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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3일과 8일이면 어김없이 찾아든다. 조용하던 장터는 먼 곳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어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낙들은 무엇을 쌌던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들고 온다. 장날은 역시 아낙들 만남의 장소인가 보다. 썰렁하던 장이 금방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심이 넘쳐흐르는 군위 장. 팔공산 줄기에서 내려오는 위천강을 끼고 사방이 푸른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하고 아늑함을 준다. 삼한시대부터 내려온 삶의 애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록 산촌에 자리를 잡은 시골 장터지만 노랫말처럼 “있어야 할 것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부족함 없이 지내오면서 지금까지 모든 사람으로부터 애정과 사랑을 받고 있다.
장날의 유래는 사료(史料)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서기 490년 신라 소지왕 12년에 처음으로 개설한 경주의 경사시(京師市)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 와서 경시(京市)와 향시(鄕市)으로 구분되어 장터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장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장사하는 사람들이 난전을 펴는 소리로 야단법석이다. 여태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반가운 얼굴로 손을 잡으며 그동안 잘 지냈느냐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한잔하러 가자며 기쁨을 숨기지 못한다. 난전에 펼쳐놓은 삐꺽거리는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 탁주 한 사발 들이키면서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푼다.
젊음은 미래, 늙음은 과거를 먹고 산다고 한다. 아직은 과거를 먹고 살 나이는 아닌데, 과거사들이 가끔 빛바랜 필름처럼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나인 것 같다. 과거사는 아무나 먹을 수 없고 먹어서도 안 된다. 늙음만이 먹고 사는 유일한 특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운 일곱 살 철부지 때이다. 장날이면 으레껏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장에 따라나섰다. 집에서 장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어서 급히 서둘러야 했다. 엄마가 장에 갈 채비를 하면“엄마! 나도 따라갈래요” 하고 졸라댄다. “쓸데없이 뭐하러 따라다녀 집에 있어라.”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래도 이미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엿 꼬랑댕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꿍꿍이가 있어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장날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일상에 필요한 생필품들이며 얼굴에 울긋불긋하게 칠한 엿장수며, 동동구리무장수의 알록달록한 의상 등에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구석진 한곳에는 야바위꾼, 다른 한곳에는 장기판, 또 다른 한곳에는 대장간에서 쇠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요란했다. 지지리도 궁상맞은 꼴로 사람들 틈에 끼어 구경도 해야 하고, 엄마 치맛자락도 붙잡아야 하고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엿장수가 엿 방태기를 어깨에 둘러메고서 큼직한 가위를 짤랑대며 장바닥을 누볐다. 엿이 먹고 싶어 엄마 눈치를 살폈다. 엄마 기분이 어떤가를 빨리 헤아릴 줄 알아야 했다. 매가 꿩을 보고 놓치는 법 없듯이 나도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따라 다니다가 결심했다. 이것 하나 얻어먹으려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다. 엄마 치맛자락 붙들고 늘어졌다.
“엄마! 엿 한 동가리만 사줘” 하고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이러려고 하거든 앞으로 따라 오지 마”하고 으름장을 준다. 다시는 따라오지 않을게 하고 대답한다. 겨우 엿 한 동가리 얻어먹으려 온갖 머리를 다 써야 한다. 씁쓰레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살아가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지만 처절한 느낌이 든다.
겨우 얻은 엿 꼬랑댕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린다. 달짝지근한 엿 맛,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아까워 입안에 머금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쑥~ 넘어가 버렸다. 아껴먹는다고 흐르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세 개를 싸서 집으로 온다.
종이에 싼 엿이 녹아 활처럼 휘어졌다. 그것을 조물거리다 그만 땅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엿이 흙에 뒤범벅되어 버렸다. 집에 가지고 와서 아껴먹으려고 했던 엿이 이 모양 이 꼴로 되어 버렸다. 이것 하나 얻어먹으려고 온종일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르는데 엉엉 울고 싶었다. 오늘 장은 허탕 치고 돌아왔지만, 다음 장은 꼭 가지고 올 것이다 하며 쓸쓸함을 달랬다.
장날이 되면 괜히 가고 싶어진다. 야바위꾼의 속임수, 동동구리무 장수가 치는 북소리, 얄궂은 복장과 얼굴에 알록달록하게 칠한 엿장수 모두 신기했다. 지금쯤 땅에 떨어져 버린 그 엿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그 엿장수는 엿을 팔고 다닐까? 궁금하다. 사람들로 북적이며 인정이 넘치는 군위 장날.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진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