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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난과 돌의 美學… 이성보 작가 에세이 연재

admin 기자 입력 2017.05.14 20:19 수정 2017.05.14 08:19

놓친 가오리

↑↑ 이성보 작가
ⓒ N군위신문
Y선생은 자리에 퍽신하게 두 발을 뻗대고 앉아서 방고래 터지는 듯한 한숨을 몰아쉬다가 갑자기, ‘아이구 우우!’ 하고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오른 주먹으로 왼손 바닥을 치는 버릇이 생겼다.

30여 회의 산채 끝에 만난 원평호(源平縞)를 손에 쥐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생긴 홧병 때문이다.

Y선생은 건설회사 임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하고는 건강도 돌볼 겸 자주 산채를 다녔다.

금년 3월에 S난회의 전북 고창군 심원면 궁산리에서 가진 채란 행사에 동행하였다.

활뫼(弓山)에서 산채를 계속 하였으나, 집합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두고까지 허탕이었다. 집합장소로 향하여 가던 중 길가에서 멀지 않은 무덤의 축대 조금 아래쪽에서 원평호를 만났다. 3촉짜리였는데, 2촉엔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고 새촉엔 무늬도 선명한 원평호였다.

30여 회의 산채 끝에 쓸만한 난을 찾았으나, Y선생의 기분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흥분한 Y선생은 원평호를 배낭에 넣으면 뿌리를 다칠 것 같고,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어 하산길인지라 손에 들고는 10여 미터 발을 옮기던 중 이번에는 유령(幽靈)를 만났다.

유령을 캐어 들고 선 주위를 살피던 중, 아까 캔 원평호 생각이 나서 손을 내려다보니, 손에 있어야 할 원평호는 간 곳이 없고 유령만 들려 있었다.

모처럼 만난 유령에 정신이 팔리어 원평호를 옆에 두고 유령을 캐어서는 그것만 들고 일어선 것이다.

곧장 유령을 캔 장소로 발길을 돌렸으나, 금방 찾을 것 같은 그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충 300여 평 되는 그 일대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가로 지르기도 하고, 갈지 자로 살피기도 하고, 대각선으로 찾아보기도 하는 등, 메주 밟듯 뒤졌으나 허사였다.

원평호와 유령을 캔 두 곳 중 한 곳만 찾아도 될 것 같았으나, 도무지 캔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이 찾기가 어려운 곳이라면 몰라도 큰 소나무 밑에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어 있고, 띠풀과 부엽이 질펀히 깔리어 있어 찾기가 쉬운 곳이라서 조바심은 더 했다. ‘환장(換腸)’이란 말은 이때 쓰여야 제격이다.

그 사이에 시간은 30여 분이 흘렀다. 그때 집합장소로 향하여 가는 일행 한 사람을 만났다. Y선생은 일일회원으로 채란행사에 참여하였는지라, 그 사람은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시간도 없고 다급하여 그간의 사정을 대충 설명하면서, 만약 찾게 되면 누가 찾든 간에 한 촉을 쪼개어 준다는 약조까지 하고 두 사람은 화등잔 같이 두 눈을 벌겋게 켜고 원평호의 수색작전에 나섰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찾다 이런 기막힌 경우가 있을까 하고는 멍청한 눈길만 허공에 띄우고 서 있는데, 옆 사람이 ‘소심을 밟고 있잖아요.’하는 말에 화들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고 보니, 너댓 촉 되는 소심이었다. 원평호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옆 사람이 소심을 캐어서는 백벌브도 하나 떼 주지 아니하고 배낭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집합장소로 가는 사람을 불러 소심을 캐게 하였으니 최소한 뒷촉 정도는 인사상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여보시오, 백벌브라도 떼어 주어야지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라는 말이 불쑥 입술을 밀고 나와 버렸다.

마지못해 떼어 주는 백벌브를 건네받으면서도 속은 끓어왔다.
그런 후 계속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 7~8미터 떨어진 곳에서 옆 사람이 노오란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찾았어요”하면서 얼른 가보니 찾고 있는 원평호가 아니었다.
원평호를 찾는 도중, 바로 곁에서 중투 2촉을 캤다는 것이다. 찾는 난은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 다른 사람은 두 번 씩이나 횡재를 했으니, Y선생은 씁쓰레하게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야! 대단하네요.”

“뭘요, 별것 아닙니다. 길러봐야 알겠지요.”

“1촉 쪼갭시다.”

“이걸 어떻게 쪼갭니까!” 하고 불컹거리는 말투로 내뱉는 것이었다.

2촉짜리 중투는 노오란 바탕에 넉넉지는 못해도, 그런대로 녹을 쓰고 있어 상당히 기대되는 품종이었다.

생강근(生薑根)에서 올라온 2촉짜리가 쪼갤 형편도 아니었으나, 환장 속이 된 Y선생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럴 경우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합시간이 지났기로 집합장소로 가는 길이 반 마장이 빠듯할 정도 밖에 안 되었으나, 뒷머리는 자꾸만 땡기고, 비위가 꼴리고, 부화가 끓어서 그 길이 10리가 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한 열흘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울화통이 터질 때 마다, ‘아이구 우우!’ 하면서 오른손 주먹으로 왼손바닥만 치게 된 것이다.

Y선생의 얘기를 들은 모씨가 근간엔 비가 자주 왔기에 한 보름 정도는 말라죽지 아니했을 테니, 다시 가서 찾아보길 권했다.

마침 부인께선 바깥양반을 이대로 두었다간 큰 병을 얻을 것 같아서 아는 분에게 선운사(禪雲寺)로 봄나들이 가자고 하여 다음 주 금요일에, 즉 그날로부터 열흘 되는 날에 고창 선운사로 향했다.

선운사에서 부처님께 잃어버린 난을 찾도록 불공까지 드리고는 활뫼로 다시 갔다.
일행 내외분은 궁산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도록 하고는 부인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실망만 더 했다. 그 와중에 잎이 몽땅 잘린 4촉짜리 소심을 찾았으나, 반눈에도 차지 않았다.
난을 찾을 때까지 며칠이고 머물고 싶었으나, 낚시질 하고 있는 일행의 차를 얻어 타고 왔기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Y선생은 동양란을 하다 자생란에 관심을 갖고는 2년 전 한국자생란보존회에 입회를 하였고, 장성군 서삼면에서 가진 신입회원 환영 채란행사 때에도 원평호를 발견하였으나 놓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자생란을 잘 알지 못하여 발견한 원평호가 병든 것으로 잘 못 알고는 망설이다 그냥 두었었다. 점심 때 병든( ) 난 얘기를 끄집어내었다가 다들 명품을 그냥 두었다고, 아까워하는 통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찾으러 나섰으나, 곧 찾을 것 같은 그 난을 오후 내내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한 쓰라린 과거( )가 있는 Y선생인지라, 미치고 환장 할 수밖에.
자생란 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보니 명품을 사기도 힘들어 졌으며, 더 더구나 명품을 캐기는 더 어렵게 된 이 판국에 재수에 옴이 붙어도 더럽게 붙은 셈이다.

원평호는 중투호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대개의 경우 복륜으로 발전한다. 놓친 가오리는 멍석만 하다는데, Y선생은 잃어버리기는 하였지만, 그 원평호는 중투호로 발전할 것이라며, 가슴을 치고 있다. 에고 에고 안타까운 지고, 어쩐지 찡한 것이 나의 정골을 누비는 것 같다.

그대로 두었다간 아까운 사람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 일인지라 내가 가지고 있던 2촉짜리의 원평호를 분째 드리어 Y선생을 위로했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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