되는가?” 농담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일상에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느껴진다. 대가성은 없겠지만,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커다란 형상이 숨어있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담배 피우는 사람 곁에 가면 본인은 담배 피우지 않는다고 해도, 몸에 찌든 담배 냄새가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

말에는 ‘아’ 와 ‘어’가 다르다 했다. 한 연예인이 상사 부인한테 ‘아줌마’라 불렀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 있다. 일상에서도 본다.

몇 평 남짓한 좁은 미장원에서 농담을 즐기는 한 아주머니가 옆에 있는 손님한테 사탕을 한 개씩 건넸다. 할머니보고는 ‘촌 할머니’하고 한 개 드렸다. 할머니는 ‘촌’자는 왜 부치나? 하며 화를 벌컥 내며 큰소리를 질렀다. 이뿐일까?

농담을 즐겨 썼던 친구가 지인의 부인보고 ‘와 이렇게 폭삭 늙었지?? 하며 웃어댔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드리는 데에 따라 말의 본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

비아냥거리는 말일까 아니면 웃기자고 한 말일까? 자리를 봐가며 똥 싸라 했다.
농담도 아무 때나 하는 것 아니다. 지나친 농담은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쟁까지 벌어질 위험한 소지가 될 수 있다. 말의 중요함과 말을 가려가면서 쓸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멋쩍게 쓴웃음을 지어보았다.

말은 약속이다. 약속은 곧 신뢰이다.
지방의원 선거 때이다. 선거가 막바지 다가갈 무렵 유혹의 말들이 끊이지 않는다. 선량한 농민은 입후보자가 내뱉은 말이 농담인 줄 모르고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선되고 난 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약속을 왜 안 지키느냐 물었다. 대답이 같잖고 어이가 없었다. 농담도 못 하겠나 하고 웃으며 넘겨 버렸다. 당선만을 위해 헛말만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에 회의감마저 든다.

말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참상을 보았다. 사변 직후 미군이 동네에 상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미군 한 사람과 동네 한 사람이 서로 알아듣지 못한 말로 시끌시끌하다가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동네 사람들은 빨갱이가 나타난 줄 알고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었다. 말인 즉슨 미군이 죽어도 좋으냐 하는 질문에 오케이 하는 말을 했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황당무계한 후문이 들렸다. 말실수라 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죽었던 집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은 바둑뿐이라고 했다. 어쩌면 사람도 바둑과 같은 인생의 파노라마가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사형선고를 받은 어느 죄수가 무죄로 풀려난 것을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알아보았다. 그 곁에는 준엄한 심판을 맡은 말이란 것이 버티고 있었다. 하잘것없는 말이라도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혹자들은 말로 죽고, 말로 산다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일지라도 잘못 쓰면 독보다 더 쓴 무서운 화근이 부메랑 되어 돌아온다고 한다.

사변 직후 반공교육이 철저했던 시절이다. 당시 일본에 다녀온 친구가 일본에서 보고 듣고 한 것을 빙 둘러 앉아 재미있게 이야기 한다.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곤욕을 치른 것 같다. 거칠고 지나친 말은 음흉하면서도 때론 무서운 모습으로 돌변하여 우리 곁으로 소리 없이 스며든다.

말의 위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폭군처럼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승사자 같기도 하다.

말의 위력은 어디에서 꿈틀거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말 잘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는데 말 속에 뼈가 섞여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말은 서로의 의사를 전하는 소통의 원천이라 하던데…….

무심한 세상. 함성에 찢겨 만신창이 되어버린 권력의 무상함을 본다. 아침 햇살에 영롱하던 이슬이 하나둘씩 소리 없이 떨어진다. 꽃피고 새우는 화창한 봄 언제쯤 다시 찾아오려나 손꼽아 기다린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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